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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형 작가, CEO에서 예술인으로 인생 3막

입력 2025-09-24 07:00

15년만 세 번째 개인전에서 새로운 도약

(오병돈 프리랜서)
(오병돈 프리랜서)

이서형(활동명 이지·81) 작가는 ‘CEO 출신 화가’로 불린다. 금호건설 대표이사에서 은퇴한 그는 63세에 서양화가로 데뷔하며 인생 2막을 성공적으로 열었다. 그리고 지난 7월, 15년 만에 세 번째 개인전 ‘섞임, 긴 기다림의 미학 그리고 농악’을 통해 그는 또다시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이제 화가를 넘어 기획자로 나서며 인생 3막에 도전한다.

2007년 첫 개인전, 2010년 두 번째 개인전 이후 세 번째 무대를 선보이기까지 무려 15년이 걸렸다. 이유는 건강이었다. 활발히 창작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당뇨병으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붓을 드는 것조차 두려워졌다. “소위 늙어간다는 것을 느끼며 자신감이 사라졌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전환점은 지난겨울 찾아왔다. 가족과의 대화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15년 동안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다시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번 전시작의 상당수는 2009년에 제작된 작품이지만, 올해 그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창작에 나섰다. “예술에는 은퇴가 없다”는 그의 말처럼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새로운 꿈을 그리고 있다.

미술학도의 길

이서형 작가는 본래 ‘화가’보다 ‘금호맨’으로 더 익숙했다.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그는 1979년 금호건설에 입사해 1995년부터 2001년까지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건설업계 최장수 CEO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은퇴 후 돌연 그가 “그림을 그리겠다”고 선언했을 때, 아내를 비롯해 주위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화가의 꿈을 품어왔다.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생활 형편상 공부와 일에 몰두하며 살았을 뿐이다.

“아버님은 참 따뜻한 분이셨죠. 살아 계셨다면 저는 분명 미대에 진학해 화가의 길을 걸었을 겁니다. 제 삶을 돌아보면, 어린 나이에 겪은 상실감이 제 인생을 오래 지배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 그리는 법조차 몰랐던 그는 배우는 길을 택했다.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용인대학교 회화과로 편입했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까지 취득했다. 늦깎이 신입생으로서 기초 실력은 젊은 학생들에 비해 부족했지만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앞섰다. 작업실에서 살다시피 하며 미술 공부에 전념했다.

“60세를 앞둔 나이에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교수님들은 저보다 훨씬 어렸고,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그림을 배워왔죠. 그림 그리기 연습은 물론이고 미술용어 사전부터 미술사, 미학 서적을 사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제게 가장 큰 스승은 책이었습니다. 힘들었지만 참 행복한 시절이었죠.”

그 스스로 생각하기에 젊은 동기들보다 나은 점도 있었다. 바로 ‘경험’이다. 금호맨 시절 중동 지역을 비롯해 해외 현장을 누비며 외국인과 소통한 경험이 풍부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고, 이는 자연스레 그의 작품 세계의 뿌리가 됐다.

▲농악 포퍼먼스 작품 앞에 선 이서형 작가.(오병돈 프리랜서)
▲농악 포퍼먼스 작품 앞에 선 이서형 작가.(오병돈 프리랜서)

‘섞임’이 피워낸 소통의 미학

이서형 작가의 작품에는 한국적 정취가 강하게 배어 있다. 이번 개인전의 주제는 ‘섞임’이다. 2010년 두 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인 살풀이춤에 이어, 이번에는 ‘농악’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작가는 두 전시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소통’을 꼽는다.

“살풀이춤은 무당이 추던 춤이잖아요. 무당은 접신을 하는데 저는 그게 소통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우리는 소통이라는 것을 서로 주고받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서로 섞여야 진짜 소통이다, 본질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시작 가운데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작품은 농악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다. 그는 ‘정중동 II(일명 살풀이춤)’에서 영감을 받아 농악춤을 추는 이들의 발자국을 모티브로 삼았다. 퍼포먼스 장면은 10분 미만의 영상으로도 제작돼 9월 미디어아트 콘텐츠로 공개된다.

“농악은 본래 들판과 마을이 하나 되는 축제였지만, 산업화로 농업이 위축되면서 사라져간 서글픈 역사도 담겨 있습니다. 음악과 퍼포먼스 속에 이런 이야기를 녹이면 관객이 더 깊이 공감하고 흥미를 느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섞임’이라는 주제는 또 다른 실험적 작업으로도 확장됐다. 작가는 물감을 자유롭게 흘려 물감끼리 스스로 섞이고, 통과하고, 쌓이도록 했다. 그렇게 작품들은 2009년 탄생한 후 긴 세월 동안 그의 작업실에 묻혀 있었다. 세월이 지나며 화면 위에 예상치 못한 색의 층과 질감이 더해졌고,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섞임 연작’으로 세상 밖에 나왔다.

▲1 정중동Ⅱ(일명 살풀이춤). 2 사계 연작. 3 새롭게 공개한 섞임 연작.(오병돈 프리랜서)
▲1 정중동Ⅱ(일명 살풀이춤). 2 사계 연작. 3 새롭게 공개한 섞임 연작.(오병돈 프리랜서)

손주 덕에 새로운 도약

무엇보다 이번 전시가 가능했던 건 손자의 힘이 컸다. 지난해 겨울 그는 중학교 3학년이던 손자와 단둘이 일주일가량 집에서 생활했다. 저녁 식사 후 매번 다른 주제로 대화를 나눴는데, 어느 날의 주제는 ‘미술’이었다. 이 작가는 자신의 도록을 꺼내 작품 이야기를 들려줬고, 그 과정에서 잊고 지내던 열정이 되살아났다. 당시 함께 작성한 할아버지와 손자의 버킷 리스트가 전시장 한쪽에 놓여 그 따뜻한 시간을 고스란히 전한다.

“손자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15년 전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어요. 다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솟아올랐죠. 제게는 모든 손주들이 보물입니다. 젊을 때는 바쁘다는 이유로 자식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 손주들에게 더 애정이 가요.”

손자와의 대화가 나비효과가 된 셈이다. 세 번째 개인전을 열었고, 농악 퍼포먼스 기획도 이어졌다. 이서형 작가는 “이번 전시는 저의 과거부터 지금까지, 제 일생을 전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자평했다. 그의 말대로 이번 전시는 그의 회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화가가 아닌 기획자로 선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최근 그는 법인 ‘이지아르떼’를 설립했다. CEO로서의 경험을 살려 작품을 활용한 손수건·스카프 등 굿즈 제작과 판매를 구상 중이다. 더불어 미디어아트,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창작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다. 예술과 비즈니스의 융합 프로젝트인 셈이다.

“예술은 제게 생명과 같습니다. 작품 속에는 제 생각과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죠.” 그의 예술 인생은 어린 시절 품었던 꿈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도 가치가 변하지 않는 예술 작품처럼 그는 여전히 젊고 빛난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이를 먹어도 운동하고 좋은 생활을 유지하려는 건, 결국 젊게 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꿈을 꾸면 젊어지고, 늙었다고 생각하면 에너지가 사라집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프랭크 게리는 100세가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예술가에겐 은퇴가 없다는 걸, 저 역시 제 삶으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서형 작가(좌)와 관람객으로 온 강창희 행복100세자산관리연구회 대표(우).
▲이서형 작가(좌)와 관람객으로 온 강창희 행복100세자산관리연구회 대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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