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독립기념관서부터 삼일 독립만세운동 성지 아우내 장터까지
3월이다.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3·1운동을 먼저 떠올리는 달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3월 1일, 우리 선조들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이를 온 세계에 알린 역사적인 날이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그날의 함성은 어느덧 106년 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하늘 아래 편안한 땅 천안(天安), 천안시 동남구 목천마을에는 뜨거웠던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억하고 되새기며 가치를 기념하는 독립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간밤에 온 대지에 뒤늦은 춘설이 살짝 내렸다. 이른 시간의 목천 땅은 고요하다. 하늘을 향해 나는 새의 날개처럼 활짝 편 채 솟아오른 겨레의 탑이 눈앞에서 압도한다. 높이가 무려 51m다. 곧이어 독립기념관을 마주한다. 역사 여행의 시작이다. 겨레의 탑에서 기념관까지는 10여 분 걷는다. 곧바로 연결되지 않고 걷는 거리를 둔 것은 독립으로 가는 멀고도 험했던 시련과 역경의 시간을 전하기 위한 의도라고 한다.

하나 됨으로 뜨거웠던 그날의 기억,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을 향해 걸어가는 양옆으로 태극기 한마당이 펼쳐진다. 광복 60주년인 2005년 광복을 상징하는 815기의 태극기를 게양하기 시작했다. 바람이라도 시원하게 부는 날이면 일제히 휘날리는 태극기 물결이 장관을 이루며 아름답기까지 하다. 태극기 마당 옆의 광개토대왕비에 새겨진 1802자의 비문도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둘러보면 좋을 듯하다.
이제 겨레의 집이다. 반듯하면서도 웅장한 기와집인 겨레의 집은 독립기념관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수덕사 대웅전을 본떠 설계한 맞배지붕이 단아하면서도 기강이 느껴진다. 동양 최대 규모로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보다 크다는데, 내부는 넓은 기념 홀로 독립기념관의 관람이 시작되는 곳이다. 중심에는 불굴의 한국인 상이라는 대형 조형물이 우리 민족의 독립 정신과 강인함을 표현한다.
독립기념관은 우리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온 근현대사를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십시일반 소중한 국민 성금으로 세워진 독립기념관이어서 더욱 의미 있다. 관람은 7개의 전시관과 MR 독립영상관, 홍보관과 체험관으로 이루어졌다. 방대하고 세밀한 전시물을 살피려면 관람하기에 따라 3~4시간은 예상해야 한다. 시기별로 역사적 사건과 영상물, 체험관 등을 효율적으로 둘러보기 위해선 미리 정보를 찾아 대략 동선을 정리하고 시작하는 게 좋다. 입장료는 무료다.
제1전시관 이름은 ‘겨레의 뿌리’다. 선사시대 고인돌이 먼저 보인다. 우리 겨레의 터전인 고인돌부터 시작해 한반도의 문화 발전, 외침에 항거하는 불굴의 민족혼을 담았다.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과 귀주대첩 등 전쟁 모습과 관련된 영상과 전시물이 볼 만하다. 제2전시관 ‘겨레의 시련’은 뼈아픈 일제강점기를 다룬다. 관람객들이 무거운 얼굴로 서서 일제의 식민 지배 실상을 실감한다. 제3전시관 ‘겨레의 함성’에서는 비로소 한마음 한뜻이 되어 3.1운동의 외침과 독립운동의 원동력을 키운다. 제4전시관은 ‘평화누리관’이다. 독립운동가들의 의지가 표현되고, 광복과 분단 극복, 평화로운 미래를 향한 영상이 눈길을 끈다. ‘나라 되찾기’의 제5전시관에서는 항일투쟁의 독립군단과 피 끓는 의열투쟁에 전율이 흐르고, 제6전시관 ‘새로운 나라’에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후 이 모든 걸 이겨낸 역사적 에너지를 평가한다. 제7전시관은 체험존이다. 마법사진관에서 역사 속 상황에 참여하는 합성사진을 찍어보거나, 실감형 인터랙티브 콘텐츠 영상 체험도 흥미롭다.
독립기념관을 나오면서 역시 이렇게 직접 다가가서 보는 역사가 중요하다는 걸 체감한다. 전시관마다 장엄한 역사적 울림과 함께 미래를 향해 빛나는 한국을 되짚었다. 귀한 감동의 시간이다. 이제는 기념관이 동양 최대 규모뿐 아니라, 역사 인식과 교훈에 걸맞은 예술적 가치나 여가 문화공간의 분위기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잔설이 녹지 않은 기념관 주변을 둘러보다 숨겨진 듯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한적한 공간을 발견했다. 기념관을 둘러싼 흑성산 주변에 조성된 단풍나무 숲길은 숨은 볼거리다. 겨레의 집 방향에서 길이 시작된다. 반려동물이나 바퀴 달린 탈것은 입장이 안 되는 맑은 환경의 숲길이다. 걷기 적당한 4km 남짓의 거리로 연중 개방한다.
이어지는 밀레니엄 숲길은 실제 운행되었던 무궁화 열차 2량과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 공원이다. 이곳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한반도 모형으로 지구 환경과 나무와 숲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자 평화의 숲을 조성했다고 전한다. 산책길을 벗어나면 겨레의 집 앞 백련못으로 이어져 밖으로 나온다. 독립기념관을 방문했다면 이렇듯 주변의 자연으로 들어가 계절의 서정도 함께 맛볼 일이다. 역사와 자연을 동시에 즐기는 여행이다. 봄꽃을 볼 날이 머지않았다.

