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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할빠 연맹’ 출범 방지책

기사입력 2020-05-07 09:11

(사진 정원일 시니어기자)
(사진 정원일 시니어기자)
경기도 용인에 사는 김남일 씨(66·가명)는 최근 손자 돌봄을 다시 시작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지난 5월 2일 양재역에서 만난 김 씨는 “은퇴 후 할빠 역할을 한 지난 3년간의 세월은, 은퇴가 아닌 또 다른 노동의 세월이었다” 라고 말했다. 그는 맞벌이 아들의 5살, 2살 손자들을 아내와 같이 돌보러 다녔다. 처음에 아내는 “애들 집에서의 식사와 간식 마련, 청소 등 어려운 일들은 내가 할 테니 당신은 그저 어린이집에서 데려와 몇 시간 놀아주기만 하면 된다”라고 유혹했다. 그런데 그는 ‘애들과 놀아준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이지 몰랐다. 과거 육아 경험이 있던 아내와는 달랐다. “사실 근무시간보다 강도에서 여자들과 차이가 많이 나요. 한 명을 안아주면 또 한 녀석이 울며 보채요. 몇 차례 반복하면 힘이 쏙 빠져요. 달래는 요령도 없고 업는 기술도 부족하니... ” 라고 그는 말했다.

시간 잘 가는 게임이나 TV 시청은 며느리에게 금지 당했으니, 애들과 놀아주는 할빠들의 콘텐츠는 단순할 수밖에 없다. 공놀이, 총싸움, 레슬링 등은 모두 육체적인 활동을 수반한다. 한 시간이면 탈진이 된다. “할빠들을 위한 교육 강좌가 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거기서 남자들끼리 서로 머쓱하게 마주칠 장면을 상상하니 엄두가 나질 않아요”라고 그는 말했다. 현실과 직결되는 돌봄비도 문제였는데, 며느리가 김 씨의 아내에게 주는 방식이었다.

애들의 간식비 등, 장 보는 비용도 포함되어 있어 구체적인 액수를 밝힐 수 없다는 아내는, 그것을 자신들의 생활비로 사용한다며 그동안 단 한 푼도 김 씨에게 지불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지쳐 가던 김 씨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외국 여행 다녀온 사람을 접촉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자가 격리를 강력히 시행하면서 적당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았으나, 손자 돌봄 거부 시의 후환이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래도 김 씨는 나은 편이다. 서울 구로동의 양주석 씨(64·가명)는 아예 병을 얻은 경우다. 양 씨는 유방암 수술을 한 아내와 함께 세 살배기 외손녀를 돌봐주러 다닌다. 건강이 나쁜 아내를 대신하다 보면, 거의 모든 것이 양 씨의 몫이다. “손녀도 나한테 안기는 게 편하니 나만 찾고, 눈치가 빤하니 모든 사항을 저에게만 요구해요”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다가 교직에 있는 딸의 야근이 잦아지면서 양 씨의 허리에 탈이 났다. 아내와 손녀를 동시에 돌보다 생긴 병이었다. 그래도 그간 마음은 편했었는데, 딸이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갈등까지 생겼다. “종일 딸과 같이 있다 보니까, 혼자 애를 볼 때와는 다르게 평가와 감시를 받는 기분이 들었고 또 실제로 잔소리도 많이 들었죠. 나중에는 유일한 낙인 담배까지 끊으라고 요구당했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면서 불면증까지 생겼다. 그런데도 앞서의 김 씨와 마찬가지로 보상이 없었다. 역시 딸이 아내에게 돌봄 비를 지불하기 때문이다. 그간 아내에게 항의도 해보고 협상도 해봤지만 실패했다. 사업가였던 그는, 생활비를 주는 데에만 익숙했기 때문이다. “사실 따로 통장 입금을 해 주면 가장 좋겠지만 그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그저 한 달에 한두 번 아내 몰래 봉투를 찔러 줬으면 해요”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육아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황혼 육아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할빠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들은 체면 때문에 혹은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자식들 집으로 향하고 있다. 앞의 예에서 보듯이, 은퇴 후의 남자들이 겪는 가정 내에서의 권력 변화라고 하기에는 가혹한 경우도 많다. 그래서 태업이나 파업도 생각해 보았지만 직장폐쇄로 ‘집 나가면 개고생’ 이기에 그러지도 못한단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일부 악덕 부인들은 이러한 상황을 악용하여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 할빠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대가를 바라고 손자들을 돌보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저 공정하길 바랄 뿐이다” 이러한 상황이 고착된다면, 전국 할빠 연맹이 결성되어 공동 근로의 대가를 혼자 착취해 가는 부인들을 국세청에 소득세 탈루 혐의로 신고할 수 있다. 이것은 황혼이혼->독거노인->복지예산 증가로 국가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또한 부인들에게만 돈을 지급하는 자식들에게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를 둘 수도 있다. 이러한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돌봄 비용 지급 경로를 다변화해야 한다. 즉 아들과 사위도 관심을 가지고 할빠들에게 봉투를 얹어 드려야 한다. 지금 할빠는 미래의 그들 모습이기 때문이다. 은퇴 후, 그래도 가정 내에서의 역할이 있다는 것에 안도하며, 묵묵히 자신을 희생하는 선량한 할빠들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주는 사회적 관심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래야 국가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전국 할빠 연맹의 출범을 방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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