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

치매 간병, 노래를 부르세요

입력 2025-12-15 06:00

[Monthly Issue] 치매케어 궁금증 풀어드립니다

치매로 인한 변화를 느껴도 대부분은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함을 호소합니다. 시니어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홍명신 에이징커뮤니케이션센터 대표가 그런 이들을 위해 ‘치매 케어’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어도비 스톡)
(어도비 스톡)


Q 저희 어머니는 87세입니다. 이제는 치매 진단을 받은 지 꽤 오래돼 많은 걸 제가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가족 앨범을 보면서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노래를 따라 부르셨어요. 그것도 초등학교 입학식 때 제가 학생 대표로 불렀던 그 노래를요. 그리고 그 입학식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말씀해주셨어요. 50년도 전에 있었던 일인데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셨어요.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이게 저만의 경험일까요?


(챗GPT 생성 이미지.)
(챗GPT 생성 이미지.)


감동적인 순간을 경험하셨군요. 고단한 간병 생활에서 이런 순간은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치매로 아픈 분의 기억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약해지지만, 가끔은 아주 오래전 일을 선명하게 기억해내기도 합니다. 치매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잠을 아주 푹 자고 일어나셨을 때, 오래된 사진이나 자료를 보셨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나 노래를 들으셨을 때 등등 그 일이 일어나기 전의 상황은 다양합니다. 그런데 기적처럼 기억을 되살린 순간이 있었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런 현상을 처음 겪는 사람들은 ‘이제 다시 좋아지는 걸까?’, ‘기억력이 회복된 걸까?’ 하며 희망을 걸지만, 그 놀라운 기억력은 대부분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음악과 노래’의 힘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치매 케어 전문가 나오미 페일이 주창한 인정 요법(Validation Technique)에서 ‘음악’은 매우 효과적인 도구로 다뤄집니다. 이때 간병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음악과 노래는 치매로 아픈 분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서 즐겨 불렀던 동요나 찬송가, 젊은 시절에 즐겨 들었던 음악, 추억이 깃들어 있는 음악과 멜로디 같은 것이 훌륭한 재료가 됩니다. 말과 글이 희미해질수록 음악의 힘은 더 커집니다. 치매로 아픈 분에게 친숙한 음악은 기억의 다리 역할을 합니다.

말을 거의 못 하는 사람이 어떻게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요? 쉽사리 믿기 어려운 음악의 효과는 2007년 미국 PBS 방송이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광범위하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방송에서 치매 케어 전문가 나오미 페일은 주변에 반응하지 않는 치매 여성에게 다가가 따뜻하게 말을 겁니다. 손을 잡고 그녀에게 익숙한 찬송가를 불러주자, 손으로 탁탁 박자를 맞추었고 노래까지 따라 불렀습니다. 그 어떤 약물도 투여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저 친근한 목소리와 노래가 이루어낸 극적인 변화는 수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안겨줬습니다. 이렇게 음악은 치매가 진행될수록 더 진가를 발휘하는 케어 도구입니다. 이번에 소중한 경험을 하셨으니 다음의 세 가지를 염두에 두고 앞으로도 슬기로운 간병 생활을 계속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첫째, 음악을 기억과 감정의 문을 여는 통로로 사용하세요.

우리는 부모님에 관해 많은 걸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분이 어렸을 때 좋아했던 노래나 추억이 담긴 음악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시 모른다면 물어보세요. 어머니께 직접 물어보거나 다른 가족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습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영화음악, 우연히 들려오는 음악을 따라 부르고 관심을 보인다면 놓치지 말고 기억하세요. 그 음악 목록을 잘 기록해두면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노래가 애국가든 동요든 크리스마스 캐럴이든 개의치 마세요. 그분이 좋아서 따라 부르고 흥얼거릴 수 있는 음악이라면 기억과 감정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둘째, 함께 노래하세요.

이번에 하신 것처럼 먼저 노래를 부르고 어머니가 따라 하게 하는 것은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평소 노래에 자신 없어도, 목소리가 엉망이어도 상관없습니다. 함께 불러보세요. 만약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면 그 곡을 자주 틀어서 음악 속에 머무를 수 있게 해주세요. 어머니가 채혈할 때, 주사 맞을 때, 상처 드레싱을 받을 때처럼 힘든 순간에도 좋아하는 노래로 주의를 돌리면 조금은 쉽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나오미 페일은 치매로 아픈 사람에게 말을 걸 때도 노래하듯 부드럽고 리드미컬한 어조를 사용했습니다. 청력이 약한 분이라면 잘 들을 수 있도록 보청기 같은 보조 기구 챙기는 것을 잊지 마세요. 이러한 느낌과 분위기는 치매로 아픈 사람의 불안을 줄이고 신뢰와 안정감을 전달합니다.


셋째, 말로 소통하지 못할 때 음악을 이용하세요.

치매가 계속 진행되면 언어장애도 깊어집니다. 글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을 하거나 이해하는 능력도 현저하게 약해집니다. 나오미 페일은 치매의 마지막 단계를 ‘식물 단계’라고 이름 붙였는데요. 이 단계에서 음악은 진가를 발휘합니다. 그분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드리는 것은 상당히 기분 좋은 자극입니다. 노래의 리듬, 부드러운 손길, 익숙한 자녀의 목소리는 당신과 그분을 연결하는 새로운 소통의 길을 열어줍니다. 진정한 교감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니 말로 소통할 수 없다고 낙담하지 마세요. 우리에게는 방대한 비언어적 수단이 남아 있습니다.

사실 제 아버지도 마지막에는 언어장애가 심해서 말씀을 거의 못 하셨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간단한 멜로디에 스스로 가사를 붙여 자작곡을 만들어 부를 정도로 음악을 즐기셨는데, 마지막에는 노래를 부르지 못했습니다. 저는 노래를 케어 도구로 쓰고 싶어서 틈 나는 대로 이 곡 저 곡을 시도해봤습니다. 어느 날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하고 동요를 불렀더니 아주 잘 따라 하셨어요. 다만 토끼가 ‘깡충깡충’ 하는 대목을 ‘깐촌깐촌’으로 부르셨죠. 그래서 지금도 어디선가 산토끼 동요가 들려오면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그 시절 아버지의 맑디맑은 얼굴과 이제는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아버지의 자작곡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깐촌깐촌 뛰면서’ 하고 따라 부르게 됩니다.

노래는 그 어떤 것보다 강하게 뇌를 자극하고 기억을 끌어내고 마음을 움직이는 소통 도구입니다. 그러니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고 손을 잡고 노래하세요. 아름다운 음악 선율은 그분의 마음을 적시고, 당신에게도 촉촉한 추억을 쌓아줄 겁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관련뉴스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댓글

0 / 300

브라보 인기뉴스

  • 곰팡이 없는 장,  과학으로 빚는 전통의 맛
  • 사시사철 방방곡곡, 맛의 천국이로구나!
  • 한국의 맛을 따라 걷다…K-미식벨트

브라보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