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스케’라는데 그게 뭐냐고 묻는다. 나나스케, 정말 오랜만에 보는 장아찌 음식이다.
‘나라스께‘ 라고도 불리지만 필자가 어릴 때부터 먹어서 아는 이름은 ’나나스케’이다.
단무지 종류로 보여도 전혀 다르고 고급스러운 ‘나나스케’는 어감으로 보아 일본이름인 것 같고 동봉된 설명서를 보니 울외 장아찌라 쓰여 있다.
‘나나스케’는 늙은 오이인 노각이나 참외로 만든다고 알고 있었는데 울외라고 쓰여 있으니 참외종류가 맞는 것 같으며 이 장아찌를 만든 회사에서는 울외 외에도 오이나 무, 마늘, 양파, 당근을 이용한 나나스케도 만든다고 한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하나를 꺼내어 겉에 묻은 노란 주박 (술지게미)을 깨끗이 씻어내고 얇게 썰어 한 조각 입에 넣으니 달콤, 짭짤 아삭한 맛이 옛날 맛과 똑같다.
어릴 때 우리 집에서는 흔하게 이 장아찌를 먹었다.
우리 아버지는 밀가루 묻혀 쪄서 양념장에 묻히는 풋고추 찜이나 밥에 얹어 쪄낸 보랏빛 가지를 젓가락으로 쭉쭉 찢어서 집 간장과 갖은 양념으로 무치는 가지나물, 새우젓으로 간한 애호박 볶음 같은 시골 반찬과 특히 ‘나나스케’를 좋아하셨다.
한여름에 아버지와 겸상해서 찬물에 밥을 말아 나나스케 한 조각 얹어 먹으며 그 아삭거리는 식감과 향긋한 맛에 같이 감탄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아마 친할머니가 손수 담아주셨던 이 장아찌의 맛을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엄마에게도 한번 만들어 보라는 부탁을 했는데 나나스케의 재료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엄마는 몹시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정릉의 마당 넓은 집에 살 때 대전에서 친할머니가 작은 몸집에 버겁게 보일 정도의 보따리를 들고 찾아오셨다.
갓김치와 나나스케를 만들어 오셨는데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시던 얼굴도 생각나고 좀 뾰로통했던 엄마의 모습도 기억난다.
그 옛날 장남인 아버지와 결혼하여 딸만 셋을 낳은 엄마는 시집으로부터 아들 못 낳았다는 데 대한 무언의 핍박을 받으신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친할머니를 대하는 엄마의 태도가 좀 냉정하게 보여 안타깝고 슬펐던 적이 있다.
그때 먹었던 친할머니의 나나스케는 정말로 감칠맛이 났지만 슬픈 느낌도 묻어있다.
그 후로는 입소문으로 알게 된 집에서 사다 먹었어도 느낌 때문이었을까? 할머니의 맛만은 못했고 서둘러 내려가시던 할머니의 뒷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울외는 박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식물이라고 한다. 참외와 비슷하지만, 참외처럼 단맛은 없다는데 이 열매를 반으로 갈라 속을 파내고 소금에 절인 후 꾸덕하게 말려 설탕을 첨가한 주박에 박아두면 울외장아찌가 되는데 주박이란 청주를 걸러내고 남은 술지게미이다.
단무지와는 달리 흔하게 볼 수 없는 나나스케, 울외장아찌는 채소절임이 발달한 일본 장아찌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많이 거주했던 군산지방에서 많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시에는 군산에 일본인 청주양조장이 번성했고 거기에서 나온 지게미로 울외장아찌를 만들었는데 요즘에도 군산의 울외 가공공장에서는 대규모 양조장에서 나온 지게미를 받아다 장아찌를 만든다고 한다.
선물 받은 나나스케 하나를 꺼내 겉에 묻은 노란 주박을 깨끗이 씻어내니 황금색의 꾸덕한 장아찌의 모습을 드러낸다.
양념하지 않은 채로 얇게 썰어 물에 말은 밥 한 숟갈에 얹어 입에 넣으니 달콤하고 짭짤한 그 아삭거리는 식감과 독특하게 향긋한 맛이 일품이다.
이번엔 남편과 마주앉아 물 말은 밥에 나나스케를 나눠 먹었다.
오랜만에 맛본 울외장아찌 하나로 하늘나라 계신 아버지와 친할머니가 그리워지고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