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니어 라이프] 65세 이상 메이드 서비스에 인기 폭발
일본 군마현 기류시에는 특별한 찻집이 있다. 이름하여 ‘저승 찻집 샹그릴라’. ‘메이드(Maid)’와 ‘저승(冥土)’을 절묘하게 결합한 찻집은 죽음과 상실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유쾌한 유머와 따뜻한 위트로 풀어내는 곳이다. 65세 이상 여성들이 고전적인 메이드 복장을 입고 직접 도시락을 서빙한다. 단골 고객은 주로 80대 남성이다.

도쿄 아키하바라(秋葉原)는 메이드 카페가 밀집한 일본 오타쿠 문화의 본거지다. 메이드 카페에서 전통적인 하녀 복장을 한 젊은 여성들이 손님을 정중히 맞이하고, 음식을 서빙하며 “오이시쿠나레, 모에모에 큥!”이라는 마법의 주문을 외친다. 이 주문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맛있어져라, 귀염둥이, 얍!” 으로 해석되며 음식을 더욱 맛있게 만들어준다는 설정이다.
저승 찻집 ‘샹그릴라’는 이 ‘모에 문화(캐릭터나 대상에 느끼는 애착, 설렘 감정 표현)’를 고령자 중심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해석했다. 이곳에서도 직원과 손님이 함께 주문을 외치지만, 의미는 사뭇 다르다. 흥미로운 점은 샹그릴라의 ‘모에모에’가 아키하바라식 ‘설렘(萌え萌え)’이 아니라, ‘잃어버림(喪え喪え)’을 뜻하는 패러디라는 점이다. “맛있어져라, 모든 걸 내려놓자, 쿵!” 같은 주문은 노쇠와 상실, 죽음을 유쾌하게 표현하며, 웃음과 위트를 동시에 선사한다.

재탄생한 소멸 위기 지역
샹그릴라가 자리한 군마현 기류시는 일본 정부로부터 ‘2040년 소멸 가능성 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기류역 인근은 인적이 드물고, 로봇 청소기만이 조용히 역사를 누빈다. 도로에는 차량보다 택시가 더 많고, 역 인근 상점가는 대부분 셔터가 내려진 상태다. 썰렁하고 빛바랜 건물이 줄지어 늘어져 있는 상점가 거의 끝에 샹그릴라가 자리 잡고 있다. 샹그릴라 내부에서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활기찬 웃음소리와 반짝이는 대화가 넘쳐흐른다.
샹그릴라는 2023년 7월, NPO 법인 ‘키즈밸리(Kidsvally)’의 요코쿠라(横倉) 씨가 기획했다. 지역 고령자들이 언제든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소통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는 그는 “평범한 찻집보다 더 유쾌하고 특색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메이드 조건을 65세 이상으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찻집은 매월 첫째 주 토요일에만 문을 연다. 평소에는 공유 사무실로 쓰이다가 그날만 저승 찻집 샹그릴라로 변신한다. 메이드는 65세부터 72세까지 총 7명. 이 가운데 데코(67) 씨와 고코(66) 씨는 키즈밸리의 직원이며, 나머지 다섯 명은 지역 주민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들은 손님을 맞이하는 데 진심을 다하며, 손님 역시 메이드와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며 잊고 있던 감정을 되살린다.
샹그릴라는 사라지는 지역의 일상 공간을 다시 피워내고,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제안하고 있다. 손님과 메이드, 그리고 이 공간을 만든 사람들 모두가 지역 재생을 이끄는 주체인 셈이다.

삼도천을 건너 극락정토로
찻집 입구에는 종이와 파란 비닐끈으로 만든 ‘삼도천’이 놓여 있다. 손님들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강을 건너 자리에 앉는다. 화장실에는 ‘극락정토’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 찻집의 철학은 단순하다. ‘지금 이 순간을 유쾌하게 즐기자.’
이곳에서는 주먹밥과 조림 반찬이 포함된 도시락(600엔(약 5700원))과 음료(200엔(약 1900원))를 판매한다. 모두 기류대학교 영양학과 교수들이 자원봉사로 조리하며, 건강과 영양 밸런스를 고려한 저염·연식 식단이다. 메이드들은 서빙할 때 손을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 마법 주문을 외치고, 손님과 함께 웃으며 사진도 찍는다.
88세 단골손님은 “아내가 뇌경색으로 누워 있어요. 내가 건강해야 돌볼 수 있어서 매일 만 보를 걷는데, 그러다 이 찻집을 발견하고 매번 영업일마다 꼭 옵니다”라며 샹그릴라가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요코쿠라 씨는 말한다. “여기 오면 분위기 자체가 따뜻하고 밝아요. 95세 할머니도 혼자 버스 타고 오세요. 메이드들과 세상 얘기를 나누는 게 즐겁다고 하시죠. 세대가 달라도 이곳에서는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말이 트이고, 합석해 차를 마시는 일이 흔합니다.”
샹그릴라의 특별한 콘셉트가 SNS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전국 각지에서 손님이 몰리고 있다. 도야마현(富山県), 오사카(大阪) 등 먼 지역에서도 20~30대 젊은 손님들이 찾고, 심지어 아키하바라의 메이드 카페 직원들조차 ‘공부를 위해’ 방문한다.
이곳은 고령자뿐 아니라 다양한 세대가 어울리는 ‘세대 융합형 찻집’이 되고 있다. 메이드 데코 씨는 단골손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40대 여성 회사원이 매달 일부러 오세요. 여기 와서 마법 주문을 함께 외치면 힘이 나고, 다시 한 달을 견딜 수 있다고 해요. 이제는 이름도 서로 알고, 메이드들과 정겹게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죠.”

