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리버’ 배우 서이숙
하루아침에 아들이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동성애자라는 이유에서다. 가상의 이야기지만, 우리 사회가 마주하는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은 요즘이다. 차별과 혐오에 대한 담론이 계속되는 오늘날, 성소수자 문제에 뿌리까지 접근하는 연극 ‘빈센트 리버’가 막을 올린다. 드라마, 연극 등 다방면에서 관록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배우 서이숙은 아들을 잃고 절망하는 ‘아니타’ 역을 맡아 작품의 메시지를 전한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의 일을 작품으로 말하고, 연기로 표현하고 싶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이번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작품을 선택할 때 두 가지를 우선순위로 삼아요. 창작극과 국내에서 초연되는 번역극은 웬만해선 무조건 하자는 주의죠. 창작극은 뿌리부터 만들어내는 거니까 사실 완성도 면에서 몇 백 년 동안 이어져온 번역극에 비하면 부족한 부분이 많거든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연극 선배로서 의무감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번역극은 창작의 여지가 있는 초연작을 선호해요. 누군가 한 번 했던 작품은 재미없잖아요. 그런 점에서 국내 초연작인 ‘빈센트 리버’는 고민할 이유가 없었어요.
Q. 작품의 어떤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나?
저는 작품에서 이야기를 제일 먼저 봐요. 지금 내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에서 어떤 메시지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을지 고민하죠 ‘빈센트 리버’는 호모포비아 이야기예요. 성소수자 혐오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죠. 제가 이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변희수 전 하사가 세상을 떠났단 소식을 접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더 이상 기피하지 말고, 한 번쯤 툭 던져놓고 말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더라고요.
Q. ‘아니타’는 어떤 인물인가?
아니타는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몰라요. 죽고 나서야 알게 되죠. 그래서 아이를 잃은 충격만큼 ‘왜 내가 이 아이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을까’ 하는 자괴감에 빠져요. 아들과 모든 걸 공유하는 사이였다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우리 사회 부모들도 그래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갈등이 생기고 골이 깊어지죠. 자식이 어떤 사람인지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서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면, 그걸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쉽지 않은 캐릭터인데, 어려운 점은 없나?
이 작품뿐만 아니라 연극을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기도 한데요. 저는 연기할 때 저 혼자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라 이 감정을 객관화시켜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배우가 감정에 과하게 빠져버리면 극한의 감정 그 자체만 남아 있지, 이야기는 전달이 안 되거든요. 그러려면 감정을 잘 나눠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려워요. 강약 조절이랄까요? 그래서 작품을 많이 보고 정교하게 분석하려고 하죠.
Q. 작품을 준비하며 인상 깊었던 점은?
작품 연습하면서 저희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데, 표현을 못 해서 그렇지 젊은 친구들 중에도 성소수자가 굉장히 많대요. ‘동성이 다가오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열어놓고 있다’는 대답을 꽤 많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단순히 섹스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방식이 통한다면 이성이든 동성이든 가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굉장히 놀라우면서도, 사랑이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되더라고요.
Q. 관객들이 작품을 통해 느꼈으면 하는 바는?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 곁에 가까이 있구나’ 생각하는 것만으로 의미 있다고 봐요. 거리감에 따라 느끼는 차이가 크거든요. 이를테면 지하철에서 누군가 맞고 있는데 100m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도와줄 용기가 선뜻 나지 않지만, 눈앞에서 목격하면 자기도 모르게 나서게 되는 게 사람 심리잖아요. 그런 것처럼 성소수자 문제도 의식해서 들여다보고 관심을 가지면 개인화된 사회라도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싶어요. ‘빈센트 리버’가 그 관심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연극 '빈센트 리버'
일정 4월 27일~7월 11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연출 신유청
출연 서이숙, 전국향, 우미화, 이주승, 강승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