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에 왔다는 최악의 폭서(爆暑)가 근 한 달간 우리 곁에서 똬리를 틀고 있다. 뜨거운 불, 하나로도 모자라 두 개로 온 누리를 덥히고 있는 본격적인 염천지절(炎天之節)이다. 어릴 적 시골의 여름은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서 한낮 더위를 피하고 저녁에는 마당 위에 멍석을 깔고 환한 달빛을 양념으로 마당 밥을 먹곤 했다. 늦게까지 두런두런 서로의 이야기를 비벼가며 맛을 본 후 잠자리에 들면 에어컨이 없어도 그럭저럭 보낼만했다. 요즘은 더위를 피해 산으로 바다로 떠나느라 전국이 야단법석이다. 집 나가면 길 막혀, 사람에 치여 사서 고생을 한 적이 있기에 필자의 여름 나기는 냉방이 잘된 사무실로 나가는 것이다.
출근길에 만나는 가로수들은 염천(炎天)을 씩씩하게 머리에 이고 팔을 넓게 펼쳐서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도록 그늘을 만들어 주며 묵묵히 여름을 견디고 있다. 제법 숲이 어우러진 공원에서는 매미들의 열렬한 구애가 경쟁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참매미 울음소리는 더디게 가는 여름날에 청량한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뜨거운 열기를 잠시 식혀주는 시원한 청량음료다. 하지만 외래종 꽃매미들의 요란한 때 창(唱)에 묻혀 드문드문 들려와서 유감이다. 참매미는 맴맴 울다 잠시 숨 고르기, 휴식의 간극을 두며 짝을 애타게 부르지만 꽃매미들은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날카로운 기계음 같은 소리를 낸다. 여름이면 으레 듣는 정겨운 소리가 아닌 그악스런 소음으로 밤낮없이 울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어느 시인은 매미의 일생을, “7년 땅속 벌레의 전생을 견디어 단 한 번 사랑을 죽음으로 치러야 하는 저 혼인 비행이 처절해서 황홀하다”라고 쓰기도 했다. 매미는 밝은 세상을 보기 위해 어두운 땅속에서 3~7년간 고통스러운 인고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성충으로 우화(羽化) 후 짧은 여름 한 철, 오직 살아 있기 위해 치열하게 우는 것이다. 유한(有限)한 삶, 찰나적 시간에 단 한 번의 사랑을 하고 형상의 껍질을 내려놓고 제 갈 길을 떠나는 것이다. 그들의 조상들이 그랬듯 햇빛에 반짝이는 찬란한 날개를 펼치고 치열하게 사랑을 나눌 그 날까지 땅속에서 가없는 기다림, 긴 여정을 묵묵히 순종하며.
매미가 우는 것은 여름의 조종을 울리는 것이다. 가을이 살며시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곧 가을의 전령사, 여치와 귀뚜라미들의 서늘한 목소리가 더위에 지친 심신을 식혀줄 것이다. 한여름, 격정을 나누었던 매미들의 뜨거운 사랑은 곧 잊힐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한사코 곁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매미들은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