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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간 나이테를 그리다

기사입력 2017-07-20 11:21

▲고향 품에 안기다(변용도 동년기자)
▲고향 품에 안기다(변용도 동년기자)
추억은 그리움이고 행복의 고리다.

감감히 멀어져 가는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을 되살리는 순간은 더 없는 기쁨이다. 나이가 들어가고 인생의 황혼기에 가까워가면 그 심정은 간절해지기까지 한다. 지나간 날은 고난의 시간이었어도 좋은 날로 기록된다. 그래서인지 사람은 늘 고향을 그리워하게 된다. 고향의 품에 안기면 그냥 여유로워지기 마련이다.

정지용 시인이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 러뇨”라 읊었듯 때로는 달라진 고향 산천에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그러나 추억은 늘 그대로이다. 고향을 찾은 날은 옛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는 즐거움과 잔잔한 행복으로 가득해진다.

필자는 오랜만에 올봄에 고향산천을 찾았다. 지리산 청학동 마을이 있는 청학 계곡이다. 행정상으로는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일원이다. 지금의 청학동 도인촌에 살던 조부모님은 빨치산을 피해 십여 리 떨어진 아랫마을, ‘대밭 몰(죽동)’로 이주해 살았고 그 마을도 지금은 하동호 댐에 묻혔다. 초등학교 시절에 뛰놀던 동네와 마을 앞을 흐르던 냇물, 설날이면 연 날리던 들녘이 물에 잠겼다.

초등학교 동창들과 밤 새우듯 이야기꽃을 피우다 잠시 눈을 붙였다. 호수에 어리는 아침의 고향 풍경이 보고 싶은 마음에 자는 듯 마는 듯 이르게 눈을 떴다. 어찌 보면 사진을 찍고 싶은 사진작가의 일상적 버릇인 셈이다. 덜 깬 눈을 비비며 카메라를 챙겨 하동호 둘레의 오솔길 자락에 섰다. 태양이 동산을 오르기 전이다. 물안개가 산허리를 옅게 두르고 있다. 산 그림자는 호수에 선명히 드리워져 대칭을 이룬다. 호수로 가지를 뻗은 소나무의 짙은 향내가 코끝에 와닿고 풀잎에 조심스레 앉은 이슬방울이 바짓가랑이를 적신다. 호수를 전망할 수 있는 가장자리에 섰다. 그리고 카메라로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렸다. 청학동이 저 멀리 그려지고 옛 고향 마을이 배치되는 풍경의 구도를 잡았다. 잔잔한 미소의 필자도 하나의 배역이 되었다. 혼자여서 타이머를 활용하여 스마트폰 카메라의 셀카 기능으로 찍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담았다. 필자는 조용히 눈을 감아본다. 추억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어렴풋이 떠오르고 스쳐 지나간다. 잊혔던 기억이 현장에서 하나둘 살아나고 스르르 행복이 가슴을 흔든다.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앞산 건넛산 산자락 숲속에 장끼, 뻐꾸기 울어 에고 산울림 된다. 소년이 되어 “뻐꾹, 뻐꾹~” 흉내 내어본다. 이슬 머금은 여린 풀잎을 꺾어 풀피리 불어보나 예전 같지 않다. 소 풀 먹이던 뒷동산 언덕배기에 밤꽃이 은은한 향기를 흩뿌린다. 호수 가의 대나무 댓잎은 바람결에 서로 부딪히며 고향의 봄을 연주한다. 죽순이 자라는 소리 들리는 듯하다. 옷가지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멱감던 냇가의 조약돌은 물속에 자리해 보이지 않아도 필자는 어느새 고운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고 호수를 향해 던진다. 물 위를 튕겨가며 물방개 물결을 만든다. 추억을 둥글게 그렸다 사라진다.

하동호에 묻힌 예전 고향 풍경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마음속에 뚜렷이 다가온다. 언제 찾아도 좋은 마음의 고향이다. 세월이 쌓이고 인생을 마무리해갈 즈음이면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이유인지 모른다. 가끔은 고향의 품에 안겨 지친 다독이며 추억을 되돌려 봄으로써 행복한 시간을 만들 필요도 있지 싶다. 고향의 품에 안겨 커다란 또 한 겹의 행복한 시간 나이테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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