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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숲에서 듣는 빗소리 국립수목원

입력 2025-07-21 08:00

[명소 답사기] 마음 정화의 공간, 정원

간간이 비가 내린다. 雨요일이 자주 이어진다. 창밖으로 오락가락하는 빗속의 상쾌함을 그냥 바라만 볼 수가 없다. 고요한 숲을 떠올린다.


(이현숙 여행작가)
(이현숙 여행작가)


온 세상에 미스트를 뿌린 듯 촉촉한 공기 속으로 들어가 보는 하루. 비 오는 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숲을 내어주는 국립수목원. 날마다 짙어가는 수목원은 청량한 수분을 가득 머금었다. 

‘아무리 멀리까지 갔더라도, 아니 멀리 가면 갈수록 우리가 거기서 발견하는 것은 단지 우리 자신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듯이 여행은 짧은 거리라도 지금 나 자신의 마음을 보게 한다.

싱그러운 숲을 마주하자마자 기분이 한결 편안하게 풀려버린다. 입구부터 믿음직한 고목이 반긴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나무들이 나를 감싼다. 빠르게 마음이 열리며 평온을 얻는다. 숲에 든 것만으로 전신이 행복하다.


(이현숙 여행작가)
(이현숙 여행작가)


매표소를 통과하면 자연스럽게 산책길이 이어진다. 한 걸음만 걸어도 오래된 숲의 기운이 다르다. 국립수목원은 경기도 포천군 소흘읍에 자리 잡고 있다. 숲길은 포천과 남양주, 의정부시 일부가 포함된 약 8㎞ 구간이 해당되며,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나뉘어 있어도 이 땅의 아름다운 숲길은 이렇게 하나로 이어진다.


(이현숙 여행작가)
(이현숙 여행작가)


국립수목원은 한때 광릉수목원으로 불렸다. 수목원 바로 옆에 조선 세조와 정희왕후 능인 광릉이 있기 때문이다. 광릉의 위치는 행정구역상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 속하지만 수목원 바로 옆에 인접해 있다. 걸어서 10분 남짓 거리다. 

광릉의 주인공인 세조는 조선 제7대 왕으로 어린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살해한 서슬 퍼런 폭군이란 인상이 떠오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더러는 광릉의 한자어를 미칠 광(狂)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빛 광(光)의 광릉(光陵)이다. 볕 좋은 날엔 능을 향해 빛을 내리는 명당이긴 하다.


(이현숙 여행작가)
(이현숙 여행작가)


세조의 세력은 죽어서도 위엄을 보여준다. 세조가 묻힌 광릉을 중심으로 사방 15리(약 5.8㎞)의 숲을 왕실림으로 지정해 조선 말까지 철저히 보호했다. 덕분에 전쟁과 혼란한 시기를 거치면서도 500년 넘도록 잘 보존·관리돼, 국립수목원은 오늘날 이 땅의 으뜸가는 산림 생태계의 보고로 우리에게 소중한 숲이 됐다. 세월은 마침내 당당한 숲과 자연의 가치를 이렇게 공유한다.

아침부터 비가 뿌렸는데도 주차장에는 자동차와 대형 버스가 제법 많다. 이들은 사전 예약하고 찾아온 방문객들이다. 국립수목원은 숲의 보존을 위해 입장객을 제한하고 인터넷 사전 예약제로 운영 중이다. 사전 예약한 차량만 주차장 입장이 가능하며, 이용 차량 없이 대중교통·자전거·보행으로 입장하는 경우엔 예약 없이 현장 입장이 가능하다. 숲의 보호와 쾌적한 관람을 위한 예약제에 동참함으로써 오래된 숲에서의 소중한 하루를 제공받는다.


(이현숙 여행작가)
(이현숙 여행작가)


촉촉하게 젖어드는 숲속으로 우산을 든 연인들이나 숲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걷는다. 피부 속속들이 수분을 충전하며 빗속을 걷는 기분이란 그야말로 생기 넘친다. 게다가 숲의 향기에 둘러싸였다. 눈앞에서 보는 자연생태의 생생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보이는 것은 온통 짙은 초록빛. 상쾌한 공기와 피부로 느끼는 기온은 쾌청. 더없이 완벽하다. 어딜 돌아봐도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의 자태가 고고하다. 꼼꼼히 수목원을 둘러볼 생각이라면 코스를 미리 생각해두는 게 좋다. 국립수목원에서는 다양한 테마의 수목원 길을 선정해놓았다. 처음 방문하는 분을 위한 ‘느티나무·박물관길’이 있고, 새소리를 들으며 혼자 조용히 걷고 싶은 ‘소소한 행복길’ 등 각자의 상황과 취향에 따라 다양한 매력을 품은 여러 갈래의 코스가 있다.


