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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미용실 이야기

기사입력 2018-02-14 14:52

머리를 싹둑 잘랐다. 가뿐하고 개운하다.

동네 미용실에 갔더니 오랜만이라며 반긴다. 갈아입을 가운을 가지고 오면서

"역시 6개월 만에 오셨네요" 한다.

가끔 이용하는 곳이긴 해도 필자가 주로 가는 그 미용실은 우리 동네에서 가장 자그마하고 허름한 편이다. 처음 이 동네에 이사 왔을 때는 나름대로 가장 솜씨가 좋을 것 같은 규모의 큰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결과가 몹시 마땅치 않았고 게다가 무지하게 비싸서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런 몇 달 후 다른 미용실엘 갔더니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기다려야 했다. 필자는 평소에 미용실에 가는 것을 도무지 귀찮아할 뿐 아니라 미용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있는 걸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래서 그냥 돌아 나오다가 건너편 작은 미용실의 창 너머로 수건을 개고 있는 뚱뚱한 아줌마가 보였다.

"지금 바로 머리 파마할 수 있나요?" 했더니 들어오라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지금껏 수년 동안 그곳만 이용하게 된 것이다. 그 미용사는 도무지 요즘 미용실처럼 나긋나긋한 서비스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뿐만 아니라 갖추어진 작업복이 아니라 언제나 평범한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에 적당히 앞치마를 두른 모습이다. 그리고 미용실을 운영하는 사람답지 않게(?) 잘 손질된 멋스러운 머리와 신경 좀 쓴 외모는 전혀 아니다. 요즘은 이름조차 헤어디자이너라고 멋 부리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그분은 그저 평범 수준의 수더분한 아줌마일 뿐이다.

그런데 몇 번 이용하다 보니 그분은 미용 전문가로서 척척 아줌마다. 그동안 필자는 미용실에 가도 별다른 개인적인 대화도 없이 파마나 커트만 하고 나오는 편이었다. 그런데 필자의 머리 말던 롤의 넘버나 가짓수, 그리고 머릿결의 영양과 개인적인 특성에 관해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미용 세미나에서 배운 최신 유행 아이템도 곁들여 들려준다. 또 작년 8월 20일에 파마를 했으니 머리가 어째야 한다는 등 알아서 꼼꼼한 손질을 해 준다.

"어머나 저 8월 20일에 했던가요?" 했더니,

"8월 20일에 몇몇 가지 넘버의 롤로 말았고, 중간에 딱 한 번 컷팅하러 왔고 지금쯤 오실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어떻게 기억해요?"

"기억도 하지만 노트에 기록해 놓기도 해요" 한다.

그분의 고객노트에 내 이름을 무어라고 적어놨을지 궁금해진다. 가끔 마땅치 않으면 투덜대며 까칠하게 했던 부분까지 기억하고 이제는 더 이상 깐깐히 주문할 일 없어도 알아서 척척 마무리까지 끝내준다. 게다가 가격도 부근에서 가장 저렴하니 이 아니 좋을 수가 없다.

오늘도 제법 허물없어진 그 아줌마랑 동네 떡집 이야기도 하고, 노화되어가는 무릎관절 이야기도 하고, 대통령 이야기도 들으며 별스럽지도 않은 파마를 6개월 만에 하고 돌아왔다.

아무튼 요즘 흔히 불리는 헤어디자이너라는 유난한 이름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동네 미용실 아줌마 덕분에 그런대로 봄맞이 머리손질을 가뿐하게 마쳤다. 아마 또 6개월 정도 지나 여름쯤에 만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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