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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는 남은 인생의 숙명” 배우 양미경

기사입력 2018-05-04 08:54

이봉규의 心冶데이트

여행, 사진, 시낭송… 프로급 취미로 쌓은 내공

배우 양미경을 만나기 위해 그녀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인덕대학교로 갔다. 배우이자 교수인 그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양이었다. 몇 번의 약속시간과 장소를 조정해가며 어렵게 만났다. 게다가 그녀는 인터뷰를 싫어해서 8년 만에 처음 일정을 잡았다고 한다. 이봉규로서는 행운을 잡은 것이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8년 동안 인터뷰를 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더니 “배우는 시크릿(secret)이 있어야 매력을 발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녀의 주장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사진 김수현 player0806@hotmail.com)
(사진 김수현 player0806@hotmail.com)

양미경은 야구모자에 트레이닝복을 입고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사진 촬영은 미리 드라마 촬영 장소에서 따로 해두었지만 연예인들이 인터뷰할 때는 대체로 화장을 하고 세련된 의상을 입기 마련인데 그녀는 마치 방금 운동을 마치고 허겁지겁 달려 나온 사람 같았다.

그녀가 방금 전까지 얼마나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는지 단번에 짐작이 갔다. 바쁘기도 해서 그렇지만 양미경은 촬영 때만 화장을 하고 평상시에는 그렇게 하고 다닌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화장을 안 하고 야구모자를 눌러쓴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녀는 “평상시 내가 소중하니까 피부도 아끼고 화장하는 시간도 아낀다”고 대답하면서 “사극을 하다 보면 가체(加髢)가 무겁고 장시간 정수리 부분을 눌러 드라마 ‘대장금’을 촬영할 때는 원형탈모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부연한다.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해했다. 지금도 TV조선의 주말 사극인 ‘대군-사랑을 그리다’를 한참 찍고 있기에 무거운 가체와 의상, 그리고 분장에 몸이 얼마나 피로할까? 특히 ‘대군’에서도 대비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장식이 더 많고 가체도 더 무거울 것으로 짐작된다.

‘대군’에서 양미경이 맡은 대비 심 씨는 왕자들의 모후로서 조용하고 덕이 있다는 칭송을 받고 있지만, 다른 면으로는 궐내 각 처소에 정보원을 심어 치열한 내전 정치를 하는 전략가의 면모가 감춰져 있다.

양미경의 단아하고 기품 있는 외모가 대비 역할에 딱 어울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깊숙이 숨겨진 그녀의 눈빛에서 나오는 내공은 후덕함으로 포장된 정치 9단의 대비 심 씨 역할에 안성맞춤이다. ‘대군’은 5월 초에 끝날 예정인데 양미경의 종편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덕대학교 방송연예과 13년 차 교수

양미경은 1983년 KBS 공채 10기 탤런트로 데뷔했고 이후 2년간 단역에 출연하다가 다양한 작품에서 주연, 조연을 맡으며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다. 단아한 이미지 때문인지 주로 사극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03년 한류 열풍을 일으킨 ‘대장금’에선 장금의 스승인 한 상궁으로 열연해서 그해 연기대상에서 각종 상을 수상했다. 이후 ‘왕과 나’, ‘해를 품은 달’ 등 사극에서 내공 깊은 연기를 보여줬다. “사극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시간의 숨결을 느낀다”면서 시적 표현을 하는 양미경의 단아한 모습이 야구모자와 트레이닝복을 뚫고 나올 기세다.

양미경은 그래서 사극이 좋고, 사극을 하면서 많이 배우게 된다는 것. 현재는 인덕대학교 방송연예과 13년 차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다작 출연이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배우와 교수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그럼 배우를 하죠!”라고 말하는 그녀. 양미경은 배우로서도 교수로서도 완벽한 프로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관련한 연구에 열중한다.

방학 때면 어김없이 영국, 러시아, 프랑스 등 예술의 성지를 찾는다. 특히 러시아의 소설가 겸 극작가인 안톤 체호프의 고향에서 그의 대표작 ‘갈매기’를 공연할 때를 잊지 못한다. 체호프의 고향 ‘멜리호보’는 러시아 문학을 세계적인 문학으로 격상시킨 체호프가 살았기 때문에 예술의 성지가 되었다. 체호프는 ‘멜리호보’에서 대작들을 만들어냈다.

