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게 누구야”
“너 여기 숨어있었구나”
바람도 살랑대는 어느 맑은 가을날 오후
내가 봉사하는 경로당에 입당하러 오신 어르신과 총무님께서 마냥 어린애 되셨다
그 후 두 분의 대화는 함께하시는 어르신들이 다 외울 정도로 그게 그 얘기였지만 정작 두 분은 한 이야길 또 하며 그때마다 호탕하게 웃고 즐기신다.
늘 남의 말에 갈고리 걸어 다툼을 일으키시는 대머리 풀빵 별명의 어르신께서
“개새끼가 따로 없군” 한 마디 하셔 분란이 시작되었다
다른 어르신들께선 속으로 시원해 하시면서도 말리시며
“풀빵 자네가 좀 심했네 개새끼가 뭔가”
“아니 개새끼 맞잖아” 하시면서 설명하시는데
사람은 같은 일을 하다보면 지겨워하고 같은 반찬을 몇 번 먹으면 그 맛을 모르지만 개는 본능적인 것 말고 지난 일은 모두 잊는다
공을 던지면 물어오고 던져주는 사람은 몇 번하면 지겨워도 개는 또 물어온다
조금 전 공 물어오는 것을 잊었기에 항상 공 물어오는 게 새로워 힘들어 침을 질질 흘리면서도 물어오는 것이다
사료 먹는 개는 매번 같은 사료를 먹어도 늘 새로운 것이기에 맛있게 먹는 것이다.
듣는 사람은 같은 말이 지겨운데 저 두 사람은 늘 새로워하고 즐기니 개새끼와 같지 않느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내게도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사회에서 그것도 내가 어려울 때 우연히 만난 사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를 찾아온 그는 내가 마음이 급한 시절이라 그리 보였는지 이 험한 세상 어찌 살아갈지 무골호인 풍모라 첫 눈에 내 마음을 끌지 못했다.
동료와 술 한 잔할 때도 술도 못 마시며 가끔 동석을 했는데 말수는 적지만 점잖은 언행과 편협 되지 않은 주관, 떠나지 않는 미소, 솔직한 소견, 해박한 지식과 이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지혜, 무엇 하나 흠잡을 데 없는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한 매너.
남자끼리 이런 말은 그렇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빠져들고 자꾸 만나고 싶었다.
일부러 그 친구 사무실 근처에 가 차 한 잔 부탁하고 마주 앉아 내 얘기 지겹기도 할텐데 잔잔한 미소에 추임새까지 넣어 2시간 정도를 들어주며 친해졌다.
만날 때면 날짜는 자신이 여유 있는 날로 잡지만 장소와 시간만은 늘 내게 일임한다.
4년 쯤 지난 어느 날 지방 발령으로 내려가며 아무 말 없이 안아주고 갔다.
자주 연락은 왔지만 하필 그때마다 일이 있어 미루다보니 나중엔 내가 연락하는 게 쑥스러울 정도였다.
어느 날 공식적인 일로 참석한 자리에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된 사람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는데 한 분이 자신이 아는 사람이 같은 이름을 자주 이야기 하는데 혹시 그 분을 아는 분이시냐 묻는다.
그렇다 하니 그 친구가 많이 그리워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 화장실로 뛰었다
나는 왜 이리 모자랄까.
마음의 표현을 왜 이리 못 할까.
혈연만이 가족이 아니라 인연이 만든 가족도 가족이란 말이 새삼스럽다.
그는 친구가 아니라 이미 내 마음에 가족이었던 것이다.
모임이 끝나자 당장 고속버스로 내려가 만나 별 말도 없이 마주보고 그냥 싱겁게 웃고 웃기만 하다가 심야버스로 올라왔다.
우리는 개새끼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