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년기자 페이지] 치매에 대한 회포
시골에서 중학교를 함께 다닌 동기동창 상조회 모임을 두 달에 한 번씩 갖는다. 이날은 치매를 앓는 친구를 만나려고 친구 집 가까운 곳으로 장소를 정했다. 20명 친구 중 13명이 모였다.
필자의 친구 중 첫 치매 환자인 셈이다. 언제나 쾌활했고 친구들 간 신의도 남다르게 좋았던 그 친구는 운동도 잘했고 무엇보다도 사교댄스를 아주 잘 추는 실력파 춤꾼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동안 몇 개월 모임에 불참한 사유가 치매라는 전갈에 모든 친구들이 놀랐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 친구라니… 믿기지 않았다.
이날 모임에는 아내와 함께 동행했다. 어딜 봐도 전혀 치매환자로 보이지 않았다.
회원 모두의 바람으로 집 근처 가까운 곳에 아내와 동행하도록 한 것은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음식은 먹긴 했으나 술은 금주라 했다. 술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유머감각도 좋은 친구였는데… 아쉬움이 가득 밀려왔다.
친구는 애써 말을 안 하려는 건지 조심하는 건지 아내 눈치만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건강했을 때 친구는 조그마한 청소대행업을 했다. 이제는 남편 수입이 없다 보니 아내가 어린아이 돌보는 돌보미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도 저녁시간에 일하러 가야 한다며 남편을 우리들에게 부탁하고 떠났다.
친구 아내가 “여기서 저 횡단보도만 건네주시면 집 찾아갈 수 있어요”라고 말했을 때 필자는 고개를 돌리고 못 들은 척했다. 울컥해지는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친구 아내가 자리를 뜬 뒤 옆으로 가서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건네도 단답형으로 웃기만 했다. 그런 친구를 보면서 필자가 치매를 앓게 되면 우리 식구들은 어떤 마음일까 생각해봤다.
친구 아내가 자리를 뜨지 않았다면 그런 것들을 물어보고 싶었다.
‘만약’을 생각해본다. 필자가 아니고 아내가 치매환자가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아려왔다.
옆자리에 앉아 친구에게 음식을 많이 권했다. 그렇게밖에는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렇게 눈치껏 의사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 새 모임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다행히 친구는 가족의 힘으로 많이 극복하고 있는 듯했다. 특히 두 딸들의 후원이 남다르다는 얘기도 있었다.
모임 장소 근처에 살고 있다고 해도 혼자 보내기에는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함께 걷기로 했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집을 찾아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아직 정상인과 다를 바 없는데 치매환자로 대해야 한다는 사실이 힘들었다.
친구가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필자는 돌아섰다.
필자도 필자 아내도 예외일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거리에서 한참이나 눈물을 훔치다가 머리를 푹 숙인 채 집으로 가는 전철에 올라섰다. 마음속으로는 친구가 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