(이현숙 여행작가)
(이현숙 여행작가)


요즘은 여름을 맞아 하늘로 치솟은 ‘힐링 전나무 숲길’을 많이 찾는다. 100년 가까운 수령의 전나무 숲은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길 중 하나로, 피톤치드 향이 짜릿하게 코를 찌른다.

산림박물관과 열대온실에 이은 산책로를 따라 육림호까지 걷다 보면, 입구에서 만난 그 많은 탐방객들은 어디로 갔을까 싶게 주변이 고요하다. 모두 흩어져 어느 숲, 어느 골짜기에 머물거나, 나만의 수목원 길을 따라 제각각 그 숲에 스며들었다. 

샛길을 통해 비밀스러운 탐방로에 들면 혼자만의 호젓한 공간과 시간을 누려볼 수 있다. 마치 대자연을 품은 어느 영화 속 장면에 내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운동화를 적시는 자잘한 풀꽃들의 신선한 초록이 예쁘고, 보석처럼 빨간 산딸기가 투명한 빗방울을 매달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감성 풀 충전이다. 숲을 벗어나 두리번거리다 보면 목책을 둘러친 안으로 카메라 렌즈를 들이밀고 비를 맞으며 사진 촬영 중인 사람들의 뒷모습도 보인다. 산림청 희귀 및 멸종위기 식물로 지정된 복주머니란과 광릉요강꽃을 사진에 담아내느라 열심이다. 


(이현숙 여행작가)
(이현숙 여행작가)


여전히 빗소리가 이어진다. 마음을 다독이는 고요한 숲의 소리다. 한국의 국가대표 수목원이 뿜어내는 기운을 온몸으로 받으며 한나절 지냈다면 마치 다른 세계를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비 오는 날 위대한 야생의 힘을 느껴보는 시간이다. 알록달록한 조형물로 조성된 테마정원이 아닌 오로지 수목원이다. 눈도 마음도 맑아지고, 자연의 평온함과 오래된 숲의 가치를 비로소 깨닫는 득템의 하루다. 

때마침 흩뿌리는 비를 보면서 떠나온 여행길이다. 마침내 더 이상 피할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내린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의 리듬이 빨라진다. 바스락거리던 몸과 마음에 빵빵하게 수분을 채우고, 한도 초과의 감성도 챙긴다. 식물 다양성의 보물 창고인 국립수목원의 서늘한 정원에 지금 여름을 알리는 수국이 한창이다. 그곳은 온통 초록빛….


(이현숙 여행작가)
(이현숙 여행작가)


비 내리는 생태습지 산책, 부평습지생태공원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국립수목원을 향해 가는 길 옆으로 작은 습지를 만난다. 부평생태습지공원은 남양주 봉선사천과 왕숙천의 맑은 물로 이루어진 습지라서, 수도권에서 가장 맑은 습지라고도 전한다. 광릉숲 생물권보전지역 자락에 자리 잡은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공원이다.

비 오는 생태공원은 분위기 있다. 공원 중심의 실개천을 따라 데크로드가 조성돼 있어 차분히 걷기 좋다. 광릉숲 둘레길 중 봉선사 쪽으로 이어지는 코스의 일부 구간이 부평습지생태공원을 경유한다. 그래서 친환경 생태 학습의 기회도 얻고, 부근의 수목원과 봉선사 방문을 겸한 나들이 코스가 되기도 한다. 습지생태공원이 넓지 않아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보기에 적당하다. 가을이면 만개한 황화코스모스의 물결을 볼 수 있다.   


부처님의 자비 향기 가득한 연꽃 정원, 봉선사

국립수목원과 봉선사는 오랜 이웃이다. 고려 광종 때 운악사라는 이름으로 세운 사찰로, 정희왕후가 세조의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중창하면서 봉선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한다. 입구에서 두 팔 벌려 하늘을 떠받들듯 우람한 모습으로 500년을 훌쩍 넘긴 수령의 느티나무. 절 마당 가운데 자리한 정중탑 앞 전각인 대웅전을 ‘큰법당’이란 한글로 표기한 점이 눈길을 끈다.

봉선사는 수도권에서 찾아가기 좋은 사찰이다. 특히 이맘때면 절집 앞의 연꽃 정원으로 찾아드는 발길이 늘어난다. 연못에서 후끈한 열기가 올라오고, 연밭을 뒤덮은 연잎과 연꽃의 품격이 사찰과 잘 어우러지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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