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의 시니어 비즈니스 인사이드 ⑮]

IFA 2025가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독일 베를린 메세 베를린에서 개최됐다. IFA 2025는 유럽 최대의 가전·콘슈머 기술 전시회로, 올해 슬로건은 ‘미래를 상상하라(Imagine the Future)’다. 스마트홈·인공지능·모바일·디지털 헬스 등 차세대 생활기술의 흐름을 한자리에서 보여줬다. 고령화를 겪고 있는 유럽 소비자를 주요 대상으로 하는 만큼, 시니어 사용자를 위한 다양한 제품이 선을 보였다. 올해 전시는 “덜 조작하고, 덜 힘들고, 덜 고민하게”라는 기조를 생활가전 전 범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 제품의 경향성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갈래의 시니어 친화 기술 좌표가 드러난다. 첫째, 음성은 더 이상 보조 수단이 아니라 가전 조작과 정보 전달의 ‘주(主) 인터페이스’가 되고 있다. 둘째, 다양한 헬스케어 기기는 수치 기록 단계를 넘어 일상 변화의 전조를 알려주는 ‘예측’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두 흐름은 고령 사용자의 시력·악력·기억·판단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음성, 이제는 보조 아닌 ‘주 인터페이스’
과거 가전제품의 음성 인식은 사실상 기술 과시에 가까웠다. 인식률이 낮아 같은 말을 반복해야 했고, 동작 오류도 잦았다. 그러나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이 대중화되면서 기계와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현실이 됐다.
TV는 대화형 허브가 되었고, 에어컨과 조명은 기기 자체의 음성 엔진 또는 허브를 통한 자연어 제어로 재구성됐다. 삼성전자는 TV에 탑재한 ‘비전 AI 컴패니언’을 통해 콘텐츠 탐색·설정·생활 질의를 음성 대화로 통합하는 화면–음성 결합형 인터페이스를 제시했다. 하이센스의 에어컨 ‘U8 S 프로’는 실내 존재·동작 감지에 내장 음성 명령을 결합해 리모컨 없이 바람 방향과 온·습도를 조절하게 했다.
조명 영역에서는 필립스 휴가 지능형 조명 시스템의 허브 성능을 끌어올린 ‘브리지 프로’와 보급형 ‘에센셜’ 라인을 함께 선보였다. 야간 이동 등 스위치 접근이 어려운 상황에서 모션 자동화와 음성 제어의 조합을 일상화했다. 주방에서는 보쉬·지멘스의 ‘홈 커넥트’가 아마존 ‘알렉사’의 ‘마이 오븐 어시스턴트’와 연동되어 “무엇을 어떻게 조리할지”를 질문–응답 형식으로 안내함으로써 복잡한 하위 메뉴 탐색을 대화로 치환했다.
여기에 인공지능과 개인 청력 프로파일 기술을 기반으로 대사·안내의 선명도를 끌어올리는 오디오 보정 기술(미미 히어링 등)도 발표됐다. ‘보여주기보다 들려주기’라는 접근성이 현실 기능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핵심은 조작의 물리적 부담과 정보 이해의 인지 부담을 한 문장으로 덜어내는 데 있다. 디지털 접근성으로 고려한 시니어 사용방식의 기본값이 ‘음성 우선’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IFA 2025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건강의 패러다임, 측정에서 ‘예측’으로
웨어러블과 가정용 헬스 기기는 “어제 몇 걸음·몇 시간 잤다”는 단순 보고에서 벗어나, 장기 패턴을 학습해 미리 알리는 기기로 진화하고 있다. 위딩스 ‘스캔워치 2’는 업데이트된 소프트웨어(헬스센스 4)를 통해 심박·호흡·체온·수면·활동 등 수십 개 지표를 통합 분석해 컨디션 저하의 전조나 특정 질환 발생 가능성을 사전 알림으로 제시했다.
반지 형태 제품 중에서는 링콘이 ‘혈압 인사이트’ 데모를 통해 커프 혈압계로의 주기적 보정을 전제로, 절대값 측정이 아니라 개인 기준선 대비 변화를 읽는 방식을 보여줬다. 광학 센서로 수집한 신호를 바탕으로 아침 상승, 수면 부족 후 변동, 운동 직후 회복 속도 같은 패턴을 시각화하고 이를 예측형 알림으로 제공한다. 이때 알림은 약 조정 지시가 아니라 카페인·염분·수면·활동량 점검 같은 생활 행동 힌트에 가깝다.
이 흐름은 당뇨 관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다양한 연속혈당 측정 기기는 혈당 곡선을 수면 단계·활동 강도·심박 변이도와 겹쳐 읽어, 늦은 야식 후 새벽 시간대의 급상승 같은 위험 구간을 미리 알리고, 식사 순서 조정이나 식후 10~15분 걷기 같은 즉시 실행 조치를 제안한다.
변화의 핵심은 생체 데이터의 단순 표집이 아니라 해석과 연계다. 예측은 진단·처방의 대체가 아니다. 다만 ‘경보→행동→상담’으로 이어지게 하는 행동 유도일 때 가치가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시니어 건강관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숫자 읽기에서 주·월 단위 생활 리듬 관리와 질환 조기 경보로 옮겨갈 것이다.
결국 IFA 2025가 보여준 변화의 방향은 시니어 소비자를 ‘부가적인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설계 시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중심 사용자로 대하는 데 있다. 경쟁의 판도는 더 높은 수치가 아니라 더 낮은 부담에 있다. 이런 “덜 조작하고, 덜 힘들고, 덜 고민하게” 하는 제품 기획의 전환이 시니어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