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골퍼 김용준 칼럼] 우승하고 욕 먹는 패트릭 리드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승부사에게 따뜻함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가슴 따뜻한 선수가 승리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골프 월드에서 이런 내 소망이 이뤄지는 일은 드물다. 인간미 넘치는 선수가 행운까지 따라줘야 가까스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 그 반대는 허다하다. 악당이 득을 보는 일 말이다.
‘골퍼는 신사 혹은 숙녀’라고 믿기로 한 골프 정신의 빈틈일까? 2021년 골프 시즌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가까운 골프 전문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골프 중계 보고 있냐고. 미국프로골프협회(PGA) 투어 파머스 인슈어런스 대회 3라운드(사흘째 경기)를 하고 있었다. 악동으로 불리는 패트릭 리드가 경기위원을 불러 러프에 박힌 볼 구제를 받고 있는데 찜찜하다고 했다. 리드가 페어웨이 벙커에서 친 볼이 제법 높이 떠서 한 번 튀는 장면을 카메라가 잡았다는 것이다.
한 번 튀었다가 멈췄다면 낙하 충격으로 볼이 박히지는 않을 터. 그러니 박힌 볼 구제를 받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맞는 말이다. 골프 규칙에 박힌 볼은 구제를 받을 수 있긴 하다. 박힌 볼은 벌타 없이 들어 올려 가까운 곳에(물론 한 클럽 이내 거리에) 드롭하고 플레이하면 된다. 그런데 원칙이 있다. 볼 일부가 지면 아래로 내려가 있다고 다 무벌타 구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볼이 공중에서 떨어진 충격으로 박혀야만 된다. 이미 있던 홈에 굴러 들어가면 구제가 안 된다.
서둘러 사회관계망(SNS)에 올라온 영상을 봤다. 그랬다. 리드가 친 볼은 멈추기 전에 한 번 튄 것이 분명했다. 구제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리드는 볼을 마크하더니 들어 올리고는 볼이 박혀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볼을 원래 자리가 아니라 근처에 내려놓고는 경기위원을 불렀다. 경기위원은 무벌타 구제를 받도록 해줬다.
리드는 꽤 깊은 러프에 있던 볼을 풀이 조금 덜 깊은 곳에 ‘합법적으로’ 드롭하더니 멋지게 샷을 해서 홀 가까이에 붙였다. 그러곤 파 세이브를 해냈다. 그런데 평소 리드의 행동거지가 바르지 못한 탓일까? 현지 방송 해설자는 리드가 규칙을 위반한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같은 조 선수에게 먼저 알리지 않고 볼이 박혔는지 확인하려고 집어 든 것은 규칙에 어긋날 수 있다고 말이다. 또 집어 올린 볼을 다시 제자리에 내려놓지 않고 옆에 놓고 경기위원을 부른 것도 잘못됐다고 했다. 전화한 기자도 해설자 말이 맞는지 물었다. 리드가 규칙을 어긴 것 아닌지 말이다.
나는 잠깐 호흡을 가다듬고 다음과 같이 답했다. 리드에게 벌타를 줄 수 없다. 우선 볼이 박혔는지 확인할 때 남에게 알리지 않아도 된다. 예전에는 미리 알려야 했는데 2019년에 규칙을 바꿨다. 집어 올린 볼을 옆에 내려놓고 경기위원을 불러도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다. 경기위원을 부르기 전에 꼭 원래대로 되돌려놓으라는 조항은 없다.
혹시 볼을 손에 들고 있거나 캐디에게 맡겼다가 무심코 볼을 닦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행동이니까, 지혜롭다고도 할 수 있다. 경기위원이 와서 박힌 볼이라고 판정하면 무벌타 구제를 받을 수 있다. 이때는 볼을 닦을 수도 있다. 그런데 박힌 볼이 아니라고 판정하면? 볼을 닦을 수 없다. 이미 볼을 닦아버렸다면? 벌타를 받을 수밖에 없다.
패트릭 리드가 하는 행동을 보면서 나는 이 선수가 ‘멍청한’ 악당은 아니라고 느꼈다. 골프 규칙을 상당히 깊게 잘 이해하고, 그것을 잘 이용해서 이득을 봤기 때문이다. 나쁘게 말하면 악용한 것이고. 리드가 한 행동은 그 다음 주까지 골프 세상에 회자됐다. 대개 리드를 욕했다. 볼이 튄 것을 알거나 짐작하고도 시치미를 뗐다고 본 골프 팬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 진짜 실수는 경기위원이 했다고 봐야 한다. 물론 내 의견이다. 그날 리드는 선두 조였다. 경기위원은 문제가 된 샷을 카메라맨이 잡았는지 확인해야 했다. 본부에 무전을 해서라도 리드가 한 샷을 잡은 화면이 있는지 체크해야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볼 놓인 상태만 보고 재정을 내린 것이다. 그 덕에 리드는 기적처럼 파 세이브를 했고. 리드에겐 더없이 값진 파였다. 여러 타 앞서서 선두를 달리다 그 전 홀에서 실수를 해서 2위와의 격차가 갑자기 줄어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튿날 리드는 승부사답게(어쩌면 뻔뻔하게) 샷을 날렸고 우승컵을 손에 쥐었다. 우승을 하자 리드가 한 행동에 대한 비난은 더 커졌다. 급기야 PGA 경기위원회가 리드는 죄가 없으며, 경기위원의 판정도 문제가 없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현장에서 최선을 다한 판정이었다고 밝힌 것이다. 내가 보기엔 변명이다.
리드에게 운이 따른 것일까? 매너가 좋아 팬이 많은 로리 매킬로이도 같은 날 똑같은 상황을 똑같이 처리한 사실이 드러나자 비난은 사그라들었다. 평판이 나쁘면 무슨 짓을 해도 곱게 봐주지 않는다. 재능이 뛰어나고 큰 성과를 내도 말이다. 리드 사건을 보며 나도 타산지석으로 삼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