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낙의 그림 이야기]
▲독일황제제국 선포식 겸 빌헬름 1세 대관식이 1871년 1월 18일 파리에서 거행됐다.
독일 역사에서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 1898)의 비중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유명한 여행지에서 크고 작은 동상은 물론 광장이나 거리에 ‘비스마르크’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역사적 입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영국의 미술사학자 닐 맥그리거(Neil MacGregor, 1946~)가 자신의 책 ‘독일: 한 나라의 기억들(Deutschland: Erinnerungen einer Nation, 우리나라에서는 ‘독일사 산책’으로 번역되었다)’에서 ‘빌헬름 1세(Kaiser Wilhelm I)’와 비스마르크가 중심이 되는 대형 기록화에 대한 설명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지적했다.
저자 맥그리거가 언급한 대형 유화는 1871년 독일 제국의 탄생 현장을 기록한 역사적인 그림으로 독일인들이 ‘끔찍’하게 사랑하고 자랑하는 유화이며, 독일 제국의 통일 또는 비스마르크를 다루는 영상 자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록화이기도 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독일 제국의 군대가 이웃 나라 프랑스와의 전쟁 당시, 전쟁이 채 끝나기 전인 1871년 1월 18일, 점령국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그것도 프랑스인이 그렇게도 자랑스러워하는 베르사유 궁의 가장 화려한 ‘거울의 방(Mirror Hall)’에서 독일황제제국선포식(Proklamierung des Deutschen Kaiserreiches)과 함께 빌헬름 1세의 황제 즉위식을 거행한다(독일황제제국은 1918년까지 존속했다).
화가 안톤 폰 베르너(Anton von Werner, 1843~1915)는 이 역사적인 사건을 대형 유화에 담았다. 그런데 완성된 작품을 본 ‘빌헬름 1세’는 ‘비스마르크’의 모습이 ‘여러 참석자’ 사이에 파묻혀 잘 알아볼 수 없다며 다시 그릴 것을 화가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다시 그려진 그림에서 비스마르크는 흰색 유니폼을 착용해 주변 참석자들 사이에서 확연히 눈에 띈다(원래는 진한 감색). 또한 비스마르크가 주변 인물에 가려지지 않도록 중앙에 빈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빌헬름 1세’는 이렇게 제작된 대기록물을 비스마르크 가족들에게 하사했다(사진 1). 그런데 베르사유 궁에서 거행한 제국 선포식을 담은 유화는 전란에 없어져 흑백 기록사진으로만 남아 있다(사진 2). 반면 황제의 하사품은 비스마르크의 고향인 북부 독일 프리드릭스루(Friedrichsru) 소재 그의 기념관에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필자는 그 역사기록화에 담긴 오만 속에 핀 아름다운 마음을 보면서 오늘 우리에게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