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 중에 정리를 잘하는 야무진 친구가 있다. 그녀는 만날 때마다 눈에 익은 옷을 단정하게 입고 나온다. 계절별로 세 벌의 옷만 남기는 게 목표인 친구다. 외출할 때 빼곡한 옷장을 뒤적이며 정작 입을 건 없다고 툴툴댈 일은 없다고 덤덤히 말하는 친구. 그녀가 그럴 때마다 “무엇을 입을까 고민할 필요 없는 홀가분한 삶이라 좋겠다”며 끄덕이다가 이내 "쉽지 않아"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한다.
그녀와 달리 나는 물욕이 많은 편이었다. 소소한 것들도 버리기를 주저했다. 마음은 버리자고 외치는데 실행이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끌어안은 것들을 애지중지 아끼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한때 이슈가 되었던 저장강박증이 아닐까 찾아본 적도 있다. 다행히 병적인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 후로 종류에 상관없이 하루 한 가지 없애기를 실천하고 있다.
우르르 없애기는 쉽지 않아도 한 가지 고르기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엔 그랬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한 가지 고르기도 쉽지 않았다. 멀쩡한 물건을 없애는 건 아닌지 갈등이 생겼다. 요즘은 나름 작은 의식을 치른다. 없애기로 결정한 물건을 손에 들고 인사를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함께해줘서 고마웠어. 잘 가.” 이런 행위를 하는 순간 유치하긴 하지만 뭔가 아쉽고 미안했던 마음이 줄어든다. 홀가분해지는 효과까지 있다. 때때로 한 가지가 열 가지가 될 때도 있다.
얼마 전에는 착용하지 않는 진주 목걸이 한 점을 경매에 내놓았다. 동기들의 공동 회비를 늘리기 위한 경매였는데 7만 원에 낙찰되었다. 내가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서 잘 쓰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버리지 못하는 저장강박증은 강박장애의 일종이라고 한다. 사용 여부를 떠나 무조건 저장하고, 없애면 불쾌하고 불편한 감정이 드는 건데 절약 또는 취미로 수집하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이 물건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지, 보관해둬야 할 것인지에 대한 평가를 쉽게 내리지 못하고 일단 저장해둔다는 것이다. 의사결정과 행동에 관련된 뇌의 전두엽 부위가 제 기능을 못할 때 이런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심리학자 랜디 프로스트(Randy Frost)와 게일 스테키티(Gail Steketee)가 저장강박증의 사례를 연구하고 공저한 ‘잡동사니의 역습’(Stuff-Compulsive Hoarding and the Meaning of Things)에는 저장 강박에 관한 정상과 비정상 경계의 모호함에 대한 언급이 있다. 소유물을 성공과 부를 과시하는 외면적 징표로 이용하는 물질주의자들과 다르게 저장강박증이 있는 사람들은 내면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물건을 저장하는데, 그들에게 물건은 장식적 허울이 아니라 정체성의 일부라는 것이다.
미국 뉴햄프셔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인정을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람이 물건에 과도한 애착을 보이는데, 인간관계가 안정적이고 충분히 사랑받는 느낌을 갖게 되면 저장강박증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무언가를 끌어안고 산다는 것은 빈 마음을 채우려는 나름의 보호기제가 발동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월이 더 많이 지나 마음에 공간이 생긴다면 그 공간을 채우는 건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