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의 시니어 비즈니스 인사이드 ⑭]

고령사회의 돌봄 현장에서 가장 절박한 말은 단순하다. “사람이 없고, 길도 없다.” 사람은 곧 현장 인력이고, 길은 커리어의 경로다. 그런데 우리의 현장은 사람을 키우는 데보다 증서를 모으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 같은 국가자격과, ‘노인복지사·노인복지상담사·노인심리상담사·치매예방지도사·실버건강지도사·인지재활지도사’와 같이 이름이 비슷한 민간 등록증서들이 한 화면에 뒤섞인다.
구직자는 무엇이 실제 채용과 업무에 도움이 되는지 분간하기 어렵고, 기관은 각기 다른 수료증의 진위를 확인하느라 행정비용을 떠안는다. 자격은 본래 사회가 공유하는 신뢰의 약속이어야 하는데, 지금의 체계는 사교육 카탈로그처럼 흩어져 있다.
미래 없는 현장의 척추, 생활지원사
지자체가 운영하는 노인맞춤돌봄서비스의 척추는 생활지원사다. 독거·취약 어르신의 안부 확인, 일상지원, 지역사회 연계까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대응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핵심 인력은 별도의 국가자격이 아니라 수행기관의 공개채용과 내부교육 체계로 운용된다. 입직 문턱이 낮다는 장점이 있지만, 표준화된 역량 기준과 경력 인정, 승급의 사다리가 부재한 탓에 ‘직업으로서의 길’이 또렷하지 않다. 오래 일한다고 해서 경력이 동일한 언어로 읽히지 못하니, 이직과 탈락이 반복되고 숙련은 조직의 기억으로 남기 힘들다.
반대편에서는 ‘증서가 너무 많은’ 문제가 병존한다. 현장에서 통용되는 ‘노인복지사’ 명칭을 포함해 ‘노인복지상담사·노인심리상담사·치매예방지도사·실버건강지도사·인지재활지도사’ 등 유사 민간등록자격이 다수 존재한다. 이들 가운데는 실제 업무에 도움을 주는 과정도 적지 않지만, 법정 국가자격(예: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이나 공공의 배치 기준, 임금 체계와 원칙적으로 자동 연동되지 않는다. 결국 개인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여러 증서를 반복 취득하고, 기관은 서로 다른 명칭을 해석·환산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는다. 문제의 초점은 특정 자격의 이름이 아니라, 공공 표준과의 연결이 느슨한 상태에서 중복 취득과 행정적 비효율이 구조화되어 있다는 데 있다.
명칭 혼선, 중복 취득이 만드는 사회적 낭비
자격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사회가 읽어내는 공통 문법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같은 일을 두고도 서로 다른 말을 쓰고, 같은 일을 하는 사람도 서로 다른 증서를 내민다. ‘노인복지사’라는 직함이 채용 공고에서 널리 쓰이지만, 법정 국가자격은 사회복지사다. 민간 등록증서는 직무의 이해를 넓히는 보조 수단이 될 수 있으나, 그 자체가 공공 배치 기준이나 임금 책정의 자동 통로는 아니다. 이 간극을 방치하면, 개인은 ‘무엇을 더 배울까’가 아니라 ‘어떤 종이를 더 살까’를 고민하게 되고, 기관은 증서의 진위와 환산에 시간을 쓰느라 정작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일에는 늦어진다. 현장의 연령 구조는 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2024년 기준 활동 요양보호사의 평균 연령은 61.7세, 60대 이상 비중은 66.1%, 70대 이상은 약 10만 명에 이른다. 숙련을 축적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승해야 할 시기에, 우리는 여전히 개인의 지갑과 시간을 ‘증서 쇼핑’에 쓰게 한다. 자격의 수가 많아질수록 신뢰는 오히려 희석된다. 반대로, 적정한 수의 표준과 일관된 읽기 방식이 마련되면 시장은 단순해지고, 개인이 들인 비용과 시간이 현장 역량으로 치환된다. 어떤 경력과 역량을 어떻게 표준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사다리 필요한 외국인 돌봄인력 제도
외국인 요양보호사 제도 논의도 같은 지점에서 발이 묶여 있다. 제도 설계가 ‘요양보호사’라는 단일 자격을 전제로 인력난을 메우는 데 집중되어 있다 보니, 처음 들어오는 순간은 열리더라도 그다음의 경로가 보이지 않는다. 언어·문화 교육은 단발성 오리엔테이션에 그치기 쉽고, 현장 멘토링과 숙련 적층의 구조가 약하니 이탈률을 낮출 장치도 얇다. 무엇보다 “들어와서 무엇이 되는가”가 보이지 않으면, 초기 유입은 가능해도 정착과 전문성은 자라지 않는다.
일본은 입직→중급→국가자격→상위자격으로 이어지는 ‘스택형(누적형) 경력–자격 사다리’를 비교적 일찍 제도화했다. 초입자는 130시간의 초임자 교육으로 문턱을 낮추고, 현장근무와 병행 가능한 450시간의 실무자 교육으로 중급 역량을 다진다. 이후 3년 내외의 실무경력과 교육을 누적해 국가자격 ‘개호복지사’에 도달하면, 사례조정과 계획 수립을 담당하는 상위직 ‘케어매니저(介護支援専門員)’로의 추가 자격 시험을 통해 진입이 가능해진다. 교육은 통신·대면을 유연하게 결합해 경력과 학습이 상호 촉진되도록 설계되어 있고, 자격이 오르면 역할·책임·보상이 함께 상향되는 선순환이 작동한다.
외국인 인력 역시 같은 사다리 위에서 특정기능(介護)·EPA·재류자격(개호) 등을 통해 입국한 뒤 현장 적응→국가자격 취득→정착·고도화로 이어지도록 제도화되어 있어, 초기 유입과 장기 정착을 동시에 겨냥한다. 핵심은 명확하다. 더 많은 증서를 붙이는 일이 아니라, 경력과 교육을 누적해 예측 가능하게 승급하는 일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또한 간명한 사다리다. 생활지원사와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와 간호·재활 직역이 서로의 경력을 한 줄로 읽을 수 있는 공통 문법을 마련하고, 내국인과 외국인이 같은 사다리 위에서 경력과 학습을 누적해 올라가도록 만드는 일이다. 승급은 명찰을 바꾸는 의식이 아니라 역할·보상·책임이 함께 변화하는 약속이어야 하며, 그 약속이 보일 때에만 지원자는 모이고 남는다.
통합돌봄은 장소를 옮기는 행정 개편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에 두는 문법의 개정이다. 제도의 이름이 바뀌었다고 현장이 달라지지 않는다. 국가가 책임 있는 관리 주체로서 자격의 표준 언어를 세우고, 민간이 그 표준을 바탕으로 교육과 훈련의 활력을 더하는 큰 방향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의 경력과 역량이 어느 기관에서 일했는지, 어떤 로고의 수료증을 들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사회 전체에서 읽히고 통하는 구조가 마련될 때, 생활지원사와 요양보호사의 경험은 커리어가 될 수 있다.
누구나 같은 사다리 위에서 경력과 학습을 쌓아 올라갈 수 있고, 그 과정이 임금과 직무, 체류와 신뢰로 읽히는 구조가 필요하다. 경력·역량·보상이 일관되게 연결되는 단계형 체계, 이것이 자격증의 숲에서 길을 잃은 돌봄을 다시 사람 중심으로 돌려세울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