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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떠나셨습니다

기사입력 2017-09-11 17:45

지난 8월 27일, 야학 시절 필자에게 만년필을 선물로 주셨던 진 선생님께서 별세하셨다. 서둔야학 단톡방에서 이 소식을 알게 된 필자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말도 안 돼! 이 일을 어떡하면 좋아! 지난 2월에도 예술의전당에서 건강한 모습을 뵈었는데!’

아아! 님은 가셨는데

님을 보내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 크신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아야 하는데,

북한농업 발전, 미얀마 농촌 프로젝트 등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굵직한 일들을 여기저기 벌여놓으셨는데,

아직 할 일이 너무도 많으신데,

어찌 그리 황망히 가셨나요!

선생님! 내 사랑하는 선생님!

삼성병원 장례식장에 걸려 있는 선생님의 사진을 보고 또 보았다. 가슴이 먹먹하고 미어졌다. 그로부터 하루도 선생님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런데도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는 자신이 용납되지 않았다.

야학 시절 진 선생님의 손은 거칠기가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실 분이었다. 제주도 가난한 농촌 집안 출신으로 당신 손으로 학비를 해결하며 공부를 하셨기에 그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들은 바에 의하면 1년 벌어서 1년 공부할 정도로 힘들게 학업을 하셨다고 한다. 험한 일 궂은일을 가릴 수 없었던 선생님의 손은 늘 상처 투성이였으며 굳은살이 박혀 울퉁불퉁했다. 그 손이 안쓰러웠던 필자는 언제부턴가 선생님을 뵙게 되면 얼른 손부터 보게 되었다. 입고 있는 옷도 군복에 대충 검은 물을 들인 작업복 아니면 서울대 교복 차림이었는데 자주 빨아 입지 못해서인지 얼룩덜룩할 때가 많았다.

가톨릭 신자인 진 선생님은 철저한 휴머니스트였다. 필자의 아버지가 서울대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는 바쁘신 와중에도 틈틈이 문병을 와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 가족을 돕느라 물심양면으로 애쓰시던 선생님은 아버지 산소 양쪽에 어디선가 구해오신 진달래꽃까지 심어주셨다.

우리 가족을 보살펴주시던 진 선생님은 야학 후배 윤선이가 아버지를 잃었을 때는 또 그 후배를 돕느라 동분서주하셨다. 우리 아버지와 윤선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우리가 서둔야학을 졸업한 지 각각 1, 2년 후의 일이었는데 선생님은 졸업한 야학생들의 궂은일까지도 모른 척하지 않고 끝까지 보살펴주신 것이다. 당신도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많았을 텐데도 제자들을 그렇게 살뜰히 보살펴주시는 분이었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늘 ‘참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라’고 강조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대신 아버지 역할을 해주셨는데 최근에 찾아 뵌 선생님은 필자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우리 가족을 선생님께 맡긴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주셨다. 읽을 책 하나 변변히 갖고 있지 못했던 우리 형제들에게 두터운 골판지로 된 김유신장군 책과 외국 동화책을 사다 주셨는데 영어로 돼 있던 그 책의 내용은 기억 못하지만 주인공 소녀의 토실토실한 볼은 지금도 참 귀여운 인상으로 남아 있다. 또 책을 좋아하는 필자에게는 특별히 헤르만 헤세의 <페터 카멘진트>를 선물해주셨다. 내용은 별로 흥미롭지 못했지만 선생님의 사랑이 묻어 있던 그 책에 상당한 애착을 가졌기에 오랜 세월 소중히 간직했다. 어디선가 어렵게 구한 은박지로 표지로 쌌으며 책을 볼 때는 손을 비누로 깨끗이 씻은 후 볼 정도로 아꼈다.

"과자 한 봉지 실컷 먹어 봤으면…."

진 선생님의 어렸을 때 소망이었단다. 당신 어렸을 때 생각이 나서였을까? 궁핍한 살림에 과자 하나, 사탕 하나도 마음대로 먹지 못했던 우리 형제들을 위해 가끔 과자도 사다 주셨다. 영어가 씌어 있는 흰색 봉투에는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 밤과자, 부채 모양의 부채과자 등이 가득 들어 있었다.

필자의 집은 수수깡과 진흙을 섞어 만든 집 벽에서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우리 형제들은 겨울에는 대낮에도 두꺼운 이불을 펴놓고 그 속에 발을 묻었다. 밖에서 뛰어 놀다 들어와 그대로 이불 속으로 발을 밀어 넣는 통에 이불이 꼬질꼬질했다. 그 방에서, 추워서 옹송그리고 있던 동생들은 한줄기 따스한 빛 같은 진 선생님을 만나곤 했다. 그러나 필자는 선생님이 반갑지 않을 때도 있었다. 궁색함, 누추함이 그대로 드러난 모습이 창피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애국애족의 정신이 투철하신 선생님의 영향을 받았다. 학비를 걱정하는 가난한 고학생이면서도 나라와 민족을 망각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덴마크의 개척자 달가스, 이스라엘의 민족지도자 그룬트비히와 우리나라의 안창호 등 애국애족의 민족주의자에게 한창 매료되어 있던 필자가 <유토피아의 원시림>이라는 책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알게 된 선생님은 어디선가 그 책을 구해다 주셨다. 그 책을 읽으며 '나라와 민족'이라는 그 거창한 이상주의의 바다에 빠져버렸다.

20여 년 전의 어느 날이었다. 별안간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선생님께 필자가 말했다.

"선생님 제가 이제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선생님 곁에서 선생님을 보살펴드릴 거예요. 선생님 눈이 되어드릴 거예요."

깨고 나니 꿈이었다. 너무도 생생한 꿈이었다. 필자에게 끝이 없는 사랑을 주셨던 선생님에 대한 마음이었다. 그때까지 받기만 한 사랑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었던 충정이었다.

진 선생님,

제 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가슴에 고이 모셔두겠습니다.

당신은 너무도 아름다웠던 내 동화 속 왕자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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