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진짜 나로 사는 법… “얌전하게 살기엔 인생 짧아”

“솔직히 말하죠. 제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은퇴 이후의 삶이 이렇게 신나고 재미있을 줄 알았다면 더 빨리 은퇴할 걸 그랬어요.” 대한민국의 굵직한 대기업에서 40여 년간 CEO와 임원으로 바쁘게 살아온 성상용 작가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고백이다. 은퇴 후 더 활력 넘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가 지난 3월 ‘은퇴, 불량한 반란’이라는 도발적인 책을 펴내며 화제가 되고 있다.
‘불량’이라는 단어를 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사람, 착한 사람으로 사는 것도 훌륭하지만, 평생 선량하게만 사는 것은 억울하지 않나요? 인생 후반전에는 좀 불량해져도 괜찮습니다. 기존의 규범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도하는 용기가 진짜 행복을 만듭니다.”
변화는 곧 자신을 찾는 길
성상용 작가는 삼성그룹 공채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20여 년간 재직하며 삼성에버랜드 임원을 역임한 삼성맨이다. 이후 웅진과 효성그룹을 거치며 15년 동안 대기업 CEO로 근무했고, 건국대 등 대학에서 리조트경영학과 인간관계론을 강의했다. 67세에 은퇴 후 문예지 ‘현대작가’ 신인 공모전에 당선되어 작가로 문단에 등단했다. 평생을 조직의 일원으로 살아온 그는 은퇴가 새로운 시작이었다고 회상했다.
“평생을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았죠. 은퇴는 처음으로 내 삶의 주인이 되어보는 기회였습니다. 기존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창으로 떠났죠.”
그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인용하며 은퇴 후 자신을 찾기 위한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헤세가 말했어요. 기존의 규범과 관습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다고요. 그 말이 너무나 공감돼 은퇴 후 즉시 시골로 내려갔죠. 평창에서의 전원생활은 내가 결정하는 삶, 진짜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해줬습니다.”
많은 사람이 도시를 떠나길 망설이는 이유는 병원이나 편의시설이 멀다는 것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성상용 작가는 오히려 그 불편함에서 삶의 진정한 매력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직접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자연과 어우러져 생활하면서 사소한 불편함이 오히려 행복의 원천이 되었어요. 도시의 편안함을 버리고 시골의 불편함을 선택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습니다.”
은퇴의 네 가지 불안, 이렇게 맞서라
많은 이들이 은퇴 후 경제적 문제, 건강, 외로움, 그리고 무위한 일상이라는 네 가지 불안을 겪는다. 그는 이러한 은퇴 쇼크에서 벗어나려면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은퇴 후 겪는 경제적 불안의 실체는 자신의 삶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무력감에 있습니다. 이런 불안은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여전히 남의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데서 비롯하죠. 은퇴 이후 할 수 있는 일을 작고 단순한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작은 성공 경험들이 쌓이면 자신감과 용기가 생깁니다.”
건강에 대한 불안도 마찬가지라며 말했다. “은퇴 후 건강이 나빠지는 건 노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니 어쩔 수 없죠. 당뇨나 고혈압 같은 증세가 나타나면 약 먹고, 음식 조절해야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태도예요. 예방을 적극적으로 철저히 해야 합니다. 아프기 전에 미리 병원에 가고 건강관리는 자신의 책임이라는 생각으로 대해야 합니다.”
외로움과 무위한 일상은 삶의 목적을 찾지 못했을 때 가장 심해진다고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무조건 외로운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시간은 나 자신과 대화하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깨닫는 소중한 기회가 됩니다. 삶의 목표를 작게라도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는 데 몰두하면 무위함과 외로움은 사라질 겁니다.”
그는 은퇴 후 할 일이 없다는 불안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은퇴 후 무기력한 삶은 내가 선택한 결과일 뿐입니다. 하고 싶은 일은 찾으면 끝없이 나와요. 저는 차박 여행을 즐기며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엔 어디에서 눈을 뜰지 모르죠. 하지만 그 불확실성이 매력적입니다. 인생이 절대 지루하지 않아요.”
성상용 작가는 인터뷰 내내 주변 지인의 사례를 들며 은퇴 후 더 ‘신나는 인생’을 살 수 있음을 강조했다.
“산림학과를 나온 친구는 은퇴 후 산림청에서도 포기한 외래 덩굴식물로 인한 산림 피해를 조사하러 전국을 다녀요. 예산 배정이 어려우니 직접 두 발로 나선 것이죠. 조사 과정에서 지역 노인들과 친목을 다지기 위해 색소폰까지 배웠어요. 친구가 노인들에게 막걸리를 돌리고 색소폰을 불어주니 협조가 쉬웠다더군요. 덕분에 전국 곳곳의 산림 피해 현황을 기록하고 있어요. 이 얼마나 멋진 은퇴 생활인가요?”

쉽게 읽히는 책, 가슴을 두드리는 메시지
성상용 작가의 책이 독자들에게 반향을 얻는 비결은 쉽게 읽히는 문장에 있다. “시바타 도요(柴田トヨ) 할머니의 책을 보고 큰 용기를 얻었어요. 어려운 말이 아닌 진심이 담긴 쉬운 말이야말로 독자와 소통하는 최고의 방법이죠. 저도 그런 책을 쓰고 싶었어요.”
시바타 도요는 92세에 시를 쓰기 시작해 98세에 첫 시집 ‘약해지지 마’로 16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작가다.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으며, 2013년 10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성상용 작가의 책은 출간 한 달 만에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독자들의 반응이 가장 즐겁다고 말한다. “한 친구는 제 책을 단숨에 읽고 끝냈다며 전화로 극찬했어요. 또 책 속의 연락처를 통해 강연을 요청하거나 글을 부탁하는 이들도 늘었죠. 책은 독자에게 읽혀야 의미가 있어요. 저도 철학적 깊이보다는 쉽게 읽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 점이 주효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흔적을 남겨라
마지막으로 그는 삶의 흔적에 대해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어떤 흔적을 남기느냐입니다. 삶의 흔적이란 결국 남의 기억에 나를 남기는 것입니다. 작은 친절, 진심 어린 배려도 모두 흔적이 됩니다.”
지금도 성상용 작가는 전국을 돌며 강연을 하고, 차박을 즐기며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갯벌에서 일하는 어부, 마라톤에 도전하는 90세 노인,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 등 다양한 인생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 은퇴 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조언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책을 준비 중이다.
그의 왕성한 활동 속에서 이뤄진 만남들은 차기작의 재료가 된다. 성상용 작가의 차기작은 은퇴자의 삶뿐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 반드시 알아야 할 인간관계와 소통의 중요성을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그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얻는 교훈은 정말 소중합니다. 특히 은퇴 후에는 더욱 그렇죠. 이 책은 은퇴 후 삶뿐 아니라 인간관계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지침서가 될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은퇴가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찾아가는 멋진 반란입니다. 조금 더 불량해져도 괜찮습니다. 행복하려면 변화가 필요하니까요. 주저하지 말고 용기 내서 도전해보세요. 당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용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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