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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 이야기-설날 음식] 명절 음식 하느라 고생 안 하는 이유

기사입력 2017-01-06 14:28

설날 음식을 위해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명절 며칠 전부터 만나서 준비하는 것은 이젠 그만 해야 하지 않나 싶다. 며느리를 맞이하고 첫 설날, 시어머니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어려운 음식을 해내고 싶은 마음과 그냥 편하게 보내자 하는 두 마음의 갈등이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즈음 외부에서 할 일들이 이어졌다. 그래서 명절 음식은 대부분 백화점에서 사고 몇 가지의 요리만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동태전, 버섯전, 동그랑땡 등을 구색 맞춰 구입한다. 나물도 고사리, 시금치, 도라지 등 삶은 것으로 구입한다. 필자가 직접 만든 것은 갈비찜을 비롯해 몇 가지뿐이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명절날 오라고 하니 매우 좋아하는 눈치다. 드디어 명절날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식사를 한다. 아들과 며느리가 도착하기 전에 필자는 음식을 모두 데우고 볶고 플레이팅한다. 이 일도 결코 쉽지 않다.

새삼스럽게 친정어머니와 올케들에게 고개가 숙여진다. 친정어머니는 며느리가 사용할 깨끗한 그릇과 이불과 요를 준비하고 집 안의 청결함까지 보여주고 싶었는지 그릇을 다 꺼내어 닦고, 이불과 요 커버도 시침질하고 대청소까지 하셨다. 왜 그렇게까지 하실까 했는데 며느리를 맞이하고 보니 알겠다. 필자도 신경이 쓰인다. 며느리만 신경 쓰이는 명절이 아니다. 시어머니도 예민해지는 명절이다.

냄비를 닦다가 힘들어서 같은 브랜드로 아예 새로 구입했다. 명절날 온 가족이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심지어 며느리가 “어머니 맛있어요~” 한다. 양만 많으면 포장해서 보내고 싶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솔직히 고백한다. “엄마가 한 요리는 세 가지뿐이야. 그 외에는 모두 백화점 식품 코너에서 구입한 것이니 오늘 맛있게 먹고 가면 대만족이야. 포장을 해달라거나 어떻게 만든 거냐고 자세히 묻지 마.” 유머 있게 한마디 했더니 웃으며 이미 눈치 챘다고 한다.

며느리도 누구네 집 딸이다. 결혼했다고 해서 시댁에만 충실할 필요 없다. 시누이나 친척이 오면 꼼짝 못하고 수발 들다 친정도 못 가 뒤늦게 형제자매들이 다 가버린 썰렁한 친정집에 잠깐 들러 친정어머니 얼굴만 겨우 보고 온다는 불평을 이미 동네 분들에게 들었기에 필자는 명절 음식 만드는 데 드는 시간과 수고를 덜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필자도 아들 내외 보내고 친정에 계신 오빠들 내외와 함께 놀기 위해 달려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도 엄마가 직접 만들어준 맞춤 커피는 한 잔 마셔야지~~.”

아들의 말에 행복해져서 바리스타 엄마의 커피 제대로 만들어서 과일과 함께 내어준다.


친구들과 맘껏 즐길 시간이 없었던 학창 시절

학창 시절 필자는 또래 아이들과 다른 인생을 살았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개인 집 과외 선생을 했다. 교사였던 아버지가 퇴직하면서 출판사 사업을 하다가 몇 차례 실패하면서 퇴직금은 물론 집까지 없어져 단칸방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집주인의 아이들은 네 명이었는데 숙제만 봐줘도 감사하게도 성적이 올라가니 아예 자신의 집에서 지내면서 아이들의 성적관리, 생활관리를 해달라 부탁했다. 그렇게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입주 과외를 시작했다.

공부는 물론 잘 때는 입던 옷을 개어 머리맡에 놓고 자는 바른생활 습관도 함께 가르쳤다. 둘째였던 큰아들이 필자가 잘 가르쳐줘서 공부에 재미가 생겼고 그 덕에 최고의 대학에 들어갔다고 길에서 아버지와 마주한 주인댁 아저씨가 한 말씀 하시더란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 용돈도 받아가면서, 가정 형편이 좋은 댁에서 과일도 먹고 나이가 어려도 선생님 대접을 해준 게 필자는 고맙다.

그 시절 친구들은 함께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여기저기 몰려다녔다. 그러나 필자는 학교 수업만 끝나면 합창반 연습시간 외에는 맡은 바 책임을 다하려고 집으로 달려왔던 기억이 난다. 주인댁 아저씨가 아이들 데리고 신림동에 새로 생긴 신림극장에서 영화를 보라며 종종 돈을 줘서 아이들과 재미있게 영화를 관람했던 기억도 난다. 새로 오픈한 극장이라 들어오는 손님을 무조건 받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몇 세 이하 입장 불가도 없었다. 그때 국내외 고전영화를 참 많이도 봤다.

필자는 네이버 고전영화카페에 가입해 10년 이상 활동 중이다. 중요한 모임이 있어도 웬만하면 정기 상영회는 빠지지 않는다. 지금도 보고 싶은 영화는 개봉일을 기다렸다가 개봉하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가서 본다. 학창 시절부터 영화를 자주 보던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주인집에서 이사한 뒤로는 집 근처에서 다른 집 남매에게 또 과외를 했다. 그 집 남편은 이란으로 돈 벌러 갔다 했다. 남매의 어머니는 일단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합격하는 게 최고의 소원이었다. 고등학교 합격이 걱정일 정도로 공부를 못했던 터라 필자는 맘이 급했고 급기야 스스로 짐을 싸서 그 집으로 입주했다. 아예 지키고 앉아서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필자도 공부하며 밤을 새울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어디선가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겠지만 순수하고 착했던 그 아이들이 오늘따라 기억이 많이 난다. 고등학교 합격 소식이 있던 날, 아이들 어머니는 필자에게 고맙다며 겨울 외투를 사주었다. 그 댁 아이들과 아주머니의 안부가 가끔씩 궁금하다.

그 뒤로 필자는 대학 두 곳을 모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잘 마쳤다. 어린 시절부터 해온 개인과외, 그룹과외, 입주과외는 필자에게도 많은 공부가 되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공부하면서 필자 자신도 많은 실력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대학교 4학년 때오빠들은 혼자서 잘 살아가는 필자가 기특하고 안쓰러워 보였는지 등록금을 마련해줬다. 대학 졸업식 때는 여러 가지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날 오빠들과 찍은 사진 속에서 필자는 울고 있었다. 다시 학창 시절이 돌아오면 남들 공부 봐주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그 나이에 맞게 친구들과 발랄하게 웃고 떠들면서 시간도 보내고 내 공부를 더 충실히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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