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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리하는 소회

기사입력 2016-12-22 16:16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소회(박미령 동년기자)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소회(박미령 동년기자)

해마다 거리에 캐럴이 흘러나오는 이맘때쯤이면 약간은 분위기가 들뜨고 여러 가지 약속들로 분주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올해는 모든 것을 잡아먹는 괴물, 블랙홀이 등장하여 연말의 감상에 사로잡힐 틈이 없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흘러가고 있다. 매일 흥미진진한 것은 좋은데 나날이 도낏자루가 썩어가고 있으니 그것이 걱정이긴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떠들썩하게 연말 분위기를 내는 것은 좀 눈치가 보이는 것도 같다. 김영란법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식당가가 유독 한산한 것이 보기에도 좀 민망하고 안타깝다. 경제가 어려워 주머니가 가벼워진 유독 쓸쓸한 겨울이지만, 2017년이 오지 않는 것도 아니고 올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니 한 해를 보내는 소회가 없을 수 없다.

한 해가 가는 것을 보며 문득 이형기 시인의 <낙화>라는 시가 떠오른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대학입시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지금 오히려 이 시가 절실하게 다가온다. TV 화면을 가득 메우며 마지막을 더럽히고 있는 인사들과 달리 올해 병신년은 깔끔하게 정유년에 자리를 양보하고 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올해는 연초에 이사가 있어서겠지만, 유난히 물건을 많이 버린 한 해였다. 아끼는 물건들과의 이별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물건에는 추억이라는 이름의 가치가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추억의 강도와 유용성의 갈림길에서 많이도 망설였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그렇게 많은 물건이 낙화처럼 스러져 갔다.

많은 물건을 버리고 나니 거기에 얽혀 있던 여러 추억도 사라져갔다. 그러니까 물건을 줄인 것이 아니라 기억을 정리한 것이었다. 사실 그 많은 기억을 끼고 죽기까지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부단히 기억도 슬림하게 다이어트를 해야만 한다. 올 한 해는 그처럼 불필요한 기억들을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기억해 둘 만하다.

모든 성인병도 덜어내지 않고 쌓아두는데서 시작된다. 대부분의 쌓여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절대로 부패한다. 사실 버린 물건들은 쓸모도 없었거니와 거의 낡았다. 우리가 열심히 기억하고 있는 추억 중에도 낡고 부패한 것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 기억들을 청소하고 새로 널찍한 사색의 공간을 확보했으니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잘못된 만남을 정리하지 못한 한 여인의 불행을 애처롭게 바라보면서 죽어야 사는 이치를 깨친다. 한 알의 밀알이 썩기를 거부하면 가을의 열매는 기대할 수 없듯이 올 한 해의 불행들이 모두 자신을 죽여 정유년 우리 모두의 삶이 다시 번성하기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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