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순례길 산티아고를 다녀온 사람들 중에는 간혹 ‘카미노 블루’ 라는 일종의 산티아고 향수병을 앓고 있음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순례길을 다 걷고 일상으로 돌아와서 그곳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그리움을 넘어 우울하기 까지 하다 해서 생긴 말이다. 약 800키로의 아름다운 길을 매일 20 내지 30 킬로 로 나눠서 한 달 넘게 걸으며 길에서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세계 각국의 친구 들 그리고 또 다른 ‘나’ 를 만날 수 있으니 고단한 일상 속에서 어찌 그 길이 그립지 않겠는가? 4년 전 그 길을 걸은 필자 또한 남들처럼 대단한 감정 격량 없이 다소 덤덤하게 걸었음에도 매해 5월 이면 가벼운 카미노 블루 증세가 나타나서 핸드폰 바탕화면과 SNS 프로필 사진을 산티아고 사진으로 바꿔 놓고 그리움에 빠져들곤 한다.
이런 필자에게 영화 ‘나의 산티에고’ 의 국내 상영 소식은 무언가 함께 큰 어려움을 이겨내고 대단한 것을 같이 얻어 낸 마치 동지를 만난 거 같은 반가움으로 한달음에 극장으로 달려갔다. 영화 속에서라도 다시 한 번 산티아고를 걸어 보리라 마음먹고 그 때 산티아고를 홀로 걸었을 때와 똑같이 혼자 극장을 찾아 관객들과 뚝 떨어진 호젓한 자리에 홀로 앉아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 ‘나의 산티에고’는 독일의 유명한 코미디언 하페 케르켈링이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라는 책을 영화화 한 영화다. 영화는 독일의 유명한 코미디언이 갑자기 건강에 이상이 생겨 일을 쉬게 되면서 번아웃(Burn out) 증후군으로 무기력 하게 시간을 보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게 되고 거기서 지난날을 돌아보며 자신만의 화두에 계속 질문을 던지며 서서히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 이다.
영화를 보면서 필자 생각과는 조금 다르게 펼쳐지는 순례길 풍경에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산티에고의 시작인 피레네 산맥이 피레네 산맥의 아름다움과는 전혀 다른 지중해의 어느 돌산 같은 풍경을 보며 보는 의아해 하였고 영화를 보는 내내 산티아고의 풍경에 이해가 가지 않는 풍경들에 당혹스럽기 까지 하였다.
그리고 도대체 이 주인공은 어디서 잠을 자고 무엇을 먹은 것인지. 황망하게 쳐다보던 음식과 알베르게(순례자 전용 숙소)를 너무 끔찍해 하며 일반 순례자들과 떨어져 호텔에서만 잠을 자는 모습을 보면서 호텔을 이용하지 않고 알베르게 에서만 잠을 자고도 별로 불편하지 않았고 가는 곳마다 가격 대비 제법 근사한 ‘메뉴 데 디아(순례자의 메뉴)’를 먹었던 필자로서는 너무 놀랍고 이해가 가지 않는 장면들이었다.
산티에고를 꿈꾸며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산티에고 순례길에 대해서 괜한 오해와 두려움을 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어 씁쓸하기 까지 했다.
비록 아름다운 산티아고의 풍경과 세계 여러 나라 순례객 들이 그 길을 걸으며 얼마나 서로 다정하게 위하고 나누며 친밀하게 지내는지 등을 담아내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주인공이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 길에서 만난 친구의 상처에 함께 연민하고 위로하며 함께 치유하는 과정의 장면 등에서는 나의 산티에고 와 오버랩 되면서 주인공과 함께 울고 함께 가슴이 뻐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순례를 마치는 장면에서는 마치 모든 길을 같이 걸은 듯이 함께 가슴이 벅차 오르며 눈물이 났다.
이 영화를 보고 필자는 5월도 지났건만 그때의 사진을 꺼내 보면서 다시 한 번 심하게 카미노 블루를 앓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