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역사를 파헤친 명저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최근작 <호모데우스>를 통해 현생인류를 대체해 신이 되고 싶은 새로운 인류의 미래상을 그려내 충격을 안긴 바 있다. 오늘날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로 일컬어지는 인공지능(AI), 유전자조작 등의 신기술을 통해 그동안 신의 영역이었던 생명체 창조를 인간도 해낼 수 있기에 호모 사피엔스는 새로운 신적 인류로 진화해 갈 것이라는 예언이다.
사실 그러한 징조는 이미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작년도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에서 우리는 인공지능의 놀라운 능력에 경악했다. 유전자가위라는 신기술은 인류의 유전병을 미리 차단하여 생명 연장에 기여할 것이고, 우리가 먹는 식재료도 유전자변이(GMO)를 통해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려 인류의 기아해방에 기여하리란다. 인류는 생명체를 조작하고 궁극적으로 창조하는 데까지 나아갈 것이다.
인간이 창조하는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낙관과 비관이 교차하고 있다. 낙관주의자들은 인공지능은 어차피 인간의 보조 수단에 불과하다고 하고, 비관주의자들은 언젠가 인간을 넘어서는 순간이 오고 그 이후는 통제가 어렵다고 걱정한다. 스티븐 호킹 박사 같은 이는 “AI는 인간의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고 단언한다. 미래를 상상하는 많은 SF 영화들도 대부분 비관주의에 가세한다.
그런데 이와는 전혀 다른 시각의 영화가 있다. 바로 <블레이드러너 2049>다. 이 영화는 1982년 그러니까 무려 35년 전에 나왔던 <블레이드러너 2019>의 속편 격인데 인간이 창조한 인조인간 리플리컨트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꽤 진지한 영화다. 놀라운 것은 지금이야 인공지능이 실제로 실현되고 있어서 어느 정도 공감이 가지만, 1982년에 이런 상상을 했다니 리들리 스콧 감독은 천재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 영화 곳곳에 전편에 대한 오마주를 심어 리들리 스콧 감독에 대한 존경을 표한다. 스토리도 상당 부분이 이어지기 때문에 전편을 보지 않은 관객은 이해하는 데 불편이 따른다. 보통 영화계에 ‘형만 한 아우 없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성공하는 속편이 드문데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그리 박하지 않다. 다만 너무 길어 중간에 졸 수도 있다는 점이 약점이다.
리플리컨트 K(라이언 고슬링)는 도망친 리플리컨트를 색출해 사살하거나 붙잡아 오는 것이 임무인 블레이드러너다. 본래 전편에서 ‘넥서스6’ 모델은 수명이 4년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그들의 수명 연장의 꿈과 좌절을 다루었다면, 이 영화에서는 만약 만들어진 ‘인조인간이 생식능력을 갖게 된다면 그들을 인간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니까 역으로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인 셈이다.
K는 수사 중 임신의 흔적이 있는 리플리컨트의 유골을 발견하면서 격랑에 휩쓸린다. 만약 이 사실이 퍼지면 그들을 자극해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밀리에 수사를 진행할수록 자신이 그 아이라는 심증을 굳혀간다. 마침내 아버지로 추측되는 늙은 데커드(해리슨 포드)를 만나 자식이 아님을 알았다. 데커드를 처치하라는 임무였지만, 그를 살려주고 딸을 만나게 한 후 눈을 맞으며 숨진다.
너무 길어 짧은 지면에 요약하기 불가능해 큰 줄거리만 소개했지만, 사실 스토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것은 지구를 황폐하게 만든 인간들은 별로 보이지 않고 온통 리플리컨트로 의심되는 존재들이 등장하여 인간적인 고뇌를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혈육의 문제, 정서적 공감, 역경에 처한 상대에 대한 도움과 배려 등 따지고 보면 모두 우리 인간이 잃어버린 가치가 아닌가.
인류는 이제까지 자연 속의 상대들은 대부분 정복했고 더 이상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이 만든 인조인간 때문에 고뇌하고 그들을 통해 잃어버린 가치를 이야기하는 설정이 흥미롭다. 말하자면 인간은 창조주가 되고 싶어 했으나 창조한다는 일이 얼마나 고단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나 할까. 인공지능의 미래도 그러하리라. 역시 피조물로 사는 게 마음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