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니어가 기업 경쟁력의 새로운 변수” … 서울시 ‘리액트 시니어 컨퍼런스’ 현장
일자리 아닌 일거리 시대로 전환
경험자본, AI타고 새 산업의 동력
애플코리아, “나이 대신 역량 중시”

“기업은 더 이상 사람을 뽑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일자리(고용)’는 줄어들고 ‘일거리(과업)’는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5060세대가 살아남을 길은 AI(인공지능)라는 무기를 들고 독립형 계약자로 변신해 기업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조성준 서울대 교수는 AI 시대를 준비하는 중장년에게 현실 직시와 경력 재설계 방향에 대해 이렇게 조언했다.
서울시가 초고령사회 대응 전략의 일환으로 마련한 ‘2025 지속가능 인재전략 컨퍼런스 리액트(Re:Act) 시니어’가 1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렸다. 200여 개 기업·기관 관계자가 참석한 이날 행사는 단순한 ‘노년층 일자리’ 논의를 넘어, AI 확산 국면에서 시니어 인재를 기업의 전략 자산으로 재정의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행사장에는 기업 인사·CSR 실무자뿐 아니라 대학, 공공기관, 비영리 조직 관계자들이 대거 자리했다.
윤종장 서울시 복지실장은 개회사에서 “서울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며 “시니어의 ‘재취업’이 아닌 ‘역량 회복과 재발견’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윤 실장은 “올해 문을 연 서울시 시니어일자리지원센터가 이미 1500명 교육, 700명 매칭 성과를 냈다”며 “기업이 중심이 된 민·관 협력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행사의 첫 축은 두 명의 학계 전문가가 참여한 인사이트 세션이었다. 조성준 서울대 빅데이터 AI센터장은 “AI 시대에 시니어 인재 전략”을 주제로, 더 이상 시니어를 ‘다시 교육해야 할 노동력’으로만 다룰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은 지금 50대 인력을 비용과 문화·기술 적응 문제를 이유로 조직 밖으로 내보내고 있다. 동시에 AI 기반 업무 전환은 폭발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조 교수는 “기업이 원하지 않는 것은 ‘고비용 정규직’이지, 시니어 개개인의 경험과 본질적 판단능력 자체가 아니다”며 “경력이 많은 사람일수록 AI를 활용했을 때 곱하기 효과가 훨씬 크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는 ‘일자리’보다 ‘일거리’의 시대가 된다”며 시니어가 독립형 계약자로 진입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과업의 본질을 이해하는 사람의 질문이 AI의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높인다”며 “시니어의 경험은 이런 본질적 판단의 강점을 지닌다”고 했다.
조 교수는 또 기업이 바꿔야 할 조건으로 지식관리 체계의 전환을 꼽았다. 그는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김 부장 한 사람의 머릿속에 있던 20년의 노하우가 퇴직과 함께 사라진다”며 “기업 내부의 문서화·명시지가 AI 기반 의사결정의 핵심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업무 방식도 ‘사람 관리’에서 ‘과업 기반 협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출근·퇴근을 관리하는 회사는 재택·외부 협업이 안 된다”며 “명확한 성과와 산출물 중심의 관리 방식이 MZ세대뿐 아니라 시니어와의 협업에도 필수”라고 말했다.
이어 김광현 고려대 교수는 “기업은 이제 연령 편향이 아닌 ‘포용적 인재 전략’을 통해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시니어 인재를 ‘경험 자본’으로 정의했다. 그는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자전거 타는 법을 글로 배울 수 없듯, 현장의 맥락을 읽고 위기에 대처하는 암묵지는 시니어만이 가진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시니어의 역량이 빛날 수 있는 분야로 ▲리테일·유통 등 서비스업(감성 지능과 인내심) ▲제조·건설 등 숙련 기술 분야(안전 및 품질 관리) ▲네트워크 자본을 활용한 사업 개발 등을 꼽았다. 그는 “청년의 일자리를 뺏는 것이 아니라, 시니어의 경험과 청년의 혁신이 결합할 때 기업의 생산성이 극대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 교수의 발표 후에는 유한킴벌리 손승우 고문과 최아름 디렉터가 대담에 나서 AI 시대 인재 재편 속에서 현장 조직이 어떤 물음에 직면하는지 논의했다.
