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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원정 수련이 보고 싶다

기사입력 2017-06-13 09:08

▲향원정 수련이 보고 싶다(손웅익 동년기자)(
▲향원정 수련이 보고 싶다(손웅익 동년기자)(
언제부턴가 경복궁에는 한복을 입은 내․외국인이 넘쳐난다. 한복을 입으면 입장료가 무료라는 이유도 있지만 경복궁 관람객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은 듯하다. 특히 학생들의 비율이 높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물론 한복의 정통성이나 무국적성 디자인에 대한 시비는 다른 문제로 치자. 경복궁은 근대사에서 광화문이 차지하는 상징성과 맞물리면서 외국인 단체 관광객도 많다.

경복궁은 근정전, 경회루의 건축적인 스케일과 멋도 일품이지만 무엇보다도 향원정의 아름다움이 최고다. 향원정을 둘러싸고 있는 연못 주위로 단풍나무와 고목 느티나무, 소나무는 계절마다 향원정의 분위기를 환상적으로 바꾸어간다. 연못에 가득한 수련은 초록 융단을 깐 듯 곱다. 노랑어리연이 필 때면 그 작은 꽃이 향원정을 더 돋보이게 한다. 비단잉어가 무리지어 수련 아래로 지나가고 언뜻언뜻 수련이 비어 있는 연못 조각에 하늘과 향원정이 살짝 잠겨 있다. 단풍이 절정일 때도 좋지만 눈이 연못을 덮고 있을 때는 그 적막과 고요가 마음을 비워준다. 어느 계절이든 향원정 주위를 한 바퀴 돌다 보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필자는 향원정과 관련한 특별한 추억이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이곳 향원정 주변에서 그림을 그렸다. 이젤을 세우고 수채화로 향원정을 그리고 있는 필자 주위로 사람들이 빙 둘러서 구경을 하곤 했다. 아버지의 반대로 미대에 진학하지 못해서 그런지 향원정에 오면 그 시절 자주 그림을 그리던 장소를 찾곤 한다. 세월은 거의 4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자리에서 교복을 입은 채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필자를 발견하곤 한다.

향원정이 요즘 공사를 하는 모양이다. 연못 주위로 둘러친 가설 담장에 난 작은 창을 들여다보니 연못에 수련이 가득하다. 갑자기 화가 난다. 향원정을 다 부수고 새로 짓는 것도 아니고 일부를 보수하는 공사인 모양인데 굳이 연못 전체를 칸막이로 둘러칠 이유가 뭔가. 더구나 가설 담장이 성인 키보다 높아 연못 주위를 돌며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다. 가설 담장 재료인 판넬 모양도 그렇다. 고궁 분위기와는 전혀 맞지 않는 색상이 완전히 경관을 망치고 있다.

요즘은 공사를 해도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한다. 특히 리모델링이나 인테리어 공사는 그 자체가 하나의 볼거리다. 향원정도 보수공사하는 모습을 관람객들에게 공개하면 어떨까. 비밀공사도 아닌데 굳이 비공개로 할 이유가 없다. 주위에 연못이 있어 향원정 공사로 인해 관람객이 불편하거나 위험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볼썽사나운 자재로 막아놓은 이유를 모르겠다. 그렇다고 완전히 막은 것도 아니다. 중간중간 창문이 있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가설 담장이 도대체 왜 필요한지 이해가 안 간다.

지금은 향원정 주위로 수련이 가득하다. 좀 더 있으면 노랑어리연이 고개를 내밀 것이다. 이 아름다운 향원정을 작은 창문으로 들여다보는 외국인들도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이제 막고, 금지하고, 억제하는 과거의 유산들은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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