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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생일이 두 번이다

기사입력 2018-05-04 09:08

▲가짜 생일에 친구들과의 술자리(조왕래 동년기자)
▲가짜 생일에 친구들과의 술자리(조왕래 동년기자)
지금은 다 성인이 된 아들과 딸의 출생일자는 양력 일자다. 산부인과에서 출산을 했고 담당의사의 출생증명서를 첨부해 출생신고를 했으니 틀림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때는 달랐다. 대부분 음력으로 생일을 지내왔다. 주민등록부에 있는 출생일자와 실제 출생일자가 똑같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당시에는 출생 사실을 늑장신고한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늑장신고한 이유를 들어보면 이렇다. 첫째, 글자깨나 배웠다는 동네 이장에게 출생신고를 부탁했는데 이장이 깜박하고 몇 달을 그냥 있다가 ‘아차차!’ 하고 출생신고를 늦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둘째, 환경위생이 열악한 시대여서 갓난아기의 죽음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백일이 지나거나 돌이 지나야 출생신고를 하는 집이 많았다. 심지어 우리 부모 세대는 죽은 형의 출생신고 날짜를 동생이 물려받아 실제 제 나이보다 두 살이나 많은 사람도 봤다. 이럴 경우 이름까지 그대로 물려받아 호적상으로는 형의 이름이 되어 있고 집에서 부르는 이름은 자기 이름인 사람도 있었다. 필자의 아버지가 그런 경우다. 셋째, 당시에도 출생신고를 늦게 하면 벌금을 물어야 했는데 벌금까지 물어가면서 실제 생일을 기재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때는 대부분 집에서 출산을 했기 때문에 행정당국 입장에서는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어 당사자가 기재한 날짜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출생신고를 제때 하라고 만든 법이 엉터리 생일을 양산한 셈이다.

필자도 주민등록부상의 생일과 실제 생일이 약 6개월 정도 차이가 난다. 6·25 전쟁 통이라 정신이 없었던 탓으로 생각한다. 출생신고를 왜 늦게 했는지 그 이유를 한 번도 부모님께 물어본 적은 없다. 주위에 그런 사람 천지였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었고 생일 날짜가 틀리다고 살아오면서 불이익을 받은 적도 없다. 오히려 직장을 6개월 더 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실제 태어난 날짜와 다른 생일 날짜 때문에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거래 은행이나 영업 전략으로 여러 업체에서 주민등록표상의 생일에 맞춰 축전이 날아온다. 이 정도는 그래도 약과다, 난감한 상황은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 등 웹 사이트에서 친구맺기를 한 수많은 사람이 생일 축전을 보내올 때다. 웹 사이트 축전이니 요령만 알면 사진으로 화려한 꽃바구니 사진도 보내고 값비싼 와인 사진까지 보낸다.

웹 사이트에서야 서비스 차원으로 입력된 자료에 의해 알려주는 것뿐이니 항의할 일도 아니다. 축전을 보내온 사람들에게 처음에는 머쓱해서 실제 생일이 아니고 주민등록부상 생일이고 진짜 생일은 음력으로 보낸다고 정중히 말씀드리고 생일 인사는 고맙다고 답장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해명하기도 지쳐서 가짜 생일이니 뭐니 하는 말은 아예 하지 않는다. 보내오는 문자마다 무조건 생일을 축하해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올린다. 어떤 웹 사이트는 실제 생일인 음력 날을 기록하도록 해서 제대로 된 생일을 알려주는 곳도 있다. 이러다 보니 일 년에 생일을 두 번이나 맞는다.

드물지만 생일을 두 번 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고 한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서 돌아온 사람들이다.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 특별한 그날을 기념한단다. 또 실제 태어난 날도 무시할 수 없어서 결국 일 년에 두 번 생일을 치른다는 것이다. 이런 분들에게 비교하면 필자는 공짜로 생일을 하루 더 얻은 셈이니 거추장스럽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생일이라고 해서 소 잡고 돼지 잡는 거창한 행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가벼운 덕담과 그때그때 적절한 식사 정도만 하는 것이니 생일이 두 번이라고 짜증낼 일은 아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고 해결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다. 일 년에 두 번의 생일을 즐기면서 살아가니 이제는 기분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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