웰다잉, 포지티브 에이징 실천 현장
샹그릴라는 다양한 이벤트도 운영한다. 정월에는 붓글씨로 새해 다짐을 쓰는 행사를 열고, 장례회사의 협조로 ‘관 속 체험’ 이벤트도 진행했다. 실제 관 속에 들어가 본 후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라고 말하는 손님도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일본에서 확산 중인 ‘웰다잉(Well-dying)’ 개념과 맞닿아 있다. 이는 단순히 ‘아름답게 죽는 법’이 아니라 ‘지금을 충실히 사는 법’을 뜻한다. 관 속 체험을 한 많은 손님이 “죽음이 덜 무서워졌다”고 말한다. 샹그릴라는 죽음을 터부시하지 않고, 오히려 삶을 더 깊이 사랑하게 만드는 공간이 된다.
또한 샹그릴라는 고령자가 고령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포지티브 에이징(Positive Aging)’의 실천 현장이기도 하다. 요코쿠라 씨는 강조한다. “노화는 피할 수 없지만, 즐길 수는 있습니다. 샹그릴라는 고령자들이 스스로 의미 있는 역할을 찾고,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공간이에요. 손님만큼이나 메이드 역할을 맡은 분들도 행복해집니다.”
메이드 신청은 65세 이상만 가능하다. 이는 단순한 나이 제한이 아니라, 메이드로 일하는 고령자들에게 자존감과 소속감을 부여하기 위한 원칙이다. 메이드들은 이곳에서 자신이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긍심을 갖게 되고, 일상의 활력을 되찾는다. “이제는 매달 일하는 날만 기다리며 산다”는 메이드의 말처럼, 삶의 주체로서 다시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도쿄에서 찾아온 20~30대 손님들이 가장 감명받는 부분은, 나이 들어서도 웃고 일하고 사회와 연결되어 있는 ‘선배들’의 모습이다. 이것은 젊은 세대에게 ‘나이 들어가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비전을 심어준다. 단순히 ‘복지의 대상’이 아닌, 여전히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존재로 고령자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메이드 고코 씨는 취재를 마친 필자와 아쉬움의 인사를 나누며 속삭이듯 전했다. “이승에서 피곤하시면 언제든 또 놀러 오세요!”

노년의 외로움을 위로한 ‘작은 혁신’
고령자가 주체가 되어 운영하는 찻집은 일본 전국에서도 드문 사례다. 고령자가 고령자에게 따뜻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유쾌한 콘셉트로 운영하는 샹그릴라는 소규모지만 확실한 사회적 임팩트를 주고 있다. 사업화에 관심을 가진 방문객들도 있지만, 키즈밸리는 이 찻집을 철저히 사회복지 활동으로 운영한다. 하루 최대 100명 방문 기준으로도 도시락 수익은 월 6만 엔(약 57만 3000원) 남짓. 운영 재원은 후원금과 보조금이 전부다.
요코쿠라 씨는 앞으로도 이 공간을 꾸준히 이어갈 계획이다. “지역마다 이런 공간이 하나씩만 생겨도, 고령자들의 삶은 훨씬 더 풍요로워질 거예요. 샹그릴라가 그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실시한 2022년 고령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독거노인의 약 39.1%가 ‘자주 외롭다’고 답했고, 그중 25%는 경증 이상의 우울 증세를 보였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23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독거노인의 35.4%가 ‘자주 외로움을 느낀다’고 응답했고, 17.2%는 우울 증세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로움은 단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심리적 재난이다. 그런 가운데 샹그릴라 같은 공간은 단순한 오락의 장소를 넘어, 고립을 치유하고 마음을 이어주는 따뜻한 쉼터로 기능하고 있다. 삶이 고요하게 기울어가는 노년의 언덕 위에서, 다시 한번 웃을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희망이다.
죽음마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찻집, 샹그릴라. 이곳에서는 고령자와 청년이 함께 이야기하며, 삶의 유한함을 두려움이 아닌 긍정의 시선으로 마주한다. 이 작은 공간에서는 오늘도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작은 혁신’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