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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사랑하라는 말씀

기사입력 2017-07-31 11:08

1963년 필자가 서둔야학에 정식으로 입학하기 전 호기심으로 동네 언니들을 따라 며칠째 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화기애애함으로 수업을 하던 분위기가 그날따라 이상했다. 통곡을 하며 우는 선배 언니들도 있었다. 내막을 알고 보니 야학 선배들의 선생님인 김진삼 선생님이 돌아가셨단다. 농사단 자취방에서 잠자다가 문틈으로 새어 든 연탄가스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다. 그때는 야학생들이 농촌진흥청 강당을 빌려 공부를 했는데, 진흥청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살고 있는 관사 한쪽 귀퉁이에 있던 건물이었다.

지난여름 아버지가 가시던 언덕

갈바람에 물들은 그리운 언덕

오늘도 그 언덕은 변함없건만

가신 아버지는 왜 안 오시나.

마룻바닥 안쪽 깊숙이 각목을 비스듬히 세워 고정시켜놓은 칠판에는 한동안 위의 노래가 적혀 있었다. 이 노래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신 생전의 김 선생님이 좋아하시던 곡이었는데 누군가 선생님을 추모하려고 적어놓았던 것 같다. 사진으로 뵈었을 때 무척 선한 인상의 김 선생님께 필자가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제자들에 대한 그분의 사랑이 각별하셨다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분의 죽음을 안 언니들이 어찌나 슬프게 울던지 야학교가 떠나갈 듯했다. 울음이 그친 후 언니들의 눈은 하나같이 퉁퉁 부어 있었다. 그 비통함은 가히 피붙이를 잃은 것 이상이어서 김 선생님을 잘 모르는 필자도 덩달아 눈물이 났다. 그 뒤 선생님들은 수업을 진행시키느라 애를 먹었는데 언니들의 슬픔이 며칠 동안이나 이어졌기 때문이다.

김진삼 스승 영전에

한 번 태어나 흙 속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운명에 쫓겨 님은 가셨나요.

책 속에 얼굴 묻고 목놓아 울부짖는

당신의 제자들은 생각지도 않으시고

꽃잎들을 저버리셨나요.

자연의 울부짖음도 제자들의 눈물도

가버린 님께선 들을 수도 없을진대

그 슬픔 또한 덜어줄 사람도 없습니다.

님이 묻힌 무덤가를 무심히

지나쳐버릴 이도 많을 테지만

주위에 소나무들만은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듯

우러러보고 있어요.

한낮이 지나고 밤이 돌아오면

공민의 얼들 속엔 님의 가르침이

가득 아로새겨 있답니다.

님이여

영원히 고이 잠드소서

그리고

언제까지나

작은 얼들과 함께 하시옵소서.

1964년 10월 10일

위의 시는 선배 형정순 언니가 김진삼 선생님을 추모하여 지은 것인데 그 당시 동아일보에 투고해 실렸다. 김 선생님이 늘 강조하시던 말은 ‘참’을 사랑하라는 것이었고 실제 생활에서도 참을 실천하며 사셨단다.

김 선생님의 강하면서도 선한 인품이 단적으로 드러난 일화가 있다. 그분이 살고 있었던 곳은 농사단이었는데 농사단은 농대의 수많은 서클 중 하나로 탑동에 회원들의 합숙소가 있었다. 어느 날 세 명의 회원이 외출했다 돌아와 보니 남아 있는 밥이라곤 오직 한 그릇뿐이더란다. 그때 “나는 괜찮아요” 하며 선뜻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신 분이 김 선생님이었는데 상당히 늦은 시간이라 보통 허기진 것이 아닐텐 데도 끝끝내 당신 뜻을 굽히지 않으셨단다.

당시 같이 살았던 황건식 선생님 말에 의하면, 참으로 보기 드물게 선하신 분으로서 늘 남을 먼저 생각하셨고 주위에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곤 했단다. 이분의 생활신조인 ‘참을 사랑하라’는 그 후 후배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야학생들은 선생님들께 늘 이 말을 들으며 살았다.

야학을 졸업하고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장사를 하는 야학의 한 남자 후배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돈을 못 벌고 있다면서 푸념을 했다. 그러면서 그 이유가 아무래도 ‘참’을 강조한 서둔야학에서 공부를 해서 그런 거 아닐까 하며 농담하듯 말했다. 장사를 하려면 적당히 거짓말을 해야 하는데 자신은 그러지 못하며 살고 있다는 밀이었다. 그만큼 ‘참을 사랑하라’는 말은 서둔야학 출신들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이 어디에서 살든 무엇을 하든 ‘참을 사랑하라’는 생활철학은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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