꽃다이 가신 그녀, 유관순 사적지와 생가
1919년 음력 3월 1일, 충남 천안시 병천 아우내 장터에서 성난 민초들이 독립시위 운동을 했다. 당시 이화학당 재학 중이던 유관순 열사는 휴교령을 받고 고향인 병천으로 내려와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수많은 군중을 향해 병천 주재소 헌병들은 무차별 발포했다. 이때 유관순 열사 부모님은 일제의 총칼에 목숨을 잃었고, 열사는 형무소로 끌려가 수감되었다. 서대문형무소 수감 중에도 옥중 만세를 불렀던 유관순 열사는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순국했다.

삼일 독립만세운동이 펼쳐졌던 아우내 장터의 병천순대 거리를 조금 지나면 소박한 마을이 나타난다. 그곳에는 유관순 열사 사적지가 있는데, 가라앉은 듯 평온하다. 유관순 열사의 동상과 초혼묘 봉안기념비, 긴 계단을 올라 추모각을 돌아보면 누구나 생각이 깊어지고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어릴 적 3.1절이면 학교에서 불렀던 동요(童謠)가 입안에서 맴돈다.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기념관 내부 전시물 역시 그분의 삶을 조명한다. 기본적인 인권이나 삶을 유지하기도 힘든 극악한 환경과 기초적인 생존권조차 없이 생명을 위협하는 고문의 악행. 재판기록문 관련 전시물과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재현한 디오라마, 8호실 감옥에서의 수인복, 서대문형무소의 벽돌, 수형자 기록표, 호적 등본 그리고 재판 과정을 담은 매직 비전, 출생에서 순국까지의 일대기를 담은 전시물과 영상, 고문 도구인 벽관 체험을 통해 일제의 잔악성과 유관순 열사의 불꽃 같은 삶 속에 녹아 있는 나라 사랑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전시관이다.
사적지에서 유관순 열사 생가는 가깝다. 병천면 용두리 마을 입구에 생가와 다니던 매봉교회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매봉교회는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일제에 의해 폐쇄되었다가 이화여자고등학교 창립 80주년을 맞아 재건립됐다. 바로 옆으로 민족운동의 지도자 유석 조병옥 박사 생가도 있다.

광복운동의 높은 산, 이동녕 선생
천안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석오 이동녕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의장으로 조국 광복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이동녕 선생의 기념관과 생가는 목천읍 동리마을 안에 있으며, 독립기념관에서 자동차로 5분 정도 거리다. 기념관에 들면 민족 교육기관 서전서숙과 신흥무관학교 설립, 독립군 양성 및 교육에 힘쓴 사실을 알게 되며, 선생의 애국혼과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와우산을 배경으로 들어앉은 소박한 생가에 뒤늦은 춘설이 난분분하다. 왜가리 서식지로 유명한 산 아래 생가 옆으론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수호신처럼 든든하다. 이제는 돌아와 고향 마당에 한적하게 앉아 있는 선생의 좌상 무릎 위에 내린 눈이 녹지 않고 담요처럼 포근히 덮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