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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을 믿지 못 하는 세상

기사입력 2017-06-19 18:01

온 방 안이 한증막이다. 모두 그놈의 앱(App) 때문이다. 유월 중순인데 벌써 한낮에는 30도를 웃도는 더위다. 다만 아직 습기를 머금지 않아 그늘은 시원한 편이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 창문만 열어놓으면 서늘한 게 지내기 좋다. 그런데 그놈의 앱이 이런 주말의 쾌적을 온통 망가뜨렸다. 딸애가 앱을 들이대며 집 안의 문이란 문은 다 봉쇄해 버린 것이다.

딸애가 신봉하는 것은 바로 미세먼지를 알리는 앱이다. 스마트폰에 깔아놓고 수시로 들여다본다. 속에서 불이 난다. 몇 년 전만 해도 듣도 보도 못한 미세먼지. 도대체 그 앱은 무슨 기준으로 문을 닫으라 말라 하는가? 아! 방안에도 미세먼지는 많은데. 밖의 공기가 훨씬 시원하고 맑게 느껴지는데. 속에서 말이 들끓는다. 그러나 꾹 참는다. 앱을 들이대면 속절없이 지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삶을 편하게 해주었지만, 반면 인간을 억압하고 퇴보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매번 정기 건강검진 때마다 조마조마하다. 늘 고혈압, 당뇨 등의 수치가 경계선에서 간당간당하기 때문이다. 때론 기준선 아래로 내려가 푸른색으로 표시되면 안도하고 선 위로 올라가 붉은색이 나타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거기서 거기다.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숫자에 민감하게 살았던가. 그저 몸의 감각만 믿고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오지 않았나.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과학의 독선적 기준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정신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아날로그 세상을 디지털로 재단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를 점검해볼 새도 없이 우리는 어느새 과학이 만든 숫자의 포로가 된 건 아닌가?

과학의 발달로 우리가 잃은 것이 많다. 예전에는 길눈이 밝아 한번 가 본 길은 지도 없이도 잘 찾아갔는데 내비게이션이 나온 뒤로는 어렴풋이 알아도 내비게이션에 의지한다. 스마트폰에 전화번호를 저장한 뒤론 숫자들이 좀처럼 외워지지 않는다. 어떤 학자는 이런 것이 뇌의 확장이라며 사소한 기억은 기계에 맡기고 뇌는 창의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런 확장이 자랑스럽기보다는 그저 퇴보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전에 북한 어린이들은 기생충이 많아 아토피가 없다는 북한 의료지원 단체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놀란 적이 있다. 인간의 몸은 그런 것이 아닐까? 어려서부터 땅바닥에 뒹굴며 세균이라는 외부의 적들과 친해지는 과정에서 면역이라는 자신을 지키는 방어막이 만들어진다. 요즘 아이들에 아토피가 많은 것은 과학에 중독되어 너무 청결하게 키우는 젊은 엄마들의 강박감이 원인일 수도 있다.

뇌과학의 발달이 우리에게 준 큰 착각은 두뇌가 주인이고 몸은 그저 부속물이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뇌도 몸의 일부일 뿐이다. 운동을 많이 한 아이가 머리도 좋고 손을 자주 놀리면 두뇌가 발달하는 것은 몸과 머리가 하나임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두뇌의 확장에 매달리다 몸이 퇴보하고 몸의 퇴화가 머리를 약화시키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있다.

더위를 피할 길이 없어 에어컨을 켜고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다 메모할 일이 생겨 펜을 잡으니 옛날의 내 글씨가 아님을 느낀다. 아! 이젠 별게 다 퇴화하는구나. 밖에 나가 산책이나 할 요량으로 딸애가 깔아준 스마트폰의 미세먼지 앱을 슬며시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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