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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기사입력 2017-03-14 09:57

고도(古都) 이스탄불을 여행하다 보면 도시의 발전 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구도심으로 들어가면 원시시대에나 형성되었음직한 좁은 미로들이 오밀조밀하고 그 외곽으로는 동로마시대의 유적이 아직 남아 있다. 현대적인 도시는 멀찍이에서 펼쳐진다. 그런데 이 모든 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원시시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것이다.

우리 뇌의 구조도 이와 꼭 닮았다. 인간의 뇌도 창조론자들이 들으면 고깝게 여길지 모르나 어느 한순간 누군가의 설계로 짠! 하고 탄생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진화 과정을 통해 오늘날의 뇌가 형성된 것이라는 말이다. 즉 편도체와 같은 파충류 시절의 뇌에서부터 포유류의 뇌를 거쳐 만물의 영장이 되게 한 전두엽까지 꾸준히 중첩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이 복잡한 것은 그래서 다 이유가 있다.

인류의 역사를 억압의 역사로 본 견해는 탁월하다. 인간의 뇌 발달 과정이 곧 이전 뇌를 제어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이성과 각종 문화, 예술을 관장하는 전두엽이 발달하면서 원시적인 본능의 뇌를 점점 억압해왔다는 말이다. 인간의 문화와 문명은 결국 저 깊숙이 내재된 본능의 발현을 최대한 억제하는 기제가 된 것이다.

시작이 장황했다. 그러나 외도를 이해하려면 이러한 인간의 전모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은 끊임없이 외도를 꿈꾼다. 의도적인 행위가 아니라 뇌에 그렇게 입력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강력한 전두엽의 조종으로 이성을 동원해 억제하고 있을 뿐이다. 뒤집어 말하면 결혼이라는 제도는 인간이 본능의 세계와 결별하기 위해 선택한 눈물겨운 제도인 셈이다.

그러나 공고해 보이던 이 제도가 불합리하다는 의심을 받는 것은 그 안에 부조리한 권력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종종 ‘작은집’을 두고 살았다. 그러나 우리의 어머니들은 크게 저항하지도 못하고 숨죽이며 살았다. 여성을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어두고 자신들은 원숭이 시절의 본능을 맘껏 누려온 셈이다.

외도가 꼭 원시적인 뇌의 산물만은 아니다. 전두엽으로 하는 외도도 있다. 톨스토이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의 외도를 꼭 성적 욕구의 산물로 단정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문화와 문명은 새로운 아름다움과 매력을 생산했고 그런 아름다움을 향한 동경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안나의 탈출은 완고한 구제도의 모순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물론 그 보복은 잔인했지만.

쉽게 일반화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원시적인 뇌의 충동에서 일어나는 외도가 남성에 가깝다면 전두엽의 작용에서 일어나는 외도는 여성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남성의 외도는 가정으로 회귀하기 쉬운 반면, 여성의 외도는 가정파괴적인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전두엽의 작용에서 일어나는 외도는 결혼제도에는 치명적이라는 말이다.

억지로 막아놓은 둑은 오래가지 않는다. 법으로 막아놓은 간통죄라는 둑은 무너져버렸다. 이제 우리 사회도 선진국형 외도로 진화(?)해갈 것이 틀림없다.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미명하에 외도에 대해 관대해지고 있는 분위기는 우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외도라는 용어 자체에 결혼을 신성시하고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데 점차 솔로들이 많아지는 현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인터넷 검색창에서 ‘외도’를 치면 거제도 외곽의 작은 섬 외도가 뜰 만큼 우리의 외도는 그 세력을 잃어간다. 마치 지금은 사라진 원숭이 꼬리처럼 점차 퇴화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 어쩌면 조만간 ‘외도’라는 언어가 ‘쿨(Cool)’이라는 말로 대체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다. “오! 외도여, 정녕 어디로 가시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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