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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아내 돌보는 남편들, 가장 큰 고통은 끝없는 고립감”

입력 2026-03-26 07:00수정 2026-03-2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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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남편 연구 김희선 박사… “여성 중심 돌봄 체계 빈틈, 남성 배우자 통해 드러나”

▲김희선 박사. (이준호 기자)
▲김희선 박사. (이준호 기자)

치매 돌봄은 오래도록 여성의 몫으로 여겨져 왔다. 집 안의 살림과 수발에 익숙한 아내가 아픈 남편을 돌보는 장면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중증 치매 아내를 집에서 돌보며 가사까지 떠안은 남편들의 삶은 그렇게 돌봄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었다. 지역에서 사회적 관계 형성에 서툴고, 가사가 익숙치 않은 이들의 삶을 걱정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최근에 발표된 한 논문은 주목받을만하다. 김희선 국립중앙의료원 치매상담원이 최근 삼육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 게재한 박사학위 논문의 제목은 ‘중증 치매 아내의 돌봄 경험에 관한 참여 관찰 연구’다. 제목 그대로 고령의 남편이 치매 아내를 13년간 돌보는 삶을 8개월 동안 10차례에 걸쳐 따라가며, 그간 정책과 연구가 놓쳐온 남성 배우자 돌봄의 실상을 가까이서 기록한 연구다.

김 박사는 치매 돌봄의 현장과 연구를 함께 걸어온 현장 중심형 연구자다.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시행 직후 초대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해 노인전문요양원과 주간보호센터, 방문요양기관, 독거노인지원센터 등에서 일했고, 이후 사회복지사 자격과 대학원 과정을 거쳐 연구의 길로 들어섰다. 중앙치매센터 치매상담센터에 입사해 올해로 근무 10년을 넘겼다.


여성 중심 돌봄 체계, 남성 배우자에겐 낯선 벽

그가 이 연구 주제로 ‘치매 아내를 돌보는 남편’을 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현장에서 수많은 돌봄 사례를 봐 왔지만, 남편이 주 보호자인 경우는 적었고 그만큼 연구도 적었다. 김 박사는 “아내가 남편을 돌보는 경우는 요양원이나 재가서비스 현장에서도 비교적 흔히 접할 수 있다”며 “반면 남편이 치매 아내를 돌보는 사례는 상대적으로 드물고, 실제로 찾아가 보면 가사 영역에서의 도움이 절실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돌봄 자체도 어렵지만, 기존에 아내가 맡아왔던 일상과 집안일이 한꺼번에 중단되면 그 공백을 남편이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며 “그 부담을 견디기 어려워 시설이나 병원 입소가 더 이른 시점에 선택되기도 한다”고 했다.

실제로 논문은 한국 사회의 돌봄 체계가 여전히 여성 보호자를 중심으로 짜여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논문은 가부장적 성 역할 규범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평생 생계부양자로 살아온 남성 노인이 치매 아내를 돌보며 겪는 낯선 역할 수행의 어려움과 정체성의 혼란이 정책과 학문 양쪽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왔다고 짚었다. 또한 남성은 여성보다 사회적 지지망 활용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아 우울, 무력감, 고립감을 더 크게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김 박사가 참여관찰이라는 까다로운 연구 방식을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설문이나 인터뷰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돌봄의 맥락을 직접 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현장을 직접 보지 않고서는 확신하기 어려웠다”며 “당사자나 가족은 괜찮다고 말하더라도, 실제 생활 곁에서 지켜보면 말로는 드러나지 않는 어려움과 위험 신호들이 분명히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참여관찰은 단순히 이야기를 듣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 안으로 들어가 돌봄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어디에서 무너지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라며 “그래야만 보다 실제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희생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돌봄의 얼굴

