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근 수리수리협동조합 이사장
진공관 앰프, 턴테이블, 카세트테이프…. 지금은 자주 쓰이지 않는 음향기기의 가치를 되살리고, 그때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던 아날로그의 향취를 전하는 곳이 있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2층 ‘수리수리협동조합’이다. 2017년 낙후한 세운상가를 되살리는 ‘다시·세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립된 수리수리협동조합은 ‘추억을 고쳐드립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연식이 오래돼 고장 난 음향기기를 수리한다. 겉보기엔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 같은 기기도 이승근(75) 수리수리협동조합 이사장의 손길을 거치면 다시 태어난다. 아날로그 음악과 기계가 좋아 55년째 이곳에서 오래된 음향기기를 고치고 있다는 이 이사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언제부터 음향기기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아버지랑 청계천 길을 따라 자주 걸어 다녔어요. 길가에 노점 많았는데, 대부분 ‘하꼬방’(판잣집)이라 어수룩했죠. 거기에 있는 음향 시스템을 구경하는데, 신기하더라고요. 소리가 나니까. 길가에 떨어진 거 주워서 장난도 해보고 놀았죠. 그런 순간들이 동기가 돼서 전기·전자 계통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어요. 그 후 1964년쯤 고등학교 막 졸업하고 이곳에 왔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 거예요.
Q. 기기 수리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요?
먼저 홈페이지에 문의를 해요. 문의는 한 달에 100건 정도, 혹은 그 이상 들어올 때도 있어요. 근데 기술자라고 그걸 다 고칠 수 있는 건 아녜요. 수리가 불가능한 것들도 있죠. 그중에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예요. 그래도 한 60~70% 정도는 다 고쳐요. 기간이나 가격은 기계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보통은 10일 이상 걸린다고 보면 돼요. 지방에 사는 분들은 택배로도 많이 보내요.
Q. 수리를 요청하는 이들의 연령대는요?
빈티지 오디오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60대 이상이에요. 60대나 70대 정도죠. 나하고 연배가 비슷해요. 반대로 젊은 친구들 중에서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젊었을 때 애지중지하던 유품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아요. 부모님 생각이 나니까 잘 안 되고 고장이 났어도 버리기가 아까운 거죠. 그러다가 그 기기로 음악을 들어보니, 본인들이 듣던 거랑 또 다른 느낌이 드나 봐요. 그래서 더 좋아하고 신기해하는 것 같아요. 이것도 복고 열풍 중 하나라고 해야 할까요.
Q. 한층 위에 있는 음악 감상실도 운영하신다고요.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요?
‘다시·세운’ 프로젝트 준비할 때 무얼 해볼까 하다가, 옛날에 다니던 음악 감상실이 생각났어요. 그땐 여기 종로 바닥에 음악 감상실이 많았거든요. 뒤시네, 세시봉, 카네기, 메트로 이런 곳들이 다 전문 음악 감상실이었죠. 그 후에 발전된 형태가 다방이고요. 젊었을 땐 반 정도 미쳐있을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기도 했고, 그 이후에도 음향기기 만지는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옛 음악 감상실을 표방한 청음실을 운영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와서 쉬다 가라고 만든 거죠.
Q. 아날로그 음악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빈티지 오디오만의 감성이 있어요. 디지털 음원은 소리가 깨끗하긴 해도 날카롭거든요. 반면 빈티지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는 편안하고 구수하죠. 무엇보다 소장 가치가 있잖아요. 옛날 생각은 나는데, 옛날 것들은 자꾸만 사라지니까. 과거는 흘러갔어도 지워지는 건 아니잖아요. 좋고 나쁨을 떠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으니 옛것을 애호하게 되는 거죠.
Q. 동년배 시니어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다면요?
해리 제임스의 ‘잠자는 호수’, 앤디 윌리엄스의 ‘문 리버’를 좋아해요. 해리 제임스는 몇 안 되는 백인 트럼펫 연주자죠. 또 중국 영화중에 ‘스잔나’라고 있는데, 여기에 나온 주제곡들이 다 좋아요. 영화 주인공인 리칭이 부른 곡도 있죠. 이런 노래 들으면 옛날 생각 많이 나요. 내 또래들은 아마 들으면 다 알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