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단위 생각법ㆍ호흡명상으로 관리
일조량이 많고 습도가 높은 날이 이어지면 쉽게 무기력해지기 마련이다. 일과 가정, 사회적 역할을 오롯이 짊어지고 살아온 중장년에게는 무더위가 더 버겁게 다가올 수 있다. 여름철 무거운 마음을 다스리고 중심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호흡 명상’과 ‘하루 단위 생각법’을 소개한다.
여름은 예기치 않은 혼란이 찾아오기 쉬운 계절이다. 예민해진 감각 탓에 느닷없이 우울감이나 무력감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마음이 약해진 건 아닐까?’ 하는 자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럴수록 마음의 중심을 되찾는 일이 중요하다.
권순재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에 따르면 우리의 기분은 일조량과 온도, 습도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고 한다. 특히 여름철에는 무더위나 장마가 불안 증상을 자극해 신체리듬이 깨질 수 있다. 인간의 기분은 신체감각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높은 습도와 일조량으로 호흡이 불편해지거나 잠이 부족해지면, 뇌는 이를 위기 상황으로 인식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분비한다. 이는 면역력 저하, 불안정한 감정, 피로감 등으로 이어진다.
중장년 위한 하루 훈련
특히 중장년은 삶의 구조가 전환되는 시기다. 직장에서의 역할, 가정에서의 책임, 변화하는 신체와 사회환경까지 겹쳐 계절의 변화가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에릭슨의 사회심리적 발달 단계에 따르면, 청년기 삶의 기준은 성과와 속도지만 중년 이후에는 지속과 균형이 화두가 된다. 그러나 전환기에 목표와 방향을 잃으면 깊은 무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권 원장은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하루 단위 생각법’을 제안한다.
하루 단위 생각법은 복잡한 미래 대신 오늘 해야 할 한 가지 일, 먹을 식사, 내가 쉴 시간 등에 집중하는 훈련이다. 사고를 단순화하고 과도한 예측에서 벗어나 현재에 몰입하게 만든다. 인생 전체를 놓고 ‘앞으로 뭘 하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같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 활용할 수 있다. 이 방법은 권 원장이 실제로 공황장애와 우울증 치료에서 제안하는 전략이다. 불확실성은 불안을 키우고 불안은 신체감각을 극대화하기 때문에, 하루를 쪼개 사고는 행위가 마음의 무게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설명이다.
별다른 증상이 없고 겉으로 아무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도, 감정 소모가 지속되다 보면 일상에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하루 단위 생각법은 여러 경계가 흐려진 삶에서 다시 주도권을 찾게 해준다. 권 원장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확인하고 해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며 “이 단순한 훈련이 중장년의 심리적 자율성을 회복시켜준다”고 덧붙였다.
관찰 명상 통해 ‘나’ 살피기
그럴 수 있다고, 그럴 시기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여름철 마음 돌봄은 시작된다. 내면이 흔들릴 때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틈 하나만 있다면 그것이 곧 회복일 터. 불교 명상 지도자인 서암 스님은 “감정 조절이 어렵고 혼란스러울 때 회피성 매개체를 찾기보다, 스스로 상태를 인지하고 차분히 들여다보는 게 우선”이라고 한다. 그는 명상을 살아 있는 나와 마주하는 일이라 정의하며, 그 시작으로 ‘호흡 명상’을 권한다.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며 자신을 객관적으로 지켜보는 수행법이다. 허리를 바로 세워 앉아서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실 때 ‘하나’, 내쉴 때 ‘둘’… 열까지 세고 다시 거꾸로 내려온다. 호흡의 수를 세며 흐름을 따라가는 식이다. 명상 초보자도 쉽게 집중하고 감정의 흐름을 알아차릴 수 있다.
물론 고요히 앉아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호흡 명상이 익숙해졌다면 본인의 상태에 따라 방식을 달리할 수 있다. 불안하거나 화가 난다면 ‘호흡 명상’이나 ‘와식 명상’을, 무기력하거나 우울하다면 ‘절(108배) 명상’이나 ‘걷기 명상’을 진행해도 좋다. 그중에서도 절 명상은 손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쓰는 활동이자, 깊은 호흡과 함께하는 수행이다. 들숨에 상체를 들어 올리고, 날숨에 몸을 숙이며 감정과 호흡을 조율해나간다. 체력에 맞게 절을 27배, 54배, 108배로 나눠 실천해도 된다. 땀과 함께 가슴속 응어리와 번뇌가 씻겨나가는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핵심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위에 몰두하며 감각과 상태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밥을 먹을 때는 음식의 온도와 식감 그리고 입술과 치아를 움직이는 감각에, 걸을 때는 땅에 발이 닿는 온도와 느낌에 집중하는 것도 일종의 명상이다.
서암 스님은 “명상은 특별한 시간에만 하는 것이 아니며, 삶 전체와 연결되어야 한다”며 “들뜬 에너지는 단정한 자세로 가라앉히고, 침체된 에너지는 몸을 움직여 환기시키면 된다”고 조언했다.
함께하면 어렵지 않다
지속을 위해 ‘명상 일기’를 써봐도 좋다. 매일 몇 분 정도 명상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한 줄씩이라도 기록하는 거다. 꾸준히 하다 보면 흐름이 보이고, 습관이 잡힌다. 혼자 하기 어렵다면 가까운 사람과 ‘명상 챌린지’를 시작해도 좋다.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하루에 한 번 ‘오늘 명상했습니다’라고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서로 자극이 되고, 실천 의지가 생긴다.
명상이 감정을 억누르거나 없애주는 만능 해결책은 아니지만, 서암 스님은 “명상은 내면에 일어나는 불편함을 억지로 덮기보다, 그 감정과 함께 앉아 있을 수 있는 여유를 준다”며 “단 몇 분의 고요한 시간이라도 매일 쌓이면 마음은 분명 달라진다”고 조언했다. 권 원장 역시 “마음을 다루는 일은 혼자보다 함께할 때 쉬워진다”며 “상담, 치료, 모임 참여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마음의 회복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