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사는 사당동 근처에 갈 일이 있었다. 산행을 하고 뒤풀이로 저녁도 먹었고 술도 거나해서 바로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했다. 그러나 너무 무심한 할아버지 소리를 들을까봐 아들에게 연락을 했다. 마침 집에 있다고 했다.
동네가 주택가라서 그런지 가게가 안 보였다. 제 철 과일이나 사려고 했었다. 편의점은 있는데 마땅히 사들고 갈 것도 없어 또 만만한 화장지 한 뭉치를 사 들고 갔다. 그리고 아들과 마실 막걸리 두 병을 사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손녀가 앉아 있었다. 늘 보던 바퀴보행기가 아니고 바퀴 없는 보행기 같이 생겼다. 정면으로 나를 보고 있는데 카메라를 들이 대니 금방 울상이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통한 순간이다. 내내 누워 있다가 오늘부터 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검은 색 재킷을 입었으니 무섭게 느껴졌을 것이다. 여자들은 자주 드나들었으나 남자는 내가 처음 이라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개를 좋아하는데 어느 별장에 갔을 때 그 집 개가 나를 문 적이 있다. 개가 임신 중이라 예민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했다. 그보다는 내가 어두운 색 옷을 입고 정문이 아닌 계곡에서 나타났기 때문에 경계심으로 그랬다고 추측해본다. 경험상 개들은 복장을 보고 사람을 차별한다. 우편배달부나 청소하는 사람에게는 짖지만 하얀 드레스셔츠에 정장을 한 사람에게는 짖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손녀가 느낀 할아버지의 이미지는 어두운 색 옷을 입고 나이 들어 무섭게 생긴 남자였던 것이다. 거기에 막걸리를 마셔 술 냄새가 풍풍 나니 그걸 할아버지 냄새로 기억할 것이다. 장차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기회는 많겠지만, 일단은 그런 모습으로 상면한 셈이다.
요즘 다행히 전처가 일주일 간격으로 드나든단다. 퇴직 하고 나서 할 일도 없던 차에 귀여운 손주 보러 오기도 하고 육아 경험도 들려준단다. 두 자녀 키울 때 맞벌이를 하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다. 처음엔 동네 할머니들에게 맡겼으나 할머니들은 책임감이 크지 않아 늘 노심초사했다. 출근할 시간은 되었는데 할머니가 사정이 있어 못 온다고 하면 발만 동동 굴렀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나마 어느 해 겨울인가 유난히 추워서 고령의 할머니들이 돌아가셨다. 새로 사람을 구할 수 없었다. 그때 나는 회사 일에 바빠 어떻게 해결했는지 조차 모른다. 그때의 애로를 생각하고 며느리가 출산휴가를 마치고 곧 출근하게 되면 손주를 돌봐준단다. 다행이다.
무엇보다 아기가 좋아할 복장부터 표정, 말씨를 어느정도 다듬어야겠다. 할아버지가 되려면 일정한 훈련을 통해 자격을 갖춰야 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