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신탁이 고령층 생애자산관리 핵심축으로…한국에도 시사점
한국 고령층 자산이 부동산과 예금에 과도하게 묶여 있다는 구조적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지난 3월 자본시장연구원(KCMI)의 '고령화 사회에서 자본시장의 역할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75세 이상 고령층 자산의 98%가 부동산과 예금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은 많지만 현금 흐름이 부족해 고령층의 생활 안정이 흔들리며 소비를 유지하지 못하고 지출을 급격하게 줄여 노후를 버티는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의 핵심 원인을 고령층의 자본시장 접근성 부족에서 찾는다. 금융투자 비중이 낮고 연령 증가와 함께 의사 결정 능력이 떨어져 직접투자의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 예금 중심의 금융 구조로는 고령자의 소득 기반을 복원하기 어렵고 장기적으로는 소비와 투자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은 신탁업을 고령층 생애자산관리의 핵심축으로 발전시켰다. 미국 신탁은 성문법보다 판례 중심으로 규율돼 제도적 유연성이 크고 신탁가능 재산에 대해 제한을 두지 않아 다양한 신탁계약도 허용한다.
특히 고령자 중에는 의사능력이 있을 때 재산 관리를 신탁업자에게 맡기면서도 자산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하길 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때 활용되는 구조가 바로 '철회가능신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철회가능신탁은 위탁자가 자유롭게 변경, 철회할 수 있으며 치매 등으로 의사능력이 상실되면 계약에 따라 지정된 후임수탁자가 법원 절차 없이 즉시 신탁재산 관리를 이어받을 수 있다. 고령층의 의사결정 공백을 최소화해 안전한 자산관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미국은 고령층을 위한 별도 보호장치를 두고 있지는 않지만 금융회사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소비자 보호를 보완하고 있다. 지난 19년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가 도입한 '최선이해규제'는 금융회사가 투자 권유 과정에서 고객 이익을 우선하도록 요구하는 제도이다. 이처럼 자산운용 대리인의 역할이 제도적으로 강화되자 고령층은 직접투자 대신 신탁을 통해 위험을 조절하며 자본시장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해당 보고서는 한국 역시 미국식 신탁 사례를 그대로 적용하긴 어렵지만 배울 점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신탁업 라이센스 유연화, 신탁재산 다양화, 고령자 금융소비자 보호 규제 정비 등 고령층이 '간접투자형 자산운용'에 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령층 자산이 효율적으로 운용되면 소득 기반이 복원되고 여유자금이 다시 자본시장으로 유입된다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책적, 제도적 후속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