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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엄마의 미국 이민이야기] (8)사랑의 손맛

기사입력 2016-07-07 17:52

▲김장김치가 잘 익어 군침이 돈다. (양복희 동년기자)
▲김장김치가 잘 익어 군침이 돈다. (양복희 동년기자)
한국에 난리가 났다. 중동호흡기증후군(SARS)라는 괴상한 병명이 온 나라를 흔들고 있었다. 한인들은 우리나라 김치가 그 병에 대응하여 효능이 있다는 소식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필자도 김치에 대한 추억이 그리워 한인마켓으로 달려가 김치 한 병을 사 들고 왔다. 많은 한인들의 식탁뿐만 아니라 미국인들의 마켓에도 김치가 떨어지지 않았다.

코쟁이 미국 나라에도 얼마나 김치가 흔한지, 마켓마다 온갖 종류의 김치가 다양하고 화려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필자는 진열되어있는 김치를 마주하면 하늘나라에 계시는 어머님 생각에 잠시 잠기곤 했다. 어머니께서 베풀어 주신 그 정겨운 손맛은 영원히 기억의 한편을 장식하고 있었다.

필자의 신혼시절, 시부모님은 두 분이 단출 하게 사시면서 맛있게 저녁을 드시고 계셨다. 부엌이 넓어서 춥다고 피워놓은 연탄난로에는 잘생기고 싱싱한 생 꽁치에 소금을 술술 뿌려가며 굽고 계셨고, 밥상 위에는 스테인리스 양재기에 대가리만 뚝 잘라서 담아놓은 시큼한 냄새 풍기는 싱싱한 김치 한 포기. 어머니는 그 김치를 손으로 쭉~쭉 찢어가며 맛있게 드시는 데, 필자는 어찌나 그것이 먹고 싶었던지 눈치만 보며 침을 질질 흘려대고 꾹꾹 참고 있었다.

시집가기 전, 필자의 친정아버지도 김치 애호가이셨다. 앞마당 땅속 깊이 묻어 놓은 김칫독에서 금방 꺼내온 싱싱한 김치 한 포기를 대가리만 뚝 잘라서, 기름이 자르르 흐르고 김이 퐁퐁 나는 하얀 쌀밥에 척 걸쳐서, 입을 크게 벌리시고는 한 숟가락 덥석 드시고 우적우적 씹어대시면 그저 복이 따로 없었다. 드시는 그 모습에서 마치 큰 복이 굴러들어 올 것만 같았고, 얼마나 군침을 돌게 했는지 모른다. 필자도 엄마를 졸라 찬 보리차 물에 하얀 밥을 말아서 한 숟가락 뜨고는 가만히 들고 있으면 엄마는 손으로 김치를 쭉 찢어서 돌돌 말아 숟가락 위에 먹기 좋게 올려주셨다.

얼마나 맛이 있던지 하얀 쌀밥 한 그릇을 어느새 후딱 비워 내고는 냠냠했었다. 더구나 군데군데 섞여 있는 제멋대로 생긴, 대충대충 썰어 넣은 넓적한 무 우 김치 조각들, 밥을 물에 말아놓고 젓가락 한 짝으로 무김치 한가운데를 푹 찔러서 왼손으로 잡고는, 밥 한 숟가락 먹고 무김치 한입 와삭 깨물어 먹고 하면 다른 반찬은 전혀 필요가 없었다.

갓 시집온 필자는 그때 그 생각이 나서 물끄러미 어머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애라 모르겠다. “어머니 저도 한쪽만 찢어주실래요?”하고 밥숟가락을 어머니 앞으로 쑥 밀었다. 어머님은 어이가 없으셨는지 눈이 휘둥그래 계셨고 아버님과 필자를 돌아가며 바라보셨다. 아버님 또한 당황을 하셨는지 어머니와 필자를 번갈아 쳐다보셨다. 순간, 필자는 그냥 먹고 싶은 마음에 별도리가 없어 뻔뻔하고 당당하게 한번 더 달라고 숟가락을 쑥 내밀었다.

어머님은 아무 말씀이 없이 김치 한쪽을 쭉 찢어서 숟가락 밥 위에 빙빙 돌려 올려놓아 주었다. 필자는 체면을 불고하고 덥석 입을 크게 벌려 한 덩어리 집어넣고 신나게 씹어 댔다. 어찌나 맛이 있던지 시어머니에게 또 해달라고 했고 어머니께서는 아무 조건 없이 여러 번을 그렇게 해주셨다. 막내며느리인 필자는 양심에 꺼리고 철 딱 성이가 없기는 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때가 어머님과의 가장 눈물 어린 사랑의 추억이 되어 잊을 수가 없다.

어느 일요일에 LA 한인 마켓으로 달려가 커다란 김치 한 병을 사 왔다. 옛날 생각과 그리운 고국의 생각을 하면서 그때와 똑같은 방법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혼자 넓은 식탁에 앉아 김이 나는 하얀 밥을 보리차 물에 말아 놓았다. 어느덧 두 딸의 엄마가 되었고, 훌쩍 나이를 먹어 거칠어진 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두 손가락으로 김치 한포기를 덥석 꺼냈다. 쭉~쭉 찢어가며 김치를 왼손으로 들고 오른손 밥숟가락 위에 빙빙 돌려 올려놓았다. 입속으로 들어간 못생긴 김치가 얼마나 꿀맛인지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때, 이층에 있던 작은 딸아이가 뛰어내려오더니 왜 엄마 혼자 먹느냐며 앙탈을 부렸다. 자기도 한입 달라며 입을 크게 떡 벌리며 침을 흘렸다. 크게 한 숟가락을 만들어 주니 입을 아~ 벌려 먹더니만 또 한입을 더 달라는 것이다. 무지하게 맛나다고 엄지손가락을 척 올린다. 결국은 따로 밥 한 공기를 물에 말아서 혼자서 거뜬하게 해치웠다. 작은 딸은 역시 한국 김치가 최고라며 고개를 끄떡 거렸다. 한국에 난리 치는 ‘사스’ 라는 유행병도 우리나라 김치 때문에 꼼짝 못하고 달아 날 거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필자는 딸의 그 모습에 한동안 시어머님 생각과 한국 생각이 났다.

비록 낯설고 힘든 이민의 삶이고 치즈와 햄이 발에 밟히도록 흔한 나라였지만, 딸아이의 밥숟가락 위에 올려 놓아주는 빙빙 돌린 김치 맛은 다른 어느 맛과도 바꿀 수가 없었다. 바다 건너 뚝 떨어진 먼 나라에 살았지만, 엄마와 함께하며 따뜻한 손맛의 정들은 부모와 자식의 끈끈한 인연을 돈독히 해주는 것이었다. 한해 한 해 엄마를 닮아가며 예쁘게 성숙해가는 자식들의 모습 속에는 지난날의 부모의 모습 그대로가 담겨있었다. 그것들은 곧 천륜의 그림자가 되었고 세월과 자연의 흐름 속에 이치와 섭리를 말해주며 그리움을 그려내고 있었다.

고단한 이민의 삶 속에서도 그날에 ‘사랑의 손맛’은 가슴속 영원히 기억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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