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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라이프 특별자문단 칼럼]움직여야 산다-이근후 교수

기사입력 2014-04-11 09:14

누워 있는 사람은 앉으세요. 앉은 사람은 서세요. 선 사람은 걸으세요…….이런 말을 나는 즐겨서 쓴다. 나는 아직 걷는 사람군에 속한다. 고마운 일이다. 나는 은퇴하기 이전 현역 시절에 제자가 점심을 산다고 해서 약속 장소를 파고다공원으로 정해 주었다. 제자가 의아해 하면서 **호텔로 약속 장소를 정하자고 했다.

나는 파고다 공원에서 볼일이 있어서 그러니 그리로 오라고 말했다. 나는 파고다 공원 안 팔각정에서 앉아 기다렸다. 공원 안에는 많은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장기도 두시고 환담도 나누시고 더러는 커피도 나누면서 앉아 계시는 모습을 보면서 측은지심이 들었다.

사실 오늘 이곳에서 만나자고 한 속내는 나도 나이 들어 이곳에 올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예행연습 삼아 약속한 장소다. 측은하게 느꼈다는 말은 아직도 젊었었던 내 눈에 할 일없이 모여 허송세월 하는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자가 나를 발견하고 물었다. “선생님 오늘 여기에 무슨 일이 있으세요?” 나는 내 속내를 이야기 해 주었다. 나도 정년을 맞아 이곳에서 소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라고 했더니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눈을 흘겼다. 적어도 그땐 내가 제일 측은하게 느꼈던 노인들의 모습이다.

내가 SMART AGING PROGRAM을 고안하면서 생각해 낸 M의 뜻은 Movement였다. 움직이기다. 세계보건기구에서 권장한 건강수칙 가운데 이런 쉬운 권고가 있다. “될 수 있으면 자주 걷고 될 수 있으면 멀리 걸어라” 말은 쉽지만 요즈음 현대인들의 속성으로 봐선 지키기가 쉽지만은 않는 권고다. 대중교통이 거미줄처럼 발달되어 있고 자가용 승용차들이 많아서 웬만한 곳이면 모두 이런 교통수단을 이용하니 정작 권유대로 자주 멀리 걷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퇴임을 하고 나도 생물학적 나이가 점점 많아지니 세계보건기구의 권고가 실감난다. 다행히 나는 운동재주가 없지만 어릴 때부터 걷기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그나마 지금 서서 걸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정년퇴임을 맞은 한 교장선생님의 방문을 받았다. 일생동안 자기는 학교와 집을 왕복하면서 봉직한 경험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막상 퇴임을 하면 무엇을 해야 할까 걱정된다고 했다. 그래서 퇴임 후에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가르쳐 달라는 주문이다. “움직이기”를 권했다. 사람이 몸으로 움직이는 동작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징표가 된다.

나이 들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잃고 자리에 누워 있다면 누워 있는 자신도 괴롭겠지만 이 누운 노인을 보살펴야할 자녀들에게도 큰 고통을 안겨 준다. 누가 늙고 싶어 늙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가 또 병나고 싶어 누워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늙고 병드는 일은 인력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일이다. 움직이는 일이면 무엇이나 해 보라고 권했다.

교장선생님은 그래도 치료자인 내가 권해 준다면 그 운동을 시작해 보겠다고 졸랐다. 세계보건기구의 권고가 생각나서 걸어보시라고 일렀다. 교장선생님은 그것도 운동이냐면서 탐탁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거주지 곁에 운동시설이 무엇이 있는가 물었더니 정구장이 있다고 해서 정구를 권했다.

감사하다고 떠난 교장선생님은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응급실로 실려 오셨다. 이유는 내가 권한 정구를 밤낮없이 치다 보니 탈진한 것이다. 몸에 아무리 좋은 운동이라도 그렇게 급작스럽게 한다고 해서 약이 될 이치는 없다. 정년 후에는 늘 하던 운동이라도 조금씩 심도를 낮추거나 횟수를 줄여나가면서 즐기면 된다. 정말 아무것도 해 보지 않았다면 젊었을 때 해 보고 싶었던 운동이지만 해 보지 못한 운동을 선택해 보면 어떨까.

그도 저도 없다면 세계보건기구의 권고를 아낌없이 받아드려 보자. 눕고 싶은 사람은 앉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앉아 있을 힘이 있다면 서 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설 수 있는 사람이라면 걷는 취향을 잃지 말아야 한다. 내가 현역시절 파고다 고원의 노인들을 보고 측은지심을 가졌던 오만함을 지금은 부끄럽게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면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선택 받은 상노인이다. 파고다 고원에서 노인끼리 모여 환담을 나눌 수만 있어도 혜택 받은 중산층 노인들이다.

몸과 마음이 불편하여 거동이 어렵거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신이라면 가족이나 사회 그리고 국가적 복지시스템의 도움을 받아야 할 노인계층이다. 노인들이 할 일이 없다고 불평해선 안 될 일이다. 있으면 더욱 좋을 일이지만 없다고 화낼 처지는 아니다. 왜냐하면 기동을 할 수 있는 분은 그렇지 못한 분들을 위해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을 아직도 많이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리에 눕지 않는 건강을 챙기기 위해 세계보건기구의 건강수칙 ‘걷기’를 모범생처럼 지켜보자. 이런 노력은 제일 먼저 노인 자신에게 도움이 되며 이런 건강은 가족이나 사회에 걱정을 덜어 주기 때문에 권장할 일이다. 걷자.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걷자. 그리고 멀리 걸어보자. 그래서 살아 숨 쉬는 기쁨을 만끽해 보자.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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