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동네 산책할 때 신을 운동화가 필요하다고 해서 백화점엘 갔다. 여러 매장을 다녀본 후 마음에 드는 운동화를 고르셨다. 오랜만에 온 백화점이라 아이쇼핑을 하면서 믹서도 새로 샀고 참 예쁘게 생긴 주방용품도 몇 개 고르며 즐거워하셨다. 필자는 꼭 필요한 물건만 사는 편인데 엄마는 예쁘거나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사고 싶어 하셨고 사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신다. 충동구매를 하지 않는 필자와는 좀 다른 성격이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식당가로 가서 메뉴를 골라보기로 했다. 다이어트에 신경 쓰면서부터는 맛없는 음식으로 배가 부른 상태가 제일 싫다. 그래서 음식 메뉴 선택이 더 어려워졌다. 식당 층을 두어 바퀴 돌고 난 후 우동을 먹기로 결정했다. 메뉴를 보니 왕새우 우동 정식이 1만6000원이다. 엄마는 왕새우 우동 정식을 시켰고 필자는 돌솥 우동 8000원짜리를 주문했다. 워낙 국수류를 좋아하므로 뜨거운 돌솥에 담겨 나온 우동을 맛있게 먹었다. 값이 두 배인 왕새우 우동은 그저 튀김옷만 두텁게 해서 튀긴 새우가 세 마리 곁들여졌다.
천천히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카드를 냈다. “네, 1만8500원입니다”라고 계산원이 말했다. 그런가? 어쩐지 계산이 틀리다는 생각이 스쳤다. 사인을 하고 나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셈이 좀 느리긴 하지만 곧 우리가 먹은 음식 값을 덜 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미 계산을 했으니 모르는 척할까? 아니면 계산이 잘못되었으니 다시 음식점엘 가야 할까? 머리를 굴리고 있는 자신이 좀 우스워서 머쓱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엄마에게 “엄마, 음식점 직원이 계산을 잘못해서 5500원을 덜 받았어, 어떡하지? 그냥 갈까?” 했더니 당장 가서 다시 계산하고 오라고 하신다. 그렇게 작은 일에 정직하지 않으면 더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 하면서 재촉하셨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냥 오고 싶었다. 계산원이 실수한 것이지 필자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그렇게 파렴치하거나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아니다. 몇 년 전 지역에 있는 대형 백화점에서 고객 편의를 위해 꽤 먼 동네까지도 셔틀버스를 운행한 적이 있었다. 손님 입장에서는 참 편리해서 시간 맞춰 나가 백화점 셔틀버스를 이용해 쇼핑을 하러 다니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익숙해져 간단한 시장을 볼 때도 백화점으로 갔다. 당시는 그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인 줄 몰랐다. 편리함만을 생각해 모두들 백화점으로만 가니 동네 마트나 재래시장에 손님 발길이 뚝 끊겨 중소상인들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생각을 못했다. 그런 문제가 드러난 뒤 나라에서 규제를 시작했고 백화점 셔틀버스는 사라지게 되었다. 그 후 많은 발길이 다시 재래시장과 동네마트로 돌려졌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셔틀버스가 폐지되기 전 어느 날 장을 잔뜩 봐서 백화점 버스에 올랐는데 계산대 옆 직원이 필자가 산 물건을 비닐 봉투에 넣어주는 대로 들고 왔다. 집에 도착해서 보니 필자가 사지 않은 물건이 담긴 봉투가 하나 더 있었다. 아마 매장 직원이 뒷사람의 물건을 필자 쇼핑 봉투에 넣어준 듯했다. 당시 필자는 백화점에 바로 전화해서 “내가 산 물건 아닌 게 있다”고 신고했다. 백화점 측에서는 감사하다며 수고스럽지만 다음 배차시간에 맞춰 도착할 셔틀버스에 다시 실어 보내달라고 해서 돌려보낸 적이 있다. 그랬던 필자가 오늘은 왜 우물쭈물 망설였는지 부끄럽기만 하다.
우동 집으로 다시 가서 계산이 잘못되었다고 말했더니 “어머나, 다른 음식으로 잘못 계산되었네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한다. 더 낸 돈을 환불하러 오는 사람은 있어도 덜 냈다고 오시는 손님은 없다며 웃는다. 잠시였지만 그냥 갈까 망설였던 어두운 마음이 개운하게 걷히고 양심을 지켰다는 생각에 기분이 가벼워졌다. 그래도 남들은 이런 경우 어떻게 행동할지 슬쩍 궁금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