양미경이 좋아하는 ‘갈매기’를 비롯해 ‘나의 인생’, ‘사할린 섬’, ‘6호실’, ‘사랑에 대하여’ 등이 바로 이곳에서 나왔기 때문에 ‘멜리호보’는 러시아 문학의 성지가 됐다. 예술가들의 얘기와 여행 얘기로 잔뜩 신이 난 양미경은 화제를 프랑스로 또 금방 옮긴다.

그녀는 화가 고흐를 특히 좋아해서 고흐 마을을 꼭 간다고 말하며 표정이 금방 상기된다. 파리에서 약간 떨어진 오베르 쉬르 와즈(Auvers-Sur-Oise)는 고흐가 1890년 자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고흐가 인생 말기에 살았던 자그마한 마을이다. 고흐가 머물렀던 ‘라부여관(Auberge-Ravoux)’도 예술의 성지가 되었다. 고흐는 이곳 2층에서 ‘오베르 교회’, ‘까마귀가 나는 밀밭’ 등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다.

(사진 김수현 player0806@hotmail.com)
(사진 김수현 player0806@hotmail.com)

다시 태어나면 사진 찍는 여행가가 되고파

그녀는 예술의 성지뿐만 아니라 자연이 아름다운 아프리카, 몽골, 인도 등도 여행한다. 배우와 교수활동에 도움이 많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 여행도 자주 한다. 얼마 전 입춘에 속초와 설악산을 다녀온 그녀는 눈 덮인 산이 너무 좋았다고 말하면서 “다시 태어나면 사진 찍는 여행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배우는 안 할 거냐?”고 따져 물었더니 “배우 안 한다. 너무 힘들어서. 주어진 게 감사하긴 하지만…”이라고 말끝을 흐린다.

그렇지만 평생 배우로 살아왔기에 다소 민망한 듯 “남은 인생 배우활동을 충실하게 할 것이다. 배우는 죽을 때까지 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라고 말한다. 이봉규는 “교수보다는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배우가 좋지만 여행을 더 좋아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녀가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는데 프로 사진작가가 찍은 것 같았다. 흑백 필름을 구입해 직접 인화를 할 정도로 사진을 좋아한다. 그녀가 배우로서 감성을 유지해나가는 배경에는 이 같은 취미생활이 한몫 톡톡히 하고 있다고 보인다.

또 하나의 프로급 취미생활 시낭송

이같은 연기에 도움이 되는 프로급 취미생활은 또 있다. 바로 시낭송이다. 멋모르고 어릴 때부터 시를 좋아해서 즐긴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한 서예전에서 양미경이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해 이해인 수녀의 시 ‘우정일기’와 ‘차를 마셔요, 우리’를 낭송했다. 2006년에는 시낭송을 포함한 음악앨범도 냈다.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그대에게 가는 길, 양미경입니다’에서 소개한 곡 중 신승훈이 노래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주제가를 비롯해서, 자신이 특히 좋아했던 남자 가수들의 발라드 13곡과 직접 낭송한 3편의 시를 담은 컴필레이션 음반을 내기도 했다. 이 앨범은 일본에서 먼저 발매되었는데 초기에 수입 물량이 품절돼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그녀는 이 같은 음반 작업을 국내외 팬서비스 차원에서 했음을 밝힌 적이 있다.

그녀는 앨범 작업에 관련한 인터뷰에서 “작가와 프로듀서와 함께 좋은 음악을 선곡하면서 방송을 했지만, 무언가 한 가지 빠진 듯 허전한 마음이 늘 떠나지 않았다. 나를 만나기 위해 외국에서 찾아온 사랑하는 팬들과 조용히 지지해준 국내의 30대와 40대 팬들을 위한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바쁜 와중에도 팬들을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은 지극정성이다. 인터뷰 도중 교수 라운지에서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가 흘러나왔다. 단아하고 내공 깊은 양미경과 여행, 예술 등의 이야기에 심취해 있던 중이라 그의 노래가 마치 우리를 위한 BGM(background music) 같은 착각이 들었다.

격조 있는 대화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에 열중하느라 저만큼 떨어진 테이블에서 나를 기다리는 아내를 의식하지 못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부랴부랴 전화를 걸었더니. “나 여기 있어~” 한다. 양미경과 전혀 다른 분위기다. 현대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비비안 리)이 튀어나온 듯했다. 이봉규는 애슐리(레슬리 하워드)로 양미경과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레트 버틀러(클라크 케이블)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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