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의 시니어 비즈니스 인사이드 ⑫]

그러나 눈부신 분양률과 고급스러운 건축물 이면에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도 자리한다. 화려한 ‘개발’의 이면에 ‘운영’의 지속성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수십억 원의 노후 자산을 투자한 고령자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 불황과 시니어타운 열풍
한국개발연구원은 올해 건설투자 증가율 전망치를 –8.1%로 제시하며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불황을 경고했다. 하루 평균 1.5곳의 건설사가 폐업하는 상황에서, 건설업계는 시니어 하우징을 새로운 활로로 주목하고 있다. 가장 큰 요인은 시장의 수요다. 실제로 용인의 ‘삼성 노블카운티’, 서울의 ‘더 클래식 500’은 보증금 10억 원대에도 불구하고 대기 기간이 1~2년에 이른다. 마곡과 부산에서 분양된 롯데 ‘VL’ 시리즈 역시 90% 이상의 계약률을 기록하며 흥행을 이어갔다.
정부도 이러한 흐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을 통해 유휴 국유지를 활용한 시설 조성, 토지·건물 소유 규제 완화, 주택도시기금 융자 지원 등 민간 참여를 적극 독려하고 있다. 특히 인구감소지역에 신분양형 실버타운을 도입해 운영 안정성을 높이려는 방안이 검토되는 등 정책적 지원은 더욱 강화되는 추세다.
운영의 공백, 반복되는 부실 사례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운영’이다. 시니어타운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고령자가 수십 년간 생활할 주거·의료·문화 공동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영 부실로 인한 피해 사례는 끊이지 않는다.
과거 고급 실버타운으로 주목받았던 한 시설은 18억 원의 분양가에도 불구하고 5년 만에 커뮤니티 시설이 폐쇄되고, 곰팡이와 누수로 방치되었다. 입주자들은 약속된 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노후 자산을 잃고 재산 처분조차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 최근 부산의 한 시설에선 단체 급식 수준의 식사, 부재한 의료 서비스, 응급 대응의 미흡 등으로 입주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최근 KBS ‘추적 60분’은 ‘노후를 분양합니다 - 실버타운이라는 허상’ 편을 통해 이러한 문제점을 꼬집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문제는 제도의 빈틈에도 있다. 실버타운은 ‘노인복지주택’으로 분류되지만, 노인복지법상 서비스 제공 기준이 구체적이지 않고, 아파트와 달리 입주자 대표회의가 없어 운영 투명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관리비 집행이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되지 않거나, 허위 광고로 수백억 원의 배상 판결을 받고도 시설이 방치된 사례는 이러한 구조적 허점을 드러낸다.
업계에서는 운영 실패 사례가 늘어남에 따라 시장 전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돌봄과 의료라는 전문 영역의 역량이 운영 품질을 좌우하는데, 분양 위주의 사업에 익숙한 건설사들이 새로 진입해 과연 더 높은 운영 역량을 보여줄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갖는 것이다.
시니어가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앞으로의 과제는 명확하다. 정부는 표준계약서와 품질인증제를 도입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최소한의 서비스 기준을 명문화해야 한다. 입주자가 누구든 일정 수준 이상의 돌봄, 의료, 문화 서비스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장기요양보험 수가를 일부 서비스에 적용하는 등 재정 지원을 통해 중산층 고령자의 비용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 일본의 유료노인홈이 개호보험(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과 같은 제도)을 활용해 안정적인 운영을 이어가는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운영 주체의 철학과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영리 법인이나 공익성을 중시하는 기관이 운영하는 시설은 저렴한 비용에도 높은 만족도를 보여준다. 반대로 단기 수익에 치중하는 운영은 입주자의 신뢰를 빠르게 무너뜨린다. 고령자의 삶은 수익 모델의 대상이 아니라 존엄을 지켜야 할 공공의 책무라는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시니어 거주시설은 한국 고령사회의 미래를 상징하는 중요한 실험대다. 그러나 개발의 열기만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진정한 시니어 비즈니스는 건물이 아니라 운영, 즉 고령자의 일상과 존엄을 지탱하는 서비스에서 완성된다. 정부와 민간, 그리고 소비자 모두가 이 현실을 직시할 때, 한국의 실버타운, 시니어 레지던스가 허상이 아닌 실질적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