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오에는 3천 년 이상 된 녹나무가 세 그루 있다. 그 중 으뜸은 다케오신사 뒤편에 있는 ‘다케오노오오쿠스’다. 다케오신사는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로 헤이안시대 중기에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대부분의 신사들이 일본의 전통색인 주황색인데 반해 흰 색을 띄고 있어 특이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다케오신사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건, 신사 뒷편 푸른 숲에 둘러쌓인 3천 년 된 녹나무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이면 B.C. 천 년 경이다. 이 나무는 일본의 청동기 시대부터 살고 있었다.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선사시대 유물과 동창이다. 그런데도 아직 살아있다. 태고에 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성역이라 불리며 다케오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힘을 주는 존재로 여겨져 왔다던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3천 년을 이어왔다는 건 이런 의미다. 100년 사는 인생의 유상함을 생각하니 나무 앞에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녹나무를 보고 내려오니 온 몸이 땀에 젖었다. 더운 날씨에다 습도까지 높아 조금만 걸어도 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도로를 따라 걷다보니 저 멀리 길 끝에 주황색 문이 보였다. 일본의 유명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다케오온천 로몬이었다. 로몬을 들어서니 대중탕과 가족탕 그리고 전시관, 료칸 등 아담하게 자리한 다케오온천 지구가 눈 안에 들어왔다.
다케오온천은 약알카리성 탄산온천으로 보습력이 뛰어나 미인온천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일본천황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다녀갔고, 임진왜란 때 전쟁으로 다친 병사들이 치료차 들르기도 했다. 미야모토 무사시 등 명장들이 다녀간 온천이라 다케오(武雄)온천으로 불리기 시작한 역사적인 곳인데 생각 보다 규모가 작았다. 주말인데도 한산했다.
노천탕은, 실내탕 하나에 작은 노천탕이 전부였다. 그저 그런 욕탕이어서 별 기대없이 탕에 들어갔다가 미끌미끌 점성이 느껴져 깜짝 놀랐다. 마치 오일을 잔뜩 섞어놓은 것 같았다. 물을 만져보고, 몸 한번 만져보고를 반복했다. 온 몸이 기름 바른 것처럼 반들반들했다. 린스도 안한 머리는 하루종일 찰랑거렸다. 온천 한번 하고 다케오온천에 홀딱 빠졌다.
다음 날 다시 온천을 찾았다. 이번엔 원탕에 들어갔다. 탈의실은 1층인데 탕은 계단을 한참 내려가 있었다. 덩그마니 탕 두 개에 샤워기 몇 개가 전부였다. 나무로 된 높은 천장을 올려다 보니 얼기설기 엮은 나무 사이로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천장에 높은 탓에 41.5도에서 44.5도 까지 두 개의 탕에서 나오는 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탕에 앉아있으니 불어오는 바람에 얼굴이 시원했다. 원탕에서 목욕하는 즐거움이 컸다.
다케오온천은 도시의 세련됨이나 유명 관광지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피부에 스며드는 부드러운 감촉과 오래된 전통의 향기를 느끼기에 좋은 온천이었다. 탕 속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으니 여행 중 쌓인 피로가 싹 가셨다. 우리는 말개진 얼굴로 현지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명탕 중 하나인 다케오온천을 만끽했다.
오래된 시간 속을 들여다 보고 경험하는 다케오 여행은 이제까지 여행과는 다른 차원의 여행에 눈 뜨게 했다. 여행이 즐거웠냐는 물음에 딸은 온천도 좋고 3천 년된 녹나무를 직접 본 것도 신비스러웠다고 했다. 그러더니 ‘엄마랑 단 둘이 여행 한 게 제일 좋아’ 라며 필자의 품을 파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