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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옥 상훈유통 회장 “국가를 위한 마음, 사람을 향한 삶”

입력 2026-01-16 06:00

상훈유통 창립 31주년 기념 ‘역사기록관’ 개관

천연 광물 중에서 가장 단단한 금강석은 지구 맨틀로부터 150㎞ 이상의 깊이에서 1000℃, 5GPa 내외의 고온과 압력을 수백만 년 이상 견뎌야 형성된다. 어떤 것에 천착해 온갖 고난을 긴 세월을 겪다 보면 사람의 내면에도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보석이 생기기는 하겠으나, 그런 일은 흔한 것이 아니다. 1939년생 이현옥 상훈유통 회장의 삶은 오로지 나라를 사랑하는 일념(一念)을 강하고도 꾸준히 압축해온 결과물이다. 숨길 것 없는 투명함으로 그의 삶이 더욱 빛난다.

▲상훈유통 역사기념관에서 포즈를 취한 이현옥 회장.(주민욱 프리랜서)
▲상훈유통 역사기념관에서 포즈를 취한 이현옥 회장.(주민욱 프리랜서)


54세에 파란만장 창업기를 쓰다

작은 체구와 부드러운 미소를 지닌 이현옥 상훈유통 회장은 보이는 모습과 달리 강건한 군인정신과 굳은 심지로 인생을 설계하고 삶과 기업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1939년 9월생인 이 회장의 삶을 따라가 보자. 1994년 남들은 은퇴를 준비하는 54세에 미군 대상 국내수출 사업을 영위하는 (중소)기업을 세우고, 30년 넘게 기부와 공익 활동을 이어왔다. 2025년 기준 상훈유통의 누적 기부액은 160억 원에 달한다.

기업이 어느 정도 성장하던 무렵, 예상치 못한 위기도 겪었다. 동종 업체 한 곳이 밀수 사건에 연루되면서 면세업 전체가 검찰의 기획 수사를 받았고, 죄가 없던 상훈유통도 조사를 피할 수 없었다. 그는 그 시기를 회상하며 “아무리 잘해도 억울한 일을 겪을 수 있다”고 담담히 말했다. 수사관들은 회계장부를 샅샅이 들여다보며 ‘비자금’을 의심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을 진리처럼 받아들이는 세상이지만, 그와의 인터뷰 내내 어쩌면 이 속설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낱 중소기업이 이렇게 많은 돈을 기부하는 것이 수상하다”, “돈세탁에 관여한 것 아니냐”며 들이닥친 검찰 압수수색과 세무조사를 받으면서 드러난 것은 ‘숨긴 것도, 숨길 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상훈유통을 찾아온 매서운 눈초리의 불청객들은 일주일 만에 더 볼 것도 없다며 조사를 마치고 돌아갔다. 그의 자택을 찾아온 검찰수사관은 소박한 집을 보고 “거액을 기부한 이현옥 회장댁이 맞냐”, “집에 금고도 없냐”고 되물은 일화를 남겼다.

▲상훈유통 역사기념관(주민욱 프리랜서)
▲상훈유통 역사기념관(주민욱 프리랜서)

그는 자신의 뿌리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유공자 집안’이라는 사실을 꺼내놓는다. 부친은 경찰 공무원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하셨고, 장인 역시 조국의 독립에 앞장서신 독립유공자로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이었다. 본인 역시 베트남전 참전용사다. 그는 젊은 시절 전우들이 전장에서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돌아가면 반드시 이들을 잊지 않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속 깊이 다짐했다. 전역 후 보훈 행정 분야에서 20여 년간 근무한 것은 그 다짐의 연장선이었고, 국가유공자와 유족의 복지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기관에서 일하면서 그는 ‘공직의 한계’를 절실히 느꼈다. 한정된 예산으로는 국군장병들에게 충분히 감사와 위로를 전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었다. 나라를 위해 젊음을 바친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점점 깊어졌고, 결국 ‘언젠가 민간에서 직접 해보고 싶다’는 결심이 섰다. 그때가 1990년대 초반이었다.

▲상훈유통 역사기념관(주민욱 프리랜서)
▲상훈유통 역사기념관(주민욱 프리랜서)

창업 결심이 곧바로 실행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뜻을 현실화하기까지 1년여의 준비기간이 필요했다. 정년이 머지않은 54세의 나이에 안정된 직장을 내려놓고 창업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지금처럼 창업 지원이나 대출 제도가 활발하지 않던 시기였다. 그는 ‘이 일을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결국 사직서를 내고, 1994년 상훈유통을 세웠다. 살던 아파트를 팔아 자금을 마련, 가족과 함께 산 아래 작은 빌라로 이사했다.

창립 직원은 단 5명이었다. 그중 영어가 가능한 인력이 미군부대 영업을 담당했다. 첫 사무실은 미군부대 내 컨테이너였다. 여름이면 뜨거운 열기로 숨이 막히고 겨울이면 손이 얼어붙는 공간이었지만, 그곳에서 그는 직접 물품을 싣고 날랐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았지만, 의사소통이 안 되면 몸짓과 표정까지 총동원했다.

“그 당시 우리 국민은 양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법이 있었습니다. 국산 담배는 품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해 귀하게 여기지 않았고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미군에 양질의 국산 담배를 팔면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지 않겠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믿었지요. 많은 이가 터무니없다며 웃었지만, 직원들과 함께 밤낮없이 발로 뛰었습니다.”

