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퇴직 예정자들도 5년 전에는 당장 수입이 끊긴다는 것에 초조한 눈빛이었으나 그간 사회적 학습효과 덕분인지 이젠 많이 여유로워 보였다. “초조해봤자 별 뾰족한 묘안도 없고 사실 모아둔 재산이면 밥은 굶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이번 수강자의 대부분인 블루칼라들은 5년 전 은행 퇴직예정자들처럼 당장 수입이 없다는 사실에 초조한 빛이 보였다.
당장 수중에 돈이 없으니 밖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어렵다고 했다. 맞는 얘기이다. 한두 번 얻어먹었다면 이쪽에서도 한 번은 사야 하는데 마냥 얻어먹을 수만은 없다. 당당히 아내에게 용돈을 달라고 권했다. 평생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다 준 사람이므로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했다. 스스로 기가 죽어 그런 말을 못하는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했다. 먹는데 들어가는 돈은 사실 돌아가면서 돈을 내거나 나눠서 내면 그리 큰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안주 하나 놓고 소주나 막걸리 먹어봐야 일인당 1만원 꼴이다.
그래도 집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집 없는 서러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집은 사둔 것이다. 그렇다면 주택연금을 신청하라고 했다. 집을 담보로 어느 정도의 돈을 매달 받게 되면 용돈 걱정은 크게 덜 수 있는 것이다. 집은 왜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나중에 자식들에게 상속해줘야 한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식들도 장성하면 제 밥벌이는 하게 되고 상속이 없어도 잘 살아간다. 자신이 노력해서 장만한 집이니 당연히 권리가 있다고 했다.
앞으로는 집값도 떨어질 것이고 사회적 연금도 선진국처럼 늘어나면 최소한 밥은 안 굶는다는 위안도 필요한 것 같다.
일단 아침에 집을 나서라고 했다. 구민회관 교양 강좌를 나가든, 자기 계발 프로그램에 나가든 무료 강좌가 많고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정보도 얻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전문가가 되어 제2의 직업이 되기도 한다.
현역 때 벌던 수입에 비해 퇴직 후 버는 돈이 너무 약소하다며 취업을 꺼리는 사람들도 많다. 1억 원을 은행에 넣으면 일 년 이자가 200만 원 정도인데 한 달로 나누면 20만원이 안된다. 본인이 월 100만원 수입을 원한다면 은행에 5억 원 이상을 둬야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퇴직 후 수입에서 한 달에 50만원을 준다고 해도 과거와 같은 기준으로 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현역 때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고 장래를 위해 저축도 해야 하는 입장이었으므로 회사에서도 돈을 꽤 준 것이다. 이제 그때와는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업체 임원 출신이지만 음식점 서빙을 하는 사람이나, 경찰 공무원으로 있다가 퇴직하고 건물이나 아파트 경비 일을 하는 사람들의 예도 필요할 것 같다.
실패담도 중요하다. 강사들은 수강생들 앞에서 제 잘난 자랑이나 늘어놓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하면 강의 효과도 떨어지고 거리감만 생긴다.
우선 내가 전세로 살다가 자칫 전세금을 날릴 뻔 했다는 실화를 들려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전세라니까 일단 비슷한 처지로 볼 것이다. 등기 상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내가 계약한 집 주인이 소유권 이전 원인 무효 소송에서 져서 세입자들이 전부 쫓겨날 뻔 했던 얘기이다. 승소 요구 금액이 3억 원이라는 것을 알고 세입자들이 전세를 자가로 매입하고 그 차액으로 3억원을 맞춰 줘서 일이 잘 해결된 경우이다.
임원으로 모신다 해서 취업 했더니 인감도장으로 멋대로 장난해서 낭패를 보게 한 사례도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세무서에서 올바른 판단을 해서 해결되기는 했으나 약자는 어디서 어떻게 이용당할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는 내용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신이 실직자가 되었다고 아내가 돌변했다며 원망하는 경우도 많은 모양이다. 물론 원인 중 하나이겠지만, 마침 갱년기 호르몬 변화가 오면서 생기는 현상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겠다.
인생 이모작 강의는 적당히 시간만 때우려는 것보다 실질적으로 수강생들에게 경험을 전수해주고 정보를 제공해줘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하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 단 한 사람이라도 강의 내용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잡아 살려 나가게 한다면 큰 보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