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독특하고 창의적인 영화가 나타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관 대형화면엔 컴퓨터 모니터 화면만 달랑 등장한다. 인물들의 움직임은 모니터에 부착된 작은 웹캠만을 통해 확인된다. 그 작은 화면 안에서 온갖 서사와 사건과 갈등이 전개된다. 화면이 작고 단순해 표현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압축과 생략으로 추리하는 즐거움을 선사해 오히려 흥미진진하다. 영화 ‘서치’ 이야기다.
아무래도 이 영화 소개는 표현방식의 혁신에 관한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오로지 모니터 화면만으로 표현되는 형식을 접하며 불현듯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자각하게 만든다. 사실 우리는 이미 모든 삶이 사이버 공간에서 실현 가능한 세상을 살고 있다. 대부분의 지식을 인터넷에서 얻고, 알고 싶은 것은 인터넷 서핑으로 찾으며, 인간관계조차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맺는다.
이 영화에 사용된 도구들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지배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영화의 스크린은 MS(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XP이며, 주인공이 서핑하는 검색엔진은 구글, 모니터는 애플 노트북 맥북이다. 딸의 친구 관계를 파악하는 곳은 페이스북이며, 사진은 텀블러 계정이 동원된다. 딸의 속마음을 알게 된 것은 실시간 스트리밍 사이트인 유캐스트를 통해서다.
한때 구글의 일원이기도 했던 인도계 26세의 신예 감독 아니쉬 차간티는 온통 세상을 움직이는 미국 IT 업계 강자들을 도구삼아 영리하게 이야기를 버무린다. 장르는 속도감 있는 스릴러다. 첫 장면이 매우 낯익다. 초원과 푸른 하늘이 펼쳐진 윈도우의 초기화면이다. 주인공 데이빗 킴(존 조)이 새로 산 맥북에 자신과 아내 파멜라 킴(사라 손) 그리고 딸 마고 킴(미셸 라)의 계정을 만들며 영화는 시작한다.
영화는 주인공 가족이 단란하게 지내는 긴 과정을 다양한 가족사진으로 표현한다. 어느 날 아내가 암에 걸리고 시간이 흐른 후 아내 계정이 휴지통에 버려지는 것으로 아내의 죽음이 간결하게 암시된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딸이 스터디그룹에 간 어느 날 밤 사라진다. 주인공은 딸을 찾기 위해 딸의 페이스북 등 모든 계정을 뒤진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비밀이 하나하나 밝혀진다.
이 영화가 주목받은 또 다른 이유는 주요 등장인물이 한국인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요 등장인물이 아시아인으로 구성된 영화는 거의 처음이지 싶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미국 내 아시아인의 삶을 넌지시 드러낸다. 딸의 계정을 뒤지던 중 딸의 친구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놀란다. 주인공은 딸의 사진 계정과 SNS 그리고 채팅의 흔적을 통해 몇 가지 단서를 얻게 된다.
영화는 지루함을 모르게 반전을 거듭한다. 실종사건에 배정된 여형사 로즈메리 빅(데브라 메싱)은 자신의 아들인 로버트 이야기를 하며 주인공과 공감을 나눈다. 그 형사를 향해 주인공은 “이렇게 몰랐다니, 내 딸을 이렇게 몰랐다니” 하며 탄식한다.
어쩌면 스릴러라는 장르로 포장된 가족영화일지 모른다. 사이버 세상에 갇혀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가족마저 해체되는 현실 속에 역설적으로 사이버 도구들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되고 관계가 회복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결국 도구란 어떻게 쓰느냐에 달린 것이다.
감독은 영화 곳곳에 사이버로 왜곡된 세상을 재치 있게 드러낸다. 딸과 가까운 사이로 알았던 친구들이 모두 친하지 않다고 부인하다가 죽었다고 알려지자 SNS에 친구를 애도하고 친한 척하는 모습에서 소셜미디어의 위선을 풍자한다. 우리는 어쩌면 거대한 위선으로 가득 찬 사이버 세상에 갇혀 사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