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니어 라이프]
일본 교토(京都). 이 도시에는 70년 넘게 의료와 복지 현장을 지키며 ‘사람답게 늙어갈 권리’를 이야기해온 여성이 있다. 올해로 94세. 여전히 요양 현장에서 환자의 곁을 지키며 강연을 하고, 글을 쓰는 현역 간호사다. 그의 이름은 호소이 에미코(細井恵美子).

그는 단순히 오래 일하는 ‘고령의 간호사’가 아니다. 일본의 방문간호 제도를 무(無)에서 유(有)로 만들어낸 인물이다. 전후 혼란 속에서 간호사로 출발해 병원 간호부장, 지역 의료의 리더를 거쳐 방문간호와 노인복지 제도화의 토대를 다지기까지. 그가 어떻게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왔는지, 현대인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직접 들어봤다.
15세에 마주한 ‘삶과 죽음’
호소이 에미코 씨의 간호 인생은 종전 직후인 1946년에 시작됐다. 겨우 15세의 나이에 국립병원 간호부 양성소에 들어간 이유는 거창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한 선택’에 가까웠다.
“그때는 정말 배고픈 시절이었어요. 전후 빈곤 속에서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제 힘으로 살아가야 했죠.”
17세에 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처음 배치된 현장에서 그가 마주한 것은 시베리아에서 귀환한 사람들이었다. 심신이 모두 무너진 채 돌아온 이들, 정신적 외상을 안고 살아가던 환자들이었다. 그들과의 만남은 훗날 그가 평생 붙들어온 ‘곁을 지키는 간호’의 출발점이 된다.
20대 초반 호소이 씨는 정신과 병동에서 근무했다. 당시 정신과 의료는 환자를 ‘관리’하는 것에만 치중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어느 날 한 환자로부터 ‘노래를 부르고 싶다. 자물쇠를 열어달라’는 호소를 들은 그는 독단적으로 그 요청을 들어주며 환자의 곁을 지켰다.
“그때 처음 깨달았어요.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치료 이전에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경험이라는 것을요.”
이렇듯 규율보다 눈앞의 환자 마음을 우선시하는 그의 반골 정신은 훗날 의료제도 자체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병’이 아닌 ‘삶’을 보다
호소이 에미코 씨의 커리어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교토미나미병원(京都南病院)이다. 30대 후반부터 총간호부장으로 일한 병원에는 재일 한국·조선인과 일용직 노동자가 많았으며, 주민의 약 절반이 생활보호 대상자일 정도로 사회적 약자가 밀집한 지역 한가운데 있었다.
“병원이 좋다는 소문에 먼 곳에서도 환자들이 찾아왔습니다. 그곳은 다양성이 넘치는, 그야말로 사회의 축소판이었죠. 가난, 상실, 외로움… 치료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삶의 무게’를 보았어요. 그래서 저는 늘 환자의 병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보려고 했습니다.”
그는 새벽 6시에 진료를 시작하며 노동자들이 출근 전에 건강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예방접종과 공중보건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간호는 치료 행위를 넘어, 삶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이때 깨달았죠.”
1970년대 일본은 고도성장과 함께 급격한 고령화를 겪었다. 노인 의료비 무료 정책이 시행되자 병원에는 장기 입원 노인이 급증했고, 이른바 ‘사회적 입원’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의료적 처치는 필요 없으나 받아줄 곳이 없어 병원에 계속 머무르는 노인들. 그로 인해 정작 응급 환자는 병실이 없어 이송 거부를 당하는 현실이 벌어졌다. 간호사로서 그는 큰 좌절감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퇴원을 이야기하면 가족들은 ‘집에서는 돌볼 수 없다’며 거부했습니다. 심지어 부모가 입원한 사이 부모의 집을 처분해버린 경우도 있었지요.”

“돌봄은 가장 인간적인 전문직”
현재도 그는 교토의 야마시로 누쿠모리노 사토(山城ぬくもりの里)라는 고령자 시설에서 주 1회 오전 근무를 이어가고 있다. 병원이 아닌 생활공간에서 노인을 만나는 이 현장은 그가 평생 강조해온 ‘삶을 중심에 둔 돌봄’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치매 환자의 분노와 거부에도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따뜻한 말투와 몸짓, 상대의 눈높이에 맞춰 다가가면 마음이 열립니다. 사람은 누구나 온기를 느껴요.”
치매를 단순한 병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성격과 삶의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시선이다. 동시에 돌봄의 초점을 환자에게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인다.

“가장 힘든 건 환자가 아니라 가족입니다. 죄책감과 상실감, 끝이 보이지 않는 돌봄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지요. 그래서 저는 늘 말합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일본 역시 심각한 돌봄 인력 부족에 직면해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돌봄은 고되지만 매우 가치 있는 일입니다. 인간의 가장 연약한 순간을 지켜주고 다시 ‘사람답게’ 설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니까요.”
더불어 그는 돌봄 노동이 사회적으로 더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간호는 전문직으로 인정받지만, 돌봄 인력은 여전히 가사노동처럼 취급되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한다.
“돌봄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고도의 전문직입니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돌봄을 ‘빛나는 직업’으로 만들고, 그 사회적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 그것이 바로 그가 100세까지 이루고 싶은 꿈이다.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
94세의 호소이 에미코 씨는 독신 생활을 즐기며 살고 있다. 그는 저서 ‘93세에 깨달은 것’에서 ‘고독사’를 과도하게 두려워하는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홀로 사는 삶’을 곧 외로움으로 단정 짓는 것은 인생의 큰 손실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혼자 사는 삶은 자신을 돌보고 삶의 리듬을 지켜낼 수 있는 자유라고 강조한다.
“100세 시대에 가족과 끝까지 함께 사는 경우는 사실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혼자라는 이유만으로 마음을 닫아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생을 낭비하는 일이죠.”
그는 지금도 새로운 정보를 익히기 위해 꾸준히 공부한다. 단정한 생활 습관과 규칙적인 식사, 그리고 사람과의 소통을 건강의 비결로 꼽는다.

“나이가 들면 혹시 ‘노인 냄새’가 날까 봐, 매일 입었던 옷을 모두 세탁합니다. 잠옷도 하루에 한 번씩 반드시 갈아입어요. 비록 혼자 먹는 식사라도 반찬을 다양하게 차립니다. 주변에는 언제든 마음 나눌 수 있는 사람들도 많고요.”
94세의 현역 간호사인 그는 “아직도 충분히 일할 수 있고, 요청이 오면 강연도 혼자 다니며 참여한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나이가 들면 일할 수 없다는 생각은 단순한 편견입니다. 80세, 90세가 돼도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앞으로도 계속 만나러 갈 겁니다. 내가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감각, ‘쓸모 있다’는 그 느낌이 바로 제 삶을 지탱하는 힘이니까요.”
호소이 에미코 씨는 오늘도 곤색 제복을 입고 젊은 동료들과 함께 현장을 누빈다. 그가 살아온 방식은 초고령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따뜻하고도 힘 있는 ‘희망의 처방전’을 건넨다.
그의 삶은 수명의 길이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노년을 규정한다는 사실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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