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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TOO에서 B급 며느리까지

기사입력 2018-02-18 15:01

바야흐로 ‘ME TOO’ 열풍이 세상을 휩쓸고 있다. ‘ME TOO’로 명명된 이 현상은 여성들이 오래전 남성들로부터 당한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이어가며 고백하거나 고발하는 행동을 일컫는데 미국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스타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이 우에르타라는 여배우를 7년 전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되자 잇달아 다른 유명 여배우들도 그에게 성추행당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촉발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고 메마른 벌판의 들불처럼 번져나가 그동안 잘 나가던 유명 인사들이 잇달아 ‘미투’의 희생양(?)이 되기 시작했다. 영화감독 제임스 토백을 비롯하여 미 정계의 거물들도 이 고백의 광풍에 속절없이 나가떨어졌다. 이 바람은 어느새 우리나라에도 상륙해 얼마 전 최영미 시인이 발표한 시 한 편으로 문단뿐 아니라 온 나라가 충격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매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며 국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한 유명 원로시인이 하루아침에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명예가 한순간에 날아가는 이 바람의 위력은 태풍에 비할 바 아니다. 본인이야 제가 한 짓으로 당하는 것이겠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입장에서도 정체 모를 이 바람의 힘 앞에 모골이 송연하도록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종종 유명 연예인들이 부도덕한 행위로 질타를 받는 일은 보았어도 국가의 원로 대접을 받던 시인의 몰락은 비현실적이고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인지 문단의 몇몇 분들은 원로시인을 옹호까지는 아니어도 보호하고자 나섰다. 과거에는 큰 문제가 아니었는데 갑자기 난데없는 한밤중 홍두깨로 얻어맞으니 어이없기도 하고 납득하기도 어려운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듯하다.

그렇다면 홍상수의 영화 제목처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이유가 무엇일까? 그때는 수치를 당해도 말하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발설하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일까? 본 모습이 감추어진 한 시대의 우상들이 잇달아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도둑처럼 찾아온’ 시대의 변화가 느껴진다. 우리 머릿속에 잠재해 있던 ‘미워도 다시 한번’ 식의 인식 족쇄가 어느덧 사라진 것이다.

공고하던 가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가 사라지니 여성들의 자아의식이 돌아왔다. 경제가 성장하고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니 이젠 남성들에게 기죽을 일이 없다. 이미 그런 시대가 도래한지 10년이 넘었으니 오히려 ‘미투’가 늦었는지 모른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화제가 된 영화 ‘B급 며느리’가 시사하는 바 크다. 여성들 의식 변화의 바람은 곧 고부간에도 닥쳐올 듯하다.

모든 관계가 재설정되는 새 시대로 진입하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분명한 것은 타자의 감정을 무시하고 불편하게 개입하는 인간관계는 점차 사라지리라는 점이다. 문득 이런 현상들을 통해 인류문명이 고도화할수록 인간들은 외로워지리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남성들은 불현듯 다가온 위기의식에 옷깃을 단단히 여밀 것이며 두려울 것이 없는 여성들은 더욱 자립심을 키워갈 것이다.

일전에 프랑스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가 지나친 ‘미투’ 현상을 비판하면서 “남성들에게 여성을 유혹할 자유를 허하라”고 외친 것은 어쩌면 낭만적이었던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쓸쓸한 마지막 인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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