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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것이 인생이다

기사입력 2017-07-11 09:51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중국어나 일본어를 배우지만 197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닌 세대는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배웠다. 독일어와 프랑스어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프랑스어를 배웠다. 연음과 비음이 특징이면서 어려웠다. 그동안 안 쓰다 보니 간단한 인사말만 제외하고는 다 잊었다. 당시에 ‘기다리는 것이 인생이다 (L’attendre, c’est la vie)’라는 프랑스 속담이 인상적이었다. 인생의 정의가 다양한데 하필 기다리는 것이라고 했을까 궁금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다시 들여다보니 이 속담이 어느 정도 이해된다. 그동안 조급하게 뛰어다녔지만 인생은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때가 되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경험했다. 모든 일은 다 때가 있다. 기다리는 것을 배우는 데 인생이 필요한 것 같다.

성경 전도서 3장에 28개의 때가 나와 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인생은 기다릴 것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 기다릴 것이 없으면 삶이 허무하다. 아픈 사람이 더 이상 기다릴 것이 없으면 사망한다고 한다. 기다리는 것은 어렵지만 기다릴 것이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

박목월 시인은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라고 노래했다.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을 것 같은 외딴 집의 눈먼 처녀조차 기다림과 호기심에 문설주에 귀를 대고 엿듣고 있다고 한다. 기다리는 것을 만들고 기다리는 것을 배우면서 인생이 지나간다. 연륜이 쌓일수록 이 속담에서 또 다른,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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