그가 현장에서 확인한 것은 단순한 ‘희생담’이 아니었다. 연구 참여자인 남편은 아내를 씻기고 먹이고 옷을 갈아입히는 일을 넘어, 텃밭에서 채소를 길러 식탁에 올리고, 아침마다 아내를 깨워 마사지해 주고, 하루의 일과를 조심스럽게 이어갔다. 김 박사는 “처음 전화로 말씀을 들었을 때만 해도 정말 그렇게 생활하고 계실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며 “그런데 현장에 가 보니 직접 농사를 지어 아내의 식사를 챙기고, 존중과 존엄을 지키려 애쓰며 돌보는 모습이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논문도 이 점을 중요하게 본다. 연구 결과는 이 남편의 돌봄을 ‘희생’이나 ‘부담’만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돌봄 수행, 돌봄 어려움, 지지체계, 돌봄 철학이라는 네 축 속에서 남편은 자신의 몸과 생활을 돌봄에 맞게 조정하며 능동적인 돌봄 주체로 서 있다. 이는 전통적 남성성이 돌봄 속에서 재구성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논문에서 눈길을 끄는 또 다른 대목은 돌봄 과정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자녀와의 관계, 즉 ‘수정된 가족주의’다. 흔히 중증 치매 돌봄은 온 가족이 매달려야 하는 일로 여겨지지만, 연구 참여자인 남편은 오히려 자녀들의 개입을 최소화했다. 집안일의 기준이 달라 생기는 잔소리나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자녀들이 집으로 올라오는 것을 막고 1층에서 만나 외식을 하는 식이었다. 김 박사는 “자녀들도 각자의 직장 생활과 육아로 바쁘다는 점을 인정하고, 엄마의 돌봄 문제로 가족 관계가 어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남편 스스로 최소한의 선을 그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단순히 자녀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체념이 아니라, 가족의 좋은 점만을 남기기 위해 능동적으로 거리를 두는 현대 고령화 시대의 새로운 돌봄 형태를 보여준다.

물론 논문 연구 대상이 일반적인 남편의 모습은 아니다. 김 박사 역시 이들을 ‘지극정성으로 아내를 돌보는 훌륭한 남편’으로만 보는 시선을 경계했다. 남성 돌봄자에게 처음 접하는 가사 노동과 수발의 고단함도 크지만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심리적 중압감이라고 김 박사는 설명했다. 끝을 알 수 없는 돌봄 과정에서 겪는 우울과 불안, 사회적 고립, 배우자와의 관계적 상실감이야말로 가장 깊은 고통이라는 것이다.

김 박사는 “겉으로는 가사나 신체 수발의 어려움이 먼저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더 깊게 남는 것은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돌봄 과정에서 누적되는 심리적 압박감”이라며 “우울과 불안, 사회적 고립, 그리고 예전의 배우자 관계가 서서히 사라져 가는 데서 오는 상실감이 매우 크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남성 보호자들은 흔히 스스로 강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런 고통을 더 안으로 감추는 경향이 있다”며 “바로 그 점까지 함께 봐야 남성 돌봄자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김희선 박사.(이준호 기자)
▲김희선 박사.(이준호 기자)

치매 환자와 가족의 존엄 지키는 길 찾아야

김 박사는 치매를 둘러싼 정책의 방향 자체를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우리는 여전히 ‘치매 극복’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지만, 치매는 약으로 완치하거나 정복할 수 있는 질환이 아니다”라며 “현행 시스템 역시 진단 이후 등급 신청과 재가급여 이용을 거쳐 결국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이어지는 시설 중심의 경로에 무게가 실려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치매 당사자가 가족과 함께 살아오던 삶의 터전 안에서, 가능한 한 오랫동안 존엄을 지키며 돌봄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강조한 대목 중 하나는 치매 환자를 돌보는 남성 배우자에게 지역사회의 평범한 일상 공간과 물리적 환경이 생존을 위한 거대한 '자원'이 된다는 점이다. 중증 치매 아내와 함께하는 외출은 타인의 시선과 돌발 상황에 대한 우려 탓에 점차 제한될 수밖에 없다. 김 박사는 "이분들의 상황을 잘 아는 단골 식당에서 구석진 자리를 내어주고 눈치 보지 않고 1~2시간씩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이들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큰 자원이자 지지체계"라고 설명했다.

돌봄의 육체적 한계를 보완해 줄 물리적인 주거 환경과 맞춤형 복지용구 역시 이들의 일상을 지탱하는 필수 자원이다. 실제로 연구 참여자인 고령의 남편은 아내를 부축해 일으키는 과정에서 잦은 허리 통증을 겪었지만, 이를 덜어줄 수 있는 높은 변기나 안전 손잡이 같은 맞춤형 지원을 제때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김 박사는 "보호자의 신체적 부담을 실질적으로 덜어줄 수 있는 맞춤형 주거환경 개선과 복지용구 설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의 연구는 치매 배우자를 돌보는 남편을 우리 사회가 너무 오래 예외적인 사례로만 여겨 온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아내를 돌보는 남편들은 제도와 관심의 바깥에 머물러 왔지만, 그들의 돌봄이 덜 절실하거나 덜 애틋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낯선 역할을 배워가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과정에서 새로운 방식의 배우자 사랑과 돌봄의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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