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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젊은이들

기사입력 2016-08-23 16:00

▲요즈음은 결혼식장에서도 만인 앞에 당당하게 입맞춤을 한다. (양복희 동년기자)
▲요즈음은 결혼식장에서도 만인 앞에 당당하게 입맞춤을 한다. (양복희 동년기자)
바야흐로 신세대의 세계다. 어느덧 물질문명은 흘러넘치고, 모든 것들은 통제의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 변화의 물결이 새롭다 못해, 구세대의 차오르는 가슴은 조용히 눈을 감으며 삭혀야만 한다.

새로운 세계는 늘 모든 것들이 위대하게 창출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나라가 점점 부강 되어 가는 모습일수 있다. 그러나 그 기본이 튼튼하게 다져져 있지 않은 한나라의 교육성은 장래의 위기를 위태롭게 만들기도 할 때가 있다. 더구나 인성교육의 기본은 그 나라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필자는 일부러라도 지하철을 타고 외출을 한다. 그 이유는 이리저리 바꿔 타야 할 때마다 걷는 운동이 몸에 긍정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소비되는 시간만큼 운동으로 채워지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다만 사람으로 눌려 터지는 출퇴근 때만은 피하고 싶다. 그 시간은 어찌나 이상한 사람들로 가득 차는지 숨이 막혀 죽을 뻔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인가, 이른 오후였다.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에어컨 바람에 실내의 공기가 아주 쾌적하다. 전철 안에는 사람들도 많지가 않아 분위기는 매우 상큼했다.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는 그나마 귀에는 이어폰을 장착하고도 책을 보는 사람들이 다소 있었고, 간 혹은 신문을 펼쳐 든 이들도 있어 보기가 좋았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남녀노소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더러는 입을 벌리고 잠을 자는 사람도 있다. 차라리 코를 골지 않는 것도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놈의 스마트 폰이 안겨다 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단절이다. 앉으나 서나 심지어 걸을 때에도 유별난 행동들은 위험천만이다. 이 시대의 물질문명이 가져다준 만행 일수 있다.

필자도 가방 속에서 핸드폰소리가 울려온다. 가만히 가방을 뒤적거려 폰을 꺼낸다. 글씨가 너무 작으니 눈이 잘 안 보인다. 잠시를 못 보겠고, 보려고 안간힘을 쓰니 눈이 피로해지고 점점 아파진다. 그리 중요한 일들이 아니니 소리를 진동으로 바꿔놓고, 다시 접어 가방 속으로 밀어 넣는다. 대단한 일도 아니고 나중에 봐도 큰일 거리가 아니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저쪽 구석에서 아주 젊은 두 남녀가 서로 껴안고 있다. 필자도 모르게 눈이 갔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도 않는다. 점점 더 가깝게 끌어안고 깊게 포옹을 하기 시작한다. 필자는 민망스러워 고개를 돌렸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다. 잠시 후 다시 필자도 모르게 눈을 돌렸다. 이번에는 더 강도가 심하다.

두 젊은 남녀는 사람들 앞에서 보라는 듯이, 아니 자랑스러운 듯이 당당하게 입을 맞추고 있다. 이번에는 온몸을 애무하며 진하게 얼굴을 맞대고 타오르고 있다. 이게 훤한 대낮에 웬일인가 싶다. 도저히 정상적으로 봐줄 수가 없어 얼굴을 돌렸다. 오히려 필자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언제부터 한국이 이렇게 변하게 됐나 싶었다.

필자가 살고 있던 선진국 미국에서도 그렇게 난하지는 않다. 물론 그들도 포옹이나 허그로 사랑을 가볍게 표현하기는 하지만 때때로 그것들은 오히려 아름답기도 하다. 그들은 진한 사랑의 행동들을 아무 곳에서나 분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격 없는 행동으로 그렇게 유치하지는 않다.

이제 막, 조금 살게 된 것 같은 나라에서, 젊은이들의 무질서한 행동들이 마냥 불쾌하게 자극해왔다. 필자는 두말없이 가만히 눈을 감고 삭히며 생각에 잠기게 된다. 과연 그 모든 것들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이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인생을 더 많이 살아온 선배들, 또는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서게 된다.

괜스레 젊은이들에게 말 한번 잘못하면 순간에 봉변을 당하는 세상이라고 한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발전되어가는 세상, 아니 엄청난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물질의 문명의 시대가 도래했다. 모든 것들이 무섭도록 바쁘게 돌아가는 현실의 무작정 세 대라지만, 한 번씩은 돌아보며 잠시 쉬어가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필자의 자식들도 요즈음의 젊은이들이다. 이제는 어느덧 필자의 품에서 벗어나 그들 개체의 인격을 기대할 뿐이다. 모든 젊은이들은 부모의 책임 속에서 길들여져 있다. 그들이 바깥 둥지로 나가기 전에 단단한 사고로 무장된 젊은이들로 거듭나기를 부모는 더욱 노력해야 할 것만 같다.

‘세상에 젊은이들은 거듭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을 되새기면서 하루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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