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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를 남기자

기사입력 2017-08-08 10:09

나, 이럴 때 분노조절이 안돼

청년 시절 필자의 별명은 디파인(define) 성이었다. 명확한 의사결정을 좋아하고 모호한 태도는 싫어한다 해서 지인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그때는 그 별명이 마음에 들고 뿌듯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조롱의 의미가 아니었나 싶다. 별명 값을 하듯 필자는 토론을 할 때 흥분을 잘하고 침을 튀겨가며 자기주장을 펴는 사람이었다. 이른바 쌈닭이었던 것이다.

첫 직장을 다닐 때도 그랬다. 회의를 하면 팀 상사가 필자를 향해 “○○씨, 더 할 얘기 없어요?” 하며 회의를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보니 동료들도 불편하게 건의할 일이 있으면 내 등을 밀었고 그때마다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3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결정적인 한마디를 듣게 된다. 당시 국가적으로 중요한 프로젝트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이었는데 필자가 또 나서서 운영상의 부당함과 건의사항을 쏟아냈다.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프로젝트 책임 상사가 필자의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일침을 날렸다.

“○○씨, 다른 사람은 몰라서 입 다물고 있는 거 아니고, 성질부릴 줄 몰라서 참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분의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순간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지다 못해 불이 나는 거 같았다. 가끔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이불 킥을 하게 된다. 묵묵히 일하던 기라성 같은 선배들도 있었는데 전후사정 가리지 않고 결기와 치기로만 가득했던 필자 모습이 얼마나 가소로웠을까. 정말이지 지우고 싶은 20대의 한 장면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그날부터 깨달음을 얻어 득도하듯 바뀌었을까. 아니다. 그 후로도 여전히 흥분하고 자기주장을 해대며 30대까지 쌈닭으로 살았다. 의견 대립이 있으면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고 필자 의견이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났다. 그러다 나이 들어가면서 조금씩 유연해지기 시작했다. 상대의 의견이 달라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한 동료는 필자의 모호한 태도에 답답함을 느꼈는지 어느 날 다소 불만 섞인 한마디를 했다.

“○○님이 부하 직원에게 제일 자주 하는 말이 뭔지 알아요? ‘그럴 수도 있지’입니다.”

한때 쌈닭이었고 ‘디파인 성’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필자가 왜 그렇게 됐을까. 나이 먹으면서 자신감이 없어진 걸까? 아니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도망갈 구멍을 미리 마련해두고 싶은 걸까? 여러 생각을 해봤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단순히 그런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이 나이 되도록 살아보니 세상에는 한 가지로 규정하고 단정할 만한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의심할 여지 없이 한때 세상 사람들은 지구의 모양이 네모라고 생각했다. 당시 절대적인 진리처럼 받아들였지만 가당치도 않은 거짓이었다. 지금도 수많은 과학적 사실들을 뒤엎는 발표가 자주 있지 않은가. 하물며 수량도 아닌 개인의 생각에 절대적인 게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일까. 나이 들면서부터는 여지(餘地)를 남기며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화가 날 때 내린 결론은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그러니 여지를 두고 지혜롭게 말하고 행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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