두 번째 축인 비즈니스 프랙티스 세션에서는 기업들이 실제로 적용 중인 시니어 인재 활용 전략이 펼쳐졌다. 첫 발표자인 최보나 애플코리아 매니저는 애플 리테일이 시니어 인재를 바라보는 시각을 소개했다. 최 매니저는 “애플은 나이나 경력의 길이가 아니라 ‘경험이 고객과 팀에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가’를 기준으로 사람을 본다”며, 시니어 구성원이 가진 삶의 경험·공감력·관계 구축 능력이 매장 현장에서 강점으로 발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접근성 기능, 투데이 앳 애플 프로그램, 고객 경험 지향 문화 등이 연령 다양성과 자연스럽게 결합해 왔다고 소개했다. 그는 “시니어를 위한 별도 직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역할이 열려 있다”며 “학습 의지와 변화 수용성은 시니어 채용의 핵심 요소”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율촌의 임경아 부장은 ‘조직 문화 속 시니어의 역할’을 강조했다. 임 부장은 “전문가 조직의 특성상 변호사는 정년을 초과해도 일하지만, 스태프 조직에서는 시니어 채용이 새로운 변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은퇴 후 합류한 60년생 직원의 사례를 소개하며 “대관 업무처럼 젊은 직원에게는 소모적이고 감정노동이 심한 영역을 시니어가 안정적으로 수행해 팀 내 갈등이 현저히 줄었다”고 밝혔다. 또 “원칙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젊은 직원이 어려워할 때, 시니어 직원이 조언해 주며 조직의 정서적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율촌은 장애인 고용, 북향민 멘토링, 코칭 제도 등을 결합해 ‘다양성과 포용’ 체계를 확장해 왔으며, 시니어 채용도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전혜진 이지태스크 대표는 플랫폼형 유연 일자리 모델을 소개했다. 그는 “시니어가 기술·관계 역량을 동시에 확장할 수 있는 작업 환경이 필요하다”며 “서울시 시니어일자리지원센터와 협업을 통해 실제 현장 성과를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GS리테일의 양영길 팀장은 도보 배송 플랫폼 ‘우리동네딜리버리(우딜)’을 통해 시니어가 지역 기반 배송 인력으로 참여하고, 동시에 ESG 관점의 탄소 저감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는 현장 사례를 발표했다.
세션 마지막에는 서울시립대 최영준 교수가 좌장을 맡아 기업 패널들과 시니어 인재 전략을 경영 관점에서 종합 정리했다. 최 교수는 “기업은 효율을 이유로 시니어를 내보내지만, 사회적 책임과 인구구조 변화 관점에서는 시니어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전문가 인력만이 아니라, 기존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전환해 중간·지원·관리 영역에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세션인 ‘지속가능 밋업’에서는 기업·대학·비영리단체가 참여해 ▲비영리스타트업 협력 ▲지역 기반 일자리 ▲창업 생태계 참여 ▲AI 전환 역량 강화 등 다양한 모델을 논의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시니어 인재를 위험요인이 아니라 성장의 동력으로 재해석해야 한다며초고령사회는 더 이상 ‘복지 논의’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중장년 고용은 기업의 미래 전략과 직결된 주제이며, AI 전환은 시니어의 경험 자산을 새로운 방식으로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행사는 행사는 서울시가 주최하고 서울시50플러스재단, 대한상공회의소, 서울시립대학교, 임팩트얼라이언스가 공동 주관했으며, 서울시니어일자리지원센터가 운영을 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