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

고령화가 나라를 가난하게 만든다고? 고령자 소비의 현실

입력 2026-01-29 13:31수정 2026-01-29 13:44
기사 듣기
00:00 / 00:00

‘노인 부양’이 놓친 이면…고령자 소비 재원의 구조 분석

(챗GPT 생성 이미지)
(챗GPT 생성 이미지)

고령화는 흔히 ‘나라를 가난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인식돼 왔다. 노인이 늘어나면 일하는 사람은 줄고, 부양 부담이 커지며, 결국 성장도 둔화된다는 통념이다. 그러나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가 2025년 10월 발표한 연구보고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인구 고령화와 그에 따른 경제적·세대 간 영향) Population Ageing in the Asia-Pacific Region and its Economic and Intergenerational Consequences)’는 이 통념에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데이터를 보면, 고령화 그 자체가 국가를 빈곤으로 몰아넣었다고 단정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고령화의 영향을 경제 규모가 아니라, ‘고령자 소비를 어떤 재원으로 충당해 왔는가?’라는 구조적 관점으로 해석한다.


이 연구는 아시아·태평양 23개국의 국가이전계정(NTA, National Transfer Accounts) 자료를 활용해, 인구 고령화가 경제와 세대 간 이전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를 분석했다. 보고서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핵심은, 고령화의 영향이 ‘생산이 줄어드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된 소득이 세대 간에 어떻게 이전ㆍ재분배되는가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고령화가 곧 경제 쇠퇴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을까

보고서는 고령화와 경제 쇠퇴를 자동으로 연결하는 해석에 거리를 둔다. 고령 인구 비중이 높아지면 노동공급이 줄어들 수는 있지만, 많은 국가는 이에 맞춰 경제 구조를 조정해 왔다고 언급한다. 노동절약적 기술을 도입하고, 노동자 1인당 자본 투입이 늘어나며, 자본집약도가 상승하는 과정이 동반됐다. 이와 함께 임금 수준과 1인당 소득이 상승한 사례도 관찰된다.

이 분석에서 한국은, 이미 제1차 인구배당(출산율 하락으로 생산연령인구 비중이 늘어나면서, 일시적으로 경제 성장 여력이 커지는 현상)이 종료되고 고령화 국면에 진입한 국가로 분류된다. 보고서는 한국을 중국·일본과 함께, 인구배당이 비교적 짧고 강하게 나타난 뒤 고령화 비용 국면으로 전환된 사례로 제시한다.

보고서는 “현재까지 관찰된 범위에서는, 고령화 그 자체로 인해 심각한 경제적 실패를 겪은 국가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는 물론 고령화가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고령화의 효과가 국내총생산(GDP) 규모나 성장률의 급격한 하락으로 곧바로 나타났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고령화의 경제적 파급이 생산 영역보다 소득 이전과 재분배 구조에서 더 크게 드러난다고 정리한다.


고령자 소비는 누구의 부담인가

보고서가 특히 주목하는 질문은 고령자 소비의 재원이다. 국가이전계정에 따르면 고령자 소비는 네 가지 재원, 즉 노동소득, 자산소득, 가족 이전, 공적 이전의 조합으로 충당된다. 이 네 가지의 비중은 국가마다 크게 다르다.

저소득·중저소득 국가에서는 고령자 소비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노동과 자산에서 나온다. 인도와 필리핀의 경우, 고령자는 소비의 대부분을 스스로 벌거나 축적한 자산으로 충당한다. 일부 국가는 고령자가 세금 납부나 가족 지원을 통해 자녀와 손주에게 순이전을 제공하는 구조를 보이기도 한다. 이런 경우 고령화는 재정 부담을 확대하기보다 완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고소득 국가로 갈수록 공적 이전의 비중이 커진다. 연금과 의료 서비스가 고령자 소비의 중요한 재원이 된다. 일본과 호주는 자산소득과 공적 이전이 결합된 구조를 보이며, 가족 이전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다.

한국은 이 비교에서 고령자 소비에서 순이전(공적·사적 이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국가로 분류된다. 보고서는 한국의 고령자 소비가 노동이나 자산소득보다 이전에 상대적으로 더 의존하는 구조를 보인다고 설명한다. 이는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재정과 세대 간 이전 구조에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는 조건에 해당한다. 다만 보고서는 이를 노인 인구의 규모 문제로 설명하지 않는다. 고령자 소비가 이전 중심으로 형성돼 온 구조적 특성과 연결해 해석한다.


‘노인을 부양한다’는 말이 가리는 것들

ESCAP는 이러한 분석을 통해 ‘노인을 부양한다’는 표현이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고 지적한다. 단순한 노인부양비 지표는 고령자를 모두 동일한 의존 대상으로 간주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고령자가 계속 일하거나 자산소득으로 소비를 충당한다. 또 일부 국가는 고령자가 순수한 수혜자가 아니라 이전의 제공자가 되기도 한다.

국가이전계정은 연령 기준 대신 실제 소비와 소득 흐름을 기준으로 고령화의 영향을 측정한다. 이 방식으로 보면, 고령화의 부담은 노인 인구의 규모 자체보다 고령자 소비를 어떤 재원에 의존하도록 만들어 온 구조에 따라 달라진다.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인구 변화지만, 그 경제적 결과는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 고령화가 국가를 가난하게 만드는지도, 세대 간 부담을 얼마나 키우는지도 인구 구조 그 자체보다 제도와 이전 구조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ESCAP는 고령화를 ‘인구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나라의 미래를 좌우하는 것은 고령자 수의 증가가 아니라, 고령자 소비의 재원을 어떤 방식으로 형성해 왔는지라는 점을 이 보고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관련뉴스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댓글

0 / 300

브라보 인기뉴스

  • 말은 달리지 않아도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 지혜가 녹아 있는 시니어의 말
  • AI 시대, 말의 본질을 다시 묻다
  • 표창원 프로파일러 “60세, 여전히 타협하지 않는다”

브라보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