그는 “좋은 제품을 정직하게 팔면 신뢰는 반드시 쌓인다”고 말했다. 이 원칙은 상훈유통이 지금까지 지켜온 기업 정신이기도 하다. 그렇게 만든 수익은 다시 사회로 흘러갔다. 그는 유공자와 국군장병을 비롯해 한미 우호 증진, 보훈 문화 확산, 미래세대 육성, 농촌 사랑 운동 등 공공기관의 예산만으로는 충분히 지원하기 어려운 영역에 꾸준히 기부하며 ‘기업인이 해야 할 의무’를 실천해왔다. 그 과정에서 받은 명예로운 훈장과 감사패 등 발자취들을 한데 모아 상훈유통 창립 31주년을 기념하는 ‘역사기록관’을 개관했다.

▲지난 8월 31일 개관한 상훈유통의 역사기념관.(주민욱 프리랜서)
▲지난 8월 31일 개관한 상훈유통의 역사기념관.(주민욱 프리랜서)


160억 기부의 의미, ‘기업은 국민의 것’

이 회장의 경영철학은 단순명료하다. 성장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이며, 기업의 주인도 자신이 아닌 ‘국민’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기업은 국민이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보가 튼튼해야 나라와 기업이 있고, 고객이 제품을 사줘야 기업이 존재합니다. 그러니 기업 이익은 곧 사회의 것이고, 기업은 공익적인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30년 동안 변함없이 이어진 신념이다. 기부 역시 자랑이 아니라 ‘의무’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까지 보훈·군부대·교육·장학금 등 다양한 공익 분야에 총 160억 원이 넘는 금액을 기부했지만, 정작 본인은 검소하게 살고 있다. 이제는 빌라의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나이가 되었음에도 더 나은 집으로 이사 갈 생각은 여전히 없다.

“자식들 근처로 이사 가고 싶다는 아내에게는 미안한 마음이지만, 저는 더 좋은 집이 필요하지 않아요. 여기서 조용히 살다가 가면 됩니다.”

기부할 때는 원칙을 중요하게 여긴다. 자신의 기부와 나눔이 ‘퍼주기’로 오해받길 원하지 않는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도울 수 있는 영역과 아닌 부분에 관한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오랜 기부와 나눔의 경험으로 몸소 깨달은 것이다.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도와주는 건 오히려 해가 됩니다. 원칙 없는 도움은 오래가지도 않고, 엉뚱한 청탁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때로는 남보다 한 걸음 더 나서서 마음 쓰는 일로 기부를 대신하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 인연을 맺어주는 일이다. 중매와 일감 연결 같은 형태로 그의 도움을 받은 이들이 숱하다.

▲상훈유통 역사기념관(주민욱 프리랜서)
▲상훈유통 역사기념관(주민욱 프리랜서)

상훈유통이 30년 넘게 유지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힘은 ‘사람 중심의 경영’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늘 “네가 사장이고 회장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권한을 나누어 책임감을 주는 방식이다. 직원 복지 역시 남다르다. 매년 직원들에게 해외 연수의 기회를 제공하고, 직원이 부모님을 모시고 회사 복지시설을 이용할 때는 특별 휴가와 숙박비를 지원하는 등 효(孝)를 바탕으로 한 ‘가족 같은 회사’를 만들어왔다. 그 결과 퇴직한 직원들과도 연을 이어가고, 거래처 역시 오랜 동반자로 남아 있다. 그는 이런 관계를 설명하며 ‘소매가 스쳐도 인연’이라는 불교적 가르침을 인용했다. 사람과의 인연을 기업의 자산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는 지금도 변함없다.


언제나 현역, 건강하게 일하는 노년

나이 86세,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그의 하루는 매우 규칙적이다. 새벽에 일어나 108배를 하고 단전호흡과 묵상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건강을 위해 술과 담배도 오래전에 끊었다.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겁니다.”

식사 시간도 일정하게 유지하며, 일과 중에는 실내 자전거와 걷기를 병행한다. 주말에는 골프를 즐긴다. 골프는 의사의 권유로 67세에 처음 시작해 84세인 2022년에 첫 이글을 쳤다. 지금 그에게 골프는 삶의 중요한 활력소다. 그는 “늦게 시작한 골프지만 호흡과 마음을 맑게 하고 체력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 건강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간이 나면 절을 찾아 스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스스로 생활과 행동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불교적 신념은 그의 삶과 경영 전반에 깊숙이 스며 있다. 이는 자리이타(自利利他), 즉 ‘나도 이롭게, 남도 이롭게’라는 그의 좌우명으로 귀결된다.

그에게 은퇴를 앞둔 이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하자,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는 AI 시대, 변화가 더 빠른 시대가 올 겁니다. 인생 2막과 3막은 더욱 길어집니다. 1막부터 철저히 준비해야 하는데, 직장과 가정의 일로 어수선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어떤 시대라도 준비하는 사람은 이길 수 없습니다. 건강, 재력, 가정, 선행 등의 준비로 노후를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상훈유통 역사기념관(주민욱 프리랜서)
▲상훈유통 역사기념관(주민욱 프리랜서)

이어 그는 오랫동안 간직해온 문장을 꺼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절반을 잃습니다. 그러나 건강을 잃으면 인생 전부를 잃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얻으면 다 얻는 겁니다.”

그는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 여기지 않는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걸어온 시간은 누구보다 묵직하고, 삶의 방향은 또렷하다. 이현옥 회장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이유는 미담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의 선택과 실천이 ‘삶으로 증명된 가치’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어느 순간이든 다시 시작할 용기와 끈기가 있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그의 삶은 조용히 말해준다.

▲베트남전 참전 당시의 이현옥 회장.(주민욱 프리랜서)
▲베트남전 참전 당시의 이현옥